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 오후
어떤 선생님이랑 책상에 나란히 앉아서 각자의 컴퓨터를 보면서 일을 하고 있었습니다.
한가한 틈에 선생님이 초등생 딸아이와 조그맣게 통화하는 걸 듣게 되었는데,
내일이 개학이니 미용실에 가서 머리 손질을 좀 해라,
혼자 미용실을 가기 싫어도 어쩔 수 없지 않으냐,
그래도 다녀와라.
저녁은 냉장고에는 끓여 둔 김치찌개가 있고 밥솥에 밥이 있으니 꺼내 먹어라 …….
그런 내용의 통화였습니다.
초등학교 5학년 딸아이는 직장에 나가는 엄마를 잘 돕고, 중학생 오빠와 함께 저녁 식사 정도는 알아서 해결을 할 수 있다고 했습니다. 학교 다녀오면 혼자 숙제를 하고 학원도 다녀오고 스스로 자기 일을 야무지게 잘 하지만 엄마는 좀 안스럽지요. 그림을 얼마나 잘 그리는지 큰 대회에 나가 상도 많이 받고 제법 큰 액수의 상금을 받기도 하는 것을 봤습니다.
엄마가 늦게까지 일하는 날엔 아빠가 일찍 퇴근해 와서 아이들과 함께 하려고 애를 쓰긴 하지만 매번 그렇지는 않으니까 아이가 아무리 잘 한다고 해도 어려서 신경이 쓰여 했습니다.
선생님 남편은 가정적인 분으로 집에 있는 시간에는 아내의 일이라고 구분 짖지 않는다고 합니다. 설거지도 잘하고 쓰레기 분리수거는 도맡아 하고 청소와 빨래도 주부 이상으로 숙련되게 잘 한다고 했습니다. 같이 근무를 하다 보면 남편이 장을 봐 왔느니 분리수거를 했느니 저녁 반찬을 뭐로 했느니 하면서 카톡으로 보고까지 하더군요. 난 어지르는 사람이고 남편은 어지른 꼴을 못 봐서 열심히 치워요.라면서 남편 자랑을 은근 많이 하는 모습이 예뻐서 흐뭇한 마음으로 바라보곤 합니다.
우리도 저녁을 먹고 나서 다시 컴퓨터로 일을 하는데,
선생님이 가운 주머니에 넣어둔 휴대폰의 진동이 느껴지는 듯 꺼내 들여다봅니다.
“치~ 일인 일 닭~”
무슨 암호처럼 혼잣말을 했습니다.
나는 무슨 말인지 몰라서 “일인 일 닭이 뭐지?” 물었더니
“한 사람이 치킨을 한 마리씩 먹는다네요.” 이러는 겁니다.
“일인 일 닭”이라는 말이 무슨 광고 카피 같기도 하고 구호 같기도 하고 어감이 익숙해서
“일인 일 닭 ~ 일인 일 닭” 하면서 나도 웃었습니다.
그러다 “일인 일 닭 앞에 치~는 뭐야?”물었습니다.
거기에 대한 설명은 이렇습니다.
아들은 학원 가는 날이라 저녁 밥값을 가지고 갔고요. 집에 딸아이가 혼자 있어서 저녁 걱정을 하고 있었는데 다행히 아빠가 일찍 왔다고 딸이 카톡을 보냈어요. 아빠가 일찍 왔으니 딸 저녁식사 걱정을 덜었다고 마음 놓은 것도 잠시, 문자가 와서 받아보니 무슨 치킨 값으로 3만 몇 천 원, 카드 결제 대금이 찍혔네요. (맞벌이 부부라 생활비로 쓰는 카드는 아내 휴대폰으로 연락이 온다고 합니다.)
“카드 결제 대금 뭐지?”라고 카톡을 했더니
“일인 일 닭! ^^” 이런 답장이 왔답니다.
“아빠와 딸이 일인 일 닭을 하고 있대잖아요.”.
이러면서 불만스러운 듯 입을 삐쭉 앞으로 내밉니다.
“한 사람이 치킨 한 마리를 다 먹을 수 있나?”
“우리 식구는 한 사람이 한 마리 다 먹어요.”
“남편은 워낙 체격이 크니까 한 마리 다 먹는다고 하지만 딸은 아직 초등학생이잖아?”
“그래도 다 먹어요.”
“두 마리 시켰으니 퇴근하면 조금은 남겨 두겠지?”
“아마 발라먹기 귀찮은 닭 날개 부위하고 목울대 정도 남겼을 거예요.”
“애들이 한참 먹을 때라 식비가 많이 들겠다.”
“ 네 맞아요. 코스트코 같은데 가서 일주일 정도 먹으려고 고기를 사다 놓으면서 하루 이틀이면 다 먹고 없어요. 엄청 먹어요.”
“그래~ 그렇긴 해. 우리 집은 유치원생 꼬맹이라 둘인데도 얼마나 잘 먹는지 몰라. 남자애들이라 그런지 아기들이 엄마보다 더 많이 먹는 것 같아.”
“지금은 유치원생인데도 그렇지요? 앞으로 초등학교 가면 식비가 어마어마할 거예요.”
“그래도 꼬맹이들 밥 먹는 게 얼마나 예쁜지 몰라. 그게 보기 좋아서 제 손으로 밥을 잘 먹는데도 내가 떠먹이고 앉아 있다니까. ^^”
농부는 가뭄에 제 논에 물 들어가는 소리가 듣기 좋고
부모는 흉년에 제 자식 목에 밥 넘어가는 소리가 듣기 좋다고 하잖아요.
엄마 아빠가 열심히 일해서 자기 자녀 배불리 먹이는 것은 행복한 일이에요.
비만을 걱정하기는 하지만 그래도 잘 먹는 것이 예뻐요.
엄마랑 아들이 없는 새에 치킨 두 마리를 시켜서 “일인 일 닭”하는 광경을 상상하며 혼자 웃었습니다. 180에 90킬로가 넘는 아빠와 초등생 딸이 마주 앉아 경쟁 없이(?) 느긋하게 치킨을 뜯었겠지요. 그래도 맛있는 부분은 딸에게 주고 맛없고 살이 퍽퍽하기만 한 가슴살은 아빠가 먹었을 거고요. 엄마는 닭 날개라도 한 개먹고 싶을 건데 아쉬울 것 같아서 제가 한마디 했습니다.
“선생님은 나중에 아들과 일인 일 닭 하세요.”
김수남
2017-08-27 at 05:51
네,언니! 정말 글을 읽으면서 미소가 피어납니다.’일인 일 닭’ 사랑이 피어나는 가족이심이 뵙기 좋습니다.가정이 아름답게 세워가시는 분과 함께 일 하심도 뵙기 좋으시네요.가을이 가까이 느껴집니다.더욱 높아지는 청명한 하늘이 그려집니다.늘 건강하세요.
데레사
2017-08-27 at 19:36
도전 골든벨 시간에 학생들이 자주 사용하는
말입니다.
골든벨을 울리면 2인1닭을 사주세요를
많이 하더라구요.
형부 장려 잘 치르고 왔습니다.
인생이란게 허무하기 그지없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