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석영 작가가 이런 말을 하더군요.
반공법이 시퍼렇던 시절에 북한을 간 것은 경계를 넘으려는 자신의 의지였다고!
작가로서 경계는 견딜 수 없는 구속이라는 말이었습니다. 우리는 역사의 감옥, 시간의 감옥, 언어의 감옥 등 속박과 경계 그리고 제한 속에서 살고 있는데 분단의 감옥이라도 벗어나 보려고 했던 무모함이 대 작가로서 타고난 기질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월남전에 참전하기도 했는데 우기에 참호 속에 있으면 물이 어깨까지 차오르고 포탄이 눈앞에서 터질 때에도 황석영 작가의 기도는 이랬답니다.
“살려주면 좋은 글을 쓰겠다.”
“이죽음의 고비에서 벗어나면 정말 좋은 글을 쓰겠다.”
생명의 위협 속에서도 좋은 글을 쓰고 싶어 살고자 했답니다.
안기부에 잡혀가 몇 날 며칠 취조를 당하고 나면 취조관과도 정이 든다고 합니다. 서로의 방향은 우와 좌로 완전히 다르지만 대화를 주고받다 보면 사람이라 정이라기보다 상대를 이해할 수도 있을 것 같기 때문입니다.
취조를 마친 안기부 직원이
“당신, 징역 갈 건데, 뭐 작가한테는 겪는 게 다 피가 되고 살이 되는 찌개백반이라며? 다 글로 쓸 거잖아.” 이러더랍니다.
황석영 작가는 그 말이 맞더래요. 다 망해서 밑바닥으로 가도 글 쓰면 되지, 살아남기만 하면 글로 써야지. 이런 생각이 있었던 겁니다.
지옥에 떨어져도 글을 써서 승화 시킨다는 작가의 태도는 참으로 위대해 보였습니다.
마치 많은 글감을 얻으려고 일부러 그런 것처럼 황석영 작가는 스스로 서사가 많은 세월을 살아왔습니다. 사회자는 황석영 작가가 “일부러 문제의 지역만 골라 다니는 사람 같다”라고 했습니다.
황석영 작가의 출생지는 중국 만주 장춘이고 해방 후 평양에 살다가 엄마 등에 업혀 38선을 넘어왔고 4·19 때 시위에 참여해서 친구를 총탄에 잃고, 6·3시위로 유치장에 가고, 청룡부대 장병으로 월남전에도 참전하고, 유신 반대와 민중문화운동을 이끌다가 5·18을 맞았다고 합니다. 89년 금단의 땅 북한을 방문하고 독일에 망명해 베를린장벽 붕괴와 사회주의권 몰락도 목도했답니다. 93년부터 5년간은 감옥에 있었고요. 개인의 역사로서는 너무 힘든 세월을 살았지만 피하지 않고 늘 앞장섰던 것은 “역사라는 엄처시하에서 자유롭고 싶었지만, 삶과 문학을 일치시키는 작가가 되겠다”라는 꿈을 가지고 살았다고 했습니다.
“망명하고 투옥되고 밖에서 통일 운동하고 그럴 때도 무슨 활동가로서의 그런 삶을 산다고 생각 안 하고 지금 문학적 삶을 살고 있다, 이를테면 내 문학이라는 큰 무대에 오른 하나의 배역으로 살고 있다, 그런 문학이라는 내 집이 없었으면 굉장히 방황하고 좌절했을 것 같다.”라고 해서 큰 감동을 받았습니다.
택시 운전사 영화에 대한 평가를 사회자는 뭔가 일부분만 다루어 진 것 같아 아쉽다는 얘기를 하자, 그만하면 훌륭하다며 택시 운전자가 돈 때문에 외국 기자는 특종이라는 욕심 때문에 현장에 갔지만 그 이상 할 수 있는게 뭐겠느냐고, 모든 것을 포용하는 듯했고. 촛불시위를 우리의 높은 시민의식으로 평가했습니다. 피 한 방울 흘리지 않고 폭력 없이 정권을 바꾼 것은 우리 사회가 그만큼 성숙되었다고 만족을 넘어 자랑스러워했습니다.
여태 저항에 앞장서고 젊은이들을 선동했던 황석영 작가도 나이 듦인가?
아니면 이 나라가 진정 작가가 원하던 방향으로 가고 있다고 안심하는 것일까?
“이제는 돌아와 거울 앞에선 누이 같다”라는 느낌이 들 정도였습니다.
자신이 선택하기도 하고 역사의 엄처시하에서 가시밭길을 걸어온 사람이 이제 고향에 돌아온 듯 한결 편안해 하는 모습이 보였습니다.
오에 겐자부로나 르 클레지오는 황석영 작가에게 “서사가 많은 나라에 태어난 네가 작가로서 부럽다”라고 하더랍니다. 그때마다 황석영 작가는 시니컬하게 “나는 니 자유가 부럽다.” 이랬답니다. 정치적 사회적 압박만 억압이 되는 게 아니라, 역사도 속박이고 억압이 되는데, 서사적 재편성으로 자기 서사를 만들고 엮어 나가는 소설가는 정말 대단한 것 같습니다.
개인의 삶에서 서사가 많은 것은 고단한 삶이고 불편하고 괴롭지만 작가에게는 찌개백반처럼 모든 것이 글을 쓰는데 재료가 되는 것을 알았습니다.
누구라도 자신의 인생을 소설로 쓰면 10권도 더 쓴다고 말로는 하지만 정작 쓰지는 않잖아요. 그러나 작가는 일부러라도 서사를 만들어 가는 사는 삶을 사는 것을 황석영 작가에게서 봤습니다.
유익한 시간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