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틀

untitled18 (1)

우리 어릴 때 팽이는 아버지가 나무를 깎아서 직접 만들어 주셨고 초등학교 다닐 무렵에야 기계로 깎은 나무 팽이를 문구점에서 살 수 있었습니다. 낫이나 칼 같은 도구로 아무리 정교하게 만들었다고 해도 기계로 깎은 나무 팽이를 따라가지 못했습니다. 아버지가 만든 투박한 팽이를 가지고 놀다가 기계가 찍어낸 팽이는 남자아이들에겐 신세계였습니다. 그 팽이 하나를 얻기 위해서 수없이 졸라야 했습니다. 물자가 귀하던 시절이라 나무 팽이 하나도 쉬 가질 수 있는 장난감이 아니었습니다. 오빠는 그 팽이가 너무도 소중해서 주머니에 넣고 다니다가 잘 때도 손에 쥐고 잠을 잤습니다. 팽이는 손때가 묻어서 반들반들했습니다. 가장 아래 꼭짓점에 못처럼 생긴 반들반들한 철이 박혀있어서 그 부분이 바닥에 닿아서 돌아가야 하기 때문에 팽이의 가장 중요한 부분입니다. 팽이 윗면에는 페인트로 빨강 파랑 노랑 원이 그려져 있는데 팽이가 돌 때 색깔 별로 원이 그려지는 것이 신기해서 그걸 들여다보느라고 팽이놀이하는 오빠들을 졸졸 따라다니기도 했습니다.

요즘엔 베이블레이드라는 팽이 놀이가 아이들에게 유행입니다.(우리 집에서요)
우리 한이는 나만 보면 베틀 하자고 조릅니다. 한이가 말하는 배틀은 전투나 투쟁 싸움 같은 뜻이 아니라 시합하자는 뜻입니다. 장난감 팽이로 하는 베틀이지만 하다 보면 재미도 있고 은근 경쟁심도 생기고 웃기지만 통쾌한 순간도 있습니다.

untitled12 (1)

나는 순발력이 떨어지고 둔한 사람이고 경쟁하는 것을 싫어해서 타인과 베틀은커녕 승패를 가르는 종류는 구경하는 것도 즐기지 않는 사람입니다. 흔한 내기도 하지 않고 화투짝도 못 맞출 정도로 놀이에는 젬병입니다. 그러다 최근 들어 손자들과 하는 베틀이 은근 중독성이 있어서 자주 팽이 런처를 들고 손자들에게 게임하자고 덤비기도 합니다. ^^
untitled11 (1)
베이블레이드라는 팽이는 한이가 칭찬 스티커를 모아서 하나둘 장만한 것입니다. 냉장고 옆면에 칭찬 스티커 판을 붙여놓고 책을 읽거나 피아노를 치거나 칭찬할만한 일이 있을 때 칭찬 스티커를 하나씩 붙여서 50개의 칭찬 스티커 판이 다 차면 베이블레이드를 하나씩 사 줍니다. 칭찬 스티커를 채워서 사는 것 외에는 어린이날이나 생일날에도 하나씩 사서 모은 것이 열댓 개 정도 됩니다.
untitled13 (1)
말이 팽이지 가격이 장난감치고는 상당히 나갑니다. 팽이마다 유난스러운 이름이 다 있습니다. 갓 발키리. 질리언 제우스. 빅토리 발키리….. 그뿐 아니라 레이어, 디스크, 프레임, 드라이버, 런처…. 부품 이름을 알아야 하고 레이어는 모양을 보고 이름을 불러주어야 합니다. 그리고 각각의 공격력과 방어력 지구력 기동력 등도 파악하고 있어야 게임에 유리합니다. 그런데 겨우 한 개의 베이블레이드 이름을 외우고 그의 성능을 익혔다 싶으면 더 강력하고 멋진 베이블레이어가 나와서 유혹을 합니다.

배틀 용어도 외어야 하는데 스핀 피니시 버스트 피니시 오버 피니시 등등이 있는데, 저 돌다 멈추면 스핀 피니시, 부딪쳐서 경기장 밖으로 나가게 하는 오버 피니시, 상대의 팽이를 분리시키는 버스트 피니시로 승패가 갈립니다. 아직 초보 단계인 할머니는 상대의 팽이가 레이어 프레임 드라이버 분리되는 버스트 피니시로 이기면 무척 통쾌합니다. 그렇지만 이기는 경우는 극히 드물고 매번 집니다. 런처를 힘 있게 당기라고 한이가 조언을 하기도 하고 까꿍이가 레이어를 못 맞추어 쩔쩔매면 “할머니 내가 해 줄게”하고 조그만 손으로 조물거리 맞춰줍니다.

untitled17 (1)

한참을 놀다가 아이들이 놀이터를 나가자고 하면 따라가 모래 장난을 하는 것을 바라보고 있기도 합니다. 남자아이들 둘을 따라다니며 노는 것도 많은 에너지를 필요로 합니다. 형제나 자매 등 성별이 같은 것이 아이들 키우는 일은 좀 수월할 것 같습니다. 만약 남매 면 팽이놀이하다가 인형놀이하다가 그래야 하는데 같은 놀이를 즐길 수 있어서 다행입니다. 아이들과 함께 놀기 위해서는 에너지만 필요한 것이 아니라 공부도 해야 합니다.  그래도 요즘들어 팽이놀이가 재미있는 할머니입니다.

1 Comment

  1. 김수남

    2017-09-06 at 20:53

    한이랑 까꿍이 많이 컸네요.아이들과 함께 즐거운 놀이도 하시고 행복한 예쁜 할머니이심을 축하합니다.

Leave a Reply

이메일은 공개되지 않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