갑질을 보는 할머니의 입장

요즘 별 4개짜리 높은 분과 그 부인이 국민들의 분노의 화살을 맞고 있습니다.
우리는 갑질 유행 시대에 살고 있는데 갑질이라는 어감이 주는 불쾌감이 상당합니다.
영어사전에 한국어 발음 그대로 hangul, kimchi 등과 더불어 gapjil도 등재되는 민망한 고유명사가 되었습니다.
갑질은 “갑을 관계에서의 ‘갑’에 어떤 행동을 뜻하는 접미사인 ‘질’을 붙여 만든 말로, 권력의 우위에 있는 갑이 권리관계에서 약자인 을에게 하는 부당 행위를 통칭하는 개념.”이라고 사전에 나와 있습니다.
갑질은 ‘갑질’에서 더 나아가 ‘슈퍼갑질’, 심지어 ‘울트라갑질’까지 나왔는데 이는 자신이 갑이라고 하여 마구 권력을 행사하는 것을 뜻합니다. 갑질도 무서운데 슈퍼갑질 울트라갑질은 어느 정도일까요? 을이 느끼는 강도에 따라 갑질도 등급이 매겨지네요. 육군대장은 대단한 권력을 가진 분이 틀림없는데 갑질이 다 그렇긴 하지만 치사하고 별 네 개의 퀄리티가 떨어지는 갑질로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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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장 내 아줌마들도 모이면 육군대장과 그 부인의 갑질에 대해 분노합니다. 분노의 강도는 입장에 따라 조금씩 다릅니다. 아들이 군대를 다녀온 분도 화를 내고, 앞으로 군에 갈 아들이 있는 사람도 그렇지만 아들이 현재 군에 가 있는 엄마들은 더 분노합니다. 저도 군대 갈 손자가 네 명이나 있다 보니 저절로 감정이 이입이 됩니다. 공관병이 내 손자인데 냉장고 10개에 먹거리를 잔뜩쟁여놓고 사는 사모님이 냉장고 청소를 시킨다고 상상해 보니 기분이 몹시 나쁩니다. 공관병을 아들처럼 생각해서 그랬다는데 본인이 낳은 아들은 냉장고 청소를 시켜봤을까요? 내 아들은 육군대장 아들이고 공관병은 아니니까 상관없다는 생각이었을까요. 아들 같아서 그랬다는 말이나 하지 마시지…….

이 사건이 관행으로 이어온 별것 아닌 일을 가지고 침소봉대한다고 말하는 분도 있고, 전 정권에서 승승장구한 분이라 정권이 바뀌었기 때문에 제거하려고 벌인 일이라고 정치적으로 해석하는 사람들도 있더군요. 늘 그래 왔고 아무 문제가 되지 않는데 박지만 씨 군대 동기라서 정치보복을 당한다고 합니다. 다른 병과보다 공관병이 쉬우니까 군대 생활을 쉽게 하려고 백을 써서 가 놓고는 딴소리한다고 말하는 분도 있더군요. 남들 혹한기 훈련받느라 눈밭에서 밤을 지세기도 하는데 으리으리 한 공관에서 냉장고 청소가 뭐 힘드냐는 것입니다. 호출 밸 착용하고 있다가 부르면 뛰어가고 골프공 심부름이나 텃밭 가꾸기 등이 뭐가 문제 될 게 있느냐고 정신력이 나약한 요즘 애들 탓을 하고 갑질한 육군대장을 기를 쓰고 옹호하는 분도 있습니다. 육군대장이 다니는 같은 교회 신도는 그가 얼마나 신실한 사람인가를 증언하는 말을 전해 듣기도 했습니다.
많은 비난 속에서 옹호하는 의견을 듣자니 일견 그런가 하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그러나
요즘은 사람들이 가장 못 견뎌 하는 것은 차별과 부당한 대우입니다. 좀 편하게 군대 생활을 하기 위해 백을 써서 공관병이 되었는지는 모르지만 군대를 간 것이지 개인 심부름을 하려고 군에 간 것은 분명 아닙니다. 장군의 부인은 본인 아들은 일반병과 신분이 다르다고 생각하는 것은 고쳐야 할 태도입니다. 내 아들이 그런 일을 당하면 어떨까? 역으로 생각해 봐야 하지 않을까요? 공관이라고 하면 개인이 사는 집인데 일하는 분은 개인 돈으로 사람을 써야 하지 공짜로 사병을 대려다 일을 시킨 것은 지금까지 관행이었다고 해도 부당합니다.
요즘 아이들은 다 자기 집에서는 한두 명밖에 없는 귀한 자녀이고 각자가 왕자입니다.

배가 고파서 밥이나 먹여 달라고 하던 때가 분명 있었습니다. 전쟁 후 5~60년대에 태어난 사람들은 폐허와 가난 속에서 살아남기 위해 밥만 먹여주면 뭐든지 했습니다. 어릴 때 동내에서 같이 놀던 내 친구들도 등허리에 신생아를 업힐 만 하면 먹고살 만한 집에 아기 보는 일로 가야 했습니다. 그저 밥만 먹여달라는 부탁과 함께요. 조금 더 크면 식모나 공장 직공으로 가서 겨우 밥만 먹고 살 만 큼 급여를 받아 생활했습니다. 그럴 땐 공관에서 가정식으로 식사를 하고 혹한기 혹서기 훈련 다 빠지고 대장과 부인의 심부름만 하고 군대를 마칠 수 있었으면 꿀 보직이라고 아니할 수 없겠지요.
그러나 시대가 변하지 않았나요?
내 아들이 귀하면 남의 아들도 귀하고 내 아들이 귀한 만큼 남의 아들에게도 인격적으로 대해야 좋은 사회이지요. 내 손자가 군대 갔을 때 호출기를 차고 어떤 사모님께 인격모독을 당하는 일은 저도 견딜 수 없을 것 같습니다. 이 기회에 지금까지 내려온 관행이라고 할지라도 시정되길 바랍니다.

앞으로 군대 갈 손자가 네 명이나 있는 할머니 입장입니다.

1 Comment

  1. 참나무.

    2017-08-11 at 19:14

    …저는 이런 뉴스 잘 안읽는데
    소상하게 올려주셔서 잘 읽고갑니다

    일본 영화 중’행복한 사전’을 본 적있는데
    신조어들도 어찌나 많은지 우리나라에도
    신조어 사전,따로 편찬해야되지싶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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