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고난 성품

31

지난 주말엔 여동생이 방학이라 우리 집에 놀러 왔기에 오전에 일찍 호수공원으로 나갔습니다.
하늘은 맑고 바람도 시원하고 입추가 지난 날씨는 확실히 달랐습니다. 호수공원 동쪽 가까이에 차를 두고 다리 아래 그늘로 갔습니다. 비가 와도 괜찮고 해가 쨍쨍 내리쬐어도 큼직한 콘크리트 다리 아래 그늘이라 안전합니다. 평상 위에 자리를 잡고 가지고 간 커피와 간식을 먹었습니다. 다리 밑에는 조그만 책꽂이가 있고 그곳에서 책을 뽑아 읽다가 가는 사람도 있었습니다. 강아지와 산책하는 사람들도 지나가고 자전거를 타고 지나가는 분들도 있습니다.

1 (1)

아이들에게 이모할머니가 되는 내 여동생은 자연학습장이라도 만난 듯 뭐라도 보여주고 알려주고 하는 일에 열심이었습니다. 토끼풀 잎사귀를 세어 보고 솔방울로 더하기 빼기도 해 보이고, 꽃에 나비가 앉아서 꿀을 빠는 모습을 자세히 지켜보게 했습니다.  다리 밑에서 가까운 애수교에서 보면 물에 잉어들이 때지어 몰려다닙니다. 잉어들은 사람들이 가까이 가면 먹이를 주나 하고 입을 뻐끔 거리며 모여듭니다. 식빵을 가져간 것이 있어서 한이와 까꿍이가 빵조각을 뜯어서 던저주니까 어디선가 잉어들이 새카맣게 몰려왔습니다. 손에 든 식빵을 다 던져주고 빵이 모자라자 까꿍이가 달려와서 더 달라고 했습니다. 까꿍이 두 개 한이 두 개 이렇게 손에 들러 주었더니 까꿍이는 큼직큼직하게 뜯어서 던져 주었습니다. 한이는 조금씩 뜯어서 주느라 아직 남았는데 바삐 던져준 까꿍이는 형 손에든 빵을 양해도 구하지 않고 얼른 채어다가 잉어에게 던져주었습니다. 자기 손에 든 것을 빼앗기고 나면 화가 날만 한데 한이는 까꿍이에게 “잉어 목 막히면 안 돼, 조금씩 뜯어서 줘야 해“ 이렇게 주의를 주며 지켜보고 서 있었습니다.

7 (1)

후천적으로 만들어지고 드러나는 성품이 있기는 하지만 타고난 성품도 무시할 수 없는 것 같습니다.
6살 한이는 남자아이인데도 마음이 너무 곱고 착하기만 해서 이렇게 거친 세상을 어떻게 살아갈까 이런 걱정이 들 정도입니다. 까꿍이는 둘째답게 적극적이고 뭐든지 자기가 하겠다고, 뭐든 자기 거라고 억지를 부리고 본인 주장이 강한데, 한이는 대부분 양보하고 이해하고 화가 많이 나야 어른들에게 이르는 정도입니다. 동생을 한 대 때리는 법도 없습니다. 대게 남자아이가 두 명 있는 집은 전쟁터를 연상할 정도로 연신 싸우고 울고, 물건을 던지고 한다는데 우리 집은 형인 한이가 착하니까 싸울 일이 없습니다. 아이에게도 이런 점은 배워야 하고 어느 땐 아이에게 부끄러울 때가 있습니다.

layout 2017-8-14

한이가 한참 팽이를 가지고 재미있게 놀고 있는데 까꿍이가 뺏어 가서 돌려주지를 않자 “야! 빨리 줘, 나 지금 그거 해야 한단 말이야” 이렇게 말하지만 까꿍이는 계속 감추고 버팁니다. 한이는 좋게 달라고 해보고 안 주면 “할머니 까꿍이가 내 것 가지고 가서 안 줘요.” 이러고 이릅니다. “까꿍아 빨리 형아에게 돌려줘. 형이 가지고 놀고 있는데 방해하면 어떡해?” 내가 말해도 꿈쩍을 안 하고 버티는 까꿍이는 배짱이 좋습니다. 어쩔 수 없이 개입을 해서 까꿍이가 들고 있는 것을 강제로 빼앗아 형을 주고 나면 까꿍이는 마치 원래 제 것이었는데 빼앗기기라도 한 듯 화를 내고, 도로 달라고 소리를 지릅니다. “까꿍이 자꾸 그러면 맴매한다.”그래도 듣지 않고 발을 구르며 억울해 해서 저 억지를 좀 혼을 내켜야지 하고 내 목소리가 커지면, 한이는 야단맞는 까꿍이가 안타까워 자기가 놀고 있던 것도 동생 손에 쥐여주며 달랩니다. 화를 안 내는 형이 만만한 까꿍이는 점점 더 기고만장하고 형은 점점 더 평화주의자가 되어가는데 그것도 보기 좋지 않고 어쩐지 한이가 마음에 걸리는 겁니다. 잘 놀고 있는 형을 고의로 툭 치고 지나가거나 방해하는 까꿍이를 보다 못 해 야단치면, 슬픈 척하는 연기도 하는데 그걸 한이가 다가가서 안아주고 달랩니다. “한이야 그러지 말고 때려줘. 형이 너무 착하니까 동생이 점점 버릇이 없는 거야.”라고 말하면 할머니 목소리가 높아진 것이 불편한지 동생을 대리고 슬그머니 방으로 들어가 문을 닫습니다. 할머니만 괜히 머쓱한 겁니다.

나의 어머니가 잘하고 우리가 가장 좋아하는 요리가 있는데 두부 졸임입니다. 두부를 썰어서 앞뒤를 노릇하니 구워 냄비에 넣고 양념을 해서 졸이는, 요리라고 하기도 약소한 두부 반찬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어릴 때부터 그 음식을 특식(!)으로 먹었기 때문에 지금도 귀한 음식으로 칩니다. 여동생이 우리 집에 놀러 오면서 두부를 사가지고 와서 나에게 해 준다며 직접 조리를 했습니다. 이모할머니가 만든 두부 졸임을 저녁 식탁에 올렸더니 우리 한이가 “이모할머니! 이 두부 정말 맛있어요.” 이러며 맛있다는 말을 여러 번 하더군요. 한이가 이모할머니 듣기 좋으라고 하는 말은 아니고 진심으로 맛있으니까 맛있다는 표현을 하는데 그걸 칭찬으로 들은 이모할머니는 감격을 하더군요.
이모할머니가 한이에게 “야~ 그 말이 나에겐 힐링이 되는 것 같다.” 이러더군요. 자기가 만든 음식을 잘 먹어 주는 것도 고마운데 맛있다고 여러 번 말하니 이모할머니 맘이 좋았던 겁니다. 맛있다고 하는 말에도 힐링이 된다고 하는 이모할머니도 감사하지만 한이는 뭐든지 좋은 표현을 잘 합니다. 착하고 예쁜 마음으로 말도 예쁘게 하는 우리 한이는 오늘 아침 날씨도 칭찬했습니다. 땀이 많은 한이는 날이 시원해지니 좋은가 봅니다.
“할머니 바람이 너무 시원해요! 시원해서 너무 좋아요.”

무더운 더위가 가고 정말 날이 시원해졌어요.
우리 착한 한이가 살아갈 세상이 맑고 평화롭기를 바랍니다.

1 Comment

  1. 윤정연

    2017-08-14 at 20:41

    손주가 여럿이다 보니 각기 다 다른 성품이지요?저는 두명 인데 오뉘라 그런지 큰손주는 한이만큼 마음이 여리고 착했습니다.둘째는 손녀인데 오빠를 좀 어렵게 여기는것 같았어요. 그런 애들이 27…23세가 되어도 아직 오빠는 양보도 잘하고 동생은 오빠가 좋아서 남자친구도 꼭 오빠 같은 사람을 만날꺼라 하더니…
    참 착한 남자를 만나서 걱정이 없답니다…수니님 손자 네명이 지금 어리지만 아마 그성품 그대로 성장해서 옳곧은 청년으로 자라겠지요~~
    참 행복하신 할머니입니다~~**

Leave a Reply

이메일은 공개되지 않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