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금만 뛰어가면 보행신호등이 꺼지기 전에 건널목을 건너갈 수 있는데 허겁지겁 뛰는 것이 싫어서 어슬렁어슬렁 걸어가서 다음 신호를 한참씩 기다리고 서 있고. 잠시라도 서있기보다는 앉을 곳이 없나 두리번거리고, 앉으면 눕고 싶고, 누우면 자고 싶고……. 게으른 사람의 표본이 접니다.
새벽에 일찍 일어나야 성공한다. 부지런한 새가 먹이를 찾는다. 잘 잠 다 자고 무슨 성공을 바라냐? 이런 말들이 힘을 얻고 아무리 압박해도 저는 이런 말에 솔깃하지 않습니다. 저는 잠을 줄여가면서 하고 싶은 일이 아무것도 없기 때문입니다.
낯선 곳에 여행을 가서도 새벽부터 강행하는 일은 질색입니다. 비싼 돈 내고 온 여행인데 무조건 많이 봐야 한다고 밤늦도록 뭘 더 보겠다고 다니는 것도 싫어합니다. 그럴 거면 여행을 왜 왔느냐고 하는 항의를 듣기도 했는데, 아무리 대단한 일도 잠을 줄여가면서 하고 싶지 않아서 그럽니다. 일단 하루에 7~8시간 이상 충분히 자야 나머지 시간이 개운하고 즐겁습니다. 잠을 덜 자면 피곤하고 괜히 화가 나기도 합니다. 난 잠자는 시간이 젤 좋다고 말하다가 “죽으면 만날 잘 텐데 왜 미리 죽는 연습을 하느냐?”라는 소리도 들었습니다.
그런데 저의 지인 한 분은 한겨울 영하 20도가 넘는 눈보라 속에 북한산 헤매기, 태백산맥 종주하기, 지리산 비박 종주 이런 걸 좋아하는 분이 있습니다. 듣는데서 ” 참 성격 이상하다.”라고 했다가 두고두고 항의를 듣기는 했지만 왜 피곤하게 그 막막한 길을 홀로 걷는지 모르겠습니다. ㅎ
세계 최초의 실크로드 도보 여행자 베르나르 올리비에는 “나는 걷는다.”라는 책을 써서 세계적으로 독자들의 찬사를 받은 분이 있기는 합니다. 그는 터키 이스탄불에서 중국 시안까지 12,000km를 홀로 걸으면서 책을 썼습니다. 은퇴 후에 우울증에 빠졌던 그는 무력감에서 헤어 나오기 위해 혼자 떠났고, 고독한 도보 여행을 통해 비로소 삶의 의미를 재발견했다는 분입니다. 혹시 이분도 사유가 깊은 분이니 국토 종단을 하면서 글을 쓰실지 모르겠습니다.
이분이 최근에 휴전선 부근에서 시작해서 부산까지를 종단하려고 시작했답니다. 한 번에 다 하는 것은 아니고 시간이 날 때마다 2~3일씩 끊어서 걷는답니다. 대진에서 주문진까지 걷고 서울 집으로 버스를 타고 돌아왔다가 다시 이어서 주문진에서 시작해서 강릉을 지나 정동진까지 걷고 다음번에 이어서 걷고 그럴 예정이라고 합니다. 걸으면 몸도 머리도 맑아져서 좋다고 하는군요. 난 5km 정도 되는 호수공원 한 바퀴만 걸어도 다리가 무겁고 힘든 사람이라 공감하지는 못합니다. 사람마다 체질과 성향이 달라서 그런 것 같습니다.
운동하고 걷는 것이 취미이다 보니 보성에 가면 보성 출신의 지인에게 신고를 하기도 하는데 이번엔 강릉을 지나며 강릉 출신 저에게 구역 신고를 하면서 사진 몇 장을 보내오셨습니다. 강릉 바닷가를 끼고 난 솔밭 사잇길 사진이나 물새들이 소복하게 내려앉은 모래사장 사진 그리고 저의 모교 사진이 있었습니다. 제가 다녔던 학교 앞을 지나오면서 찍은 사진 몇 장을 받고 제가 감동을 받았습니다. 히말리가 시타가 서있는 교문 사진은 저를 4~50년 전 여학생으로 데려가기에 충분했습니다. 학교 다닐 때 교복 하얀 칼라에 매달고 다니던 학교 교표가 붙어있는 교문도 감동이었습니다. 카라만 때어 세탁하느라 빼놓은 교표를 깜빡하고 안 달고 갔다가 교문에서 선도부 선배에게 잡혀서 서 있던 자리도 보입니다. 그렇게 우람하고 컸던 나무가 45년이 지난 지금도 별로 자라지 않고 그 모습 그대로 그 자리에 있는 것이 신기하고 이상합니다.
지인의 체력과 정신력도 놀랍지만 더욱 인상적인 것은 그분의 이런 감각입니다. 냉정한 듯하지만 의외로 이런 부분이 있습니다. 동창 모임이 있어서 여러 번 고향에 간 적이 있는데 친구들과 바닷가 리조트에서 모여 놀고 헤어져서 졸업하고 학교를 가 볼일이 없었습니다. 그런데 의외의 방법으로 모교를 보게 되어서 행복했습니다.
이런 생각을 하게 만드는 것이 걷기의 힘일까요? 이렇게 매력적인 지인이 오래오래 행복하게 걷는 모습을 보고 싶습니다.
게으른 사람에게는 어울리지 않는 말이지만 베르나르 올리비에가 이런말을 했다는 군요.
왜 안 떠나는가?
영원한 휴식을 취하게 될 날이 점점 더 가까워지는데
왜 피곤하다는 핑계를 댄단 말인가.
데레사
2017-09-21 at 14:51
나도 어디든 부지런히 열심히 살피는 편입니다.
패키지 여행을 가면 본 스캐쥴을 마치고도 밤이나 새벽에 틈만
나면 주변을 나가 보거든요.
이게 좋다, 저게 나쁘다가 아니라 사람은 각자 자기가 지향하는
방법대로, 성격대로 살아가는거라 이런 사람도 저런 사람도 있어서
재미가 있는 거지요.
내일 3박 4일 일정으로 진주쪽으로 떠납니다.
손녀를 데리고 모녀 3대가 함께 하는 여행입니다.
위블드 그렇고 우리집 컴도 뭔가 고장이라 사진도 안 올라가고
그래서 좀 우울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