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께 안부 전화를 드리면 “언제 오냐?”고 확인하거나
“다 왔다 갔는데 너만 안 온다.”라고 억지를 부리기도 합니다.
전에는 어머니를 뵈러 가겠다고 해도
“바쁜데 오지 마라” “나 잘 있다.” “뭐 힘들게 오냐. 내가 언제 가든지 하마“
“목소리 들었으니 됐다” “잘 하고 있어라.”
이렇게 씩씩하고 당당했던 분이 이제는 무조건 오라고 합니다.
8월 방학 중엔 작은 딸들이 교대로 자주 드나들었는데도 외로우신 가 봅니다. 주말에 가겠다고 전화드리면 전화받은 날부터 기다려서, 간다고 예고하고 가기도 미안합니다. 새벽부터 안절부절 하며 밖을 내다보며 계신답니다. 이번에도 오전에 일을 보고 오후 늦게 간다고 했는데도 어머니는 하루 종일 기다렸다고 해서, 다음부터는 간다는 얘기를 하지 말고 들이닥치듯이 가야 할 것 같습니다.
어머니는 올봄에 발목을 다쳤습니다.
병원에 입원하여 골절된 발목을 수술하여 핀을 박고 두어 달 깁스를 하고 지내면서 휠체어를 타셨습니다. 퇴원 후에 집안에서도 휠체어로 이동을 하시다가 얼마 전부터는 지팡이를 짚으면 걸을 실 수 있고 이젠 지팡이 없이도 걸으실 수 있는데 안 걸으려고 합니다. 발목에 박은 핀이 두 개 남아 있다는 것을 알고 그걸 빼야 완전히 걸을 수 있다고 생각하시는 것 같습니다. 뼈에 박은 핀은 그냥 두어도 되고 1년 정도 두었다가 뺀다고 해도 그것 때문에 걷기를 두려워합니다. 워낙 부지런하고 깔끔한 분이고 독립적인 성품이라 남을 도울지언정 누구의 도움을 받기 싫어하는 분인데도 나이 탓인지 인지저하 때문인지 응석이 늘었습니다.
어머니는 호랑이 사자, 코끼리 같은 큰 짐승들 보는 것을 좋아합니다. 일산에 살 때도 어린이대공원에 호랑이를 보러 가자고 하면 좋아하셔서 봄가을로 동물 구경을 가곤 했습니다. 대구는 달성 공원엘 가야 그런 동물들을 볼 수 있습니다. 동물 구경도 하고 어머니께 바람을 쐐 드리려고 동생 내외와 대학생인 조카아이와 함께 다섯 식구가 달성공원을 갔습니다. 개학을 해서 등교를 해야 하는 조카아이에게 “고모랑 할머니랑 놀러 가자. 달성공원에 가서 할머니 좋아하는 호랑이 구경하고 남산 타워에 가서 맛있는 것 사줄게” 이런 말로 유혹을 했습니다. (남산타워는 서울에 있는 것이고 대구에는 83타워가 있는데 편의상 남산타워라고 합니다.) 고모의 유혹에 넘어간 조카는 학교 가는 것도 중요하지만 할머니랑 추억을 만드는 것도 손해는 아닐 것 같은지 잠시 생각해 보더니 같이 가겠다고 했습니다. 착한 막냇동생 내외도 군말 없이 스케줄을 조정해서 함께 가겠다고 했습니다.
조카아이는 대구에 달성공원이 있는 줄도 몰랐답니다. 한 번도 안가 봤다는 것입니다. 서울에 사는 사람들이 남산 구경 안 가듯 대구에 살면서도 대구에 달성공원이 있는 줄, 안 가보면 모릅니다. 일산 사람인 나는 어머니가 대구 아들 집으로 가신 이후에 어머니를 뵈러 가서 날씨만 괜찮으면 달성공원을 갔더니 대구에 사는 사람보다 내가 더 달성공원을 잘 알았습니다. 달성공원을 크게 한 바퀴 돌면 사슴 원숭이 호랑이 사자, 코끼리 물개 등의 짐승들을 볼 수 있습니다. 3년 후에는 동물들은 다른 곳으로 이사 시키고 동물원 없이 공원으로만 조성한다는 계획이 있다고 공원 앞 유료 주차장 아저씨가 알려 주었습니다.
하늘은 파랗고 흰 구름이 둥실둥실 떠가는 전형적인 초가을 날씨였습니다. 햇볕은 따갑지만 나무 그늘에 들어가면 시원합니다. 어머니 휠체어를 가지고 갔는데 방향을 조절하는 앞바퀴에 바람이 없어서 잘 구르지 않기에 공원 휠체어를 빌려서 타고 다녔습니다.
함께 못한 형제들 보라고 실시간으로 카톡에 어머니 사진을 올렸더니 여동생이 “엄마 지팡이 짚고 걸으시라고 해. 걸어야 다리에 힘이 생기지.”그러는데 어머니는 걸으려는 시도를 하지 않고 휠체어를 당연히 밀어 줄 것으로 알았습니다. 어머니가 동물을 보며 좋아하시는데 “내려서 걸어보세요.” 이렇게 하긴 어려웠습니다. 주로 남동생이 휠체어를 밀었고 나와 올케가 자주 교대를 했습니다. 휠체어 미는 것이 어려워서가 아니라 어머니가 휠체어에 앉아 계시는 모습이 마음이 아팠습니다. 자존심이 유난히 강한 어머니는 누구에게 의존을 하거나 신세 지는 일은 딱 질색하는 분인데 이젠 걷는 것도 귀찮아서 밀어주는 휠체어로 이동을 하는 것을 보며 어머니가 점점 아기가 되어가는 느낌입니다.
대구 83타워에 올라 구경하고 맛있는 밥도 먹고 하는 일까지는 즐겁지만 어머니와 이별하는 일은 정말 마음이 아프고 어렵습니다.
8층에서 내려다보고 계신 어머니
내 손을 잡고 현관 밖에까지 따라 나온 어머니는 엘리베이터를 기다리는 동안에도 손을 놓지 않습니다. 엘리베이터가 도착해서 올라타면 문이 닫히기도 전에 “언제 또 올래?”묻습니다.
” 네 금방 또 올게요.” 말은 그렇게 하지만 한 달에 한번 어머니를 뵈러 오기도 쉽지 않다는 것을 아시면서도 그렇게 말씀하시니 돌아서는 발걸음이 가볍지 않습니다.
엘리베이터에서 내려 아파트 출입구를 나와 어머니가 계신 8층을 올려다보면 어머니는 창가에 서 있습니다. 엘리베이터가 내려가고 나면 부리나케 집으로 들어가 거실을 지나 베란다에서 방충망까지 열어놓고 고개를 내밀어 아래를 내려다보고 있습니다. 얼른 가라고 손을 저으시기는 하지만 마음이 참 짠해지는 순간입니다. 차에 올라타서 나는 큰길로 나오지만 어머니는 그때부터 서운한 마음에 그곳에 한참을 더 서 계셨을 겁니다.
호랑이 같으시던 어머니의 성정은 다 어디 가고 저렇게 약하고 외로움을 타실까, 집으로 오는 내내 마음이 울적했습니다. 이제는 용돈을 드려야 출입이 자유롭지 않으니까 쓸데도 없고, 소식을 하시니 맛있는 것도 그다지 즐겨 하지 않고, 오직 사람이 그립고 함께 놀아줄 자녀가 필요한데 다 일이 있어 바쁘니…….
김 수남
2017-09-04 at 13:43
네,언니! 정말 헤어지시기 섭섭하셨겠어요.어머니 모습이 여전히 고으시고 뵙기 좋습니다.인식 능력이 떨어지심도 연세가 계시니 자연스럽게 받아 들이셔야겠습니다.8층에서 서서 내려다 보시는 어머니 모습에 가슴이 찡해집니다.그렇게 늘 보고 싶어하시고 기다리시는 어머니가 계심이 부럽습니다.속히 혼자 걸으실 마음도 열리시고 다리 힘도 더해지시길 기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