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의 직장에 돌이 된 손자가 있는 할머니가 있습니다.
딸이 결혼해서 얻은 첫 외손자라 이 할머니가 손자 사랑에 푹 빠졌습니다. 우리 병원에 관한 전반적인 일을 관리하는 분이라 씩씩하고 대단히 사무적이고 냉정한 분입니다. 병원 안에서 일어나는 인사관리와 리스크 관리가 쉽지가 않거든요. 그런데 손자 자랑을 할 때는 달달하고 사랑스러운 할머니 모습이 됩니다.
그분 딸이 전업주부라 아기를 정성껏 정말 잘 키웁니다.
정성을 들여 이유식을 만들어 먹이고 잘 돌봐서 그런지 돌이 겨우 지났는데 걷기도 잘하고
노는 것이 남다르고 잘 생기고 귀엽습니다. 이 할머니는 시간만 나면 “얘 좀 보세요. 아휴~ ” 이러면서 휴대폰을 열어서 딸이 수시로 보내는 손자 사진을 보여줍니다. 돌이 지나도록 아직 실물은 못 봤는데 눈이 크고 영리하게 생긴 아이가 휴대폰 속에서 자라고 있습니다. 아기가 태어나서 웃고, 목욕하고, 처음으로 책을 보고, 이유식을 먹고, 보행기를 타고, 발자국을 떼고 걸음마를 하는 모습 등등, 아기를 지속적으로 보고 있으니까 사진만 보면서도 정이 듭니다.
요즘엔 사진찍으려면 이래요
이런 모습을 손자가 없는 사람은 이해하지 못하실지 모르겠는데 손자가 있는 분은 그 기분을 공감하고 남습니다. 나는 그분 마음을 알기에 더욱 크게 공감합니다.
“아휴 정말 귀여워요. 너무 사랑스러워요. 예뻐요. 너무 영리한 것 같아요. 튼튼해요.” 이러면서 내가 할머니로서 들어서 좋았던 찬사를 하게 됩니다.
손자가 자신에게는 귀하지만 남들에게까지 그러리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데도 할머니가 되면 왜 그러는 걸까요?
할머니들 모임에서 서로 손자 자랑을 하려고 해서 벌금을 내고 자랑하는 법이 생겼다가 요즘엔 차비를 줘서 먼저 가라고 한다는군요. 그만큼 손자 자랑에는 절재가 안 되는 것이 있습니다.
사실 자랑일게 뭐 있겠습니까?
그냥 눈코 입 있고 밥 먹고 키가 자라고 감기 걸리고 …….그러면서 자라는 것인데 내 손자는 그 평범하고 일상적인 것들이 즉 밥 잘 먹는 것도 신기하고 키가 자라는 것도 신기하고 무슨 말을 해도 신기한 것입니다. 다른 애들도 다 그렇겠지 내게 특별한 것이지요. 그 손자를 낳은 엄마가 내 딸인데요. 뭔들 안 해봤겠어요. 그런데 왜 그렇게 신통하고 예쁘고 대단해 보이는지 말로는 설명이 안 됩니다.
손자를 키워보신 분들은 속으로 “다른 집 애들도 다 그래.”라고 시큰둥할 것이고, 안 해보신 분은 “참 별나기도 하다. 신기하면 본인에게나 그렇지 남들에게도 그럴까?”이러면서 핀잔을 주고 싶을 겁니다.
그런데 속없이 자랑이 하고 싶으니 어쩝니까? ^^
우리 까꿍이는 요즘 말을 배워서 못하는 말이 없어요.(들어본 버전이지요? ㅎㅎㅎ)
할머니 이건 뭐예요?
이건 왜 이래요?
왜 뛰지 말라고 해요?
왜 놀이터에 안 가요?
하루 종일 입에 “왜?”를 달고 삽니다.
새벽 6시에 방으로 와서 내 눈을 손가락으로 벌리며” 할머니 왜 자꾸 자요?” 이럽니다. 할머니 자꾸 자는 것이 아니라 일어날 시간이 안됐어. 이러며 더 자 보려고 해 봐도 소용이 없습니다. “할머니 쉬 마려워요.” 이러면 안 일어나고 배길 수가 있겠어요?
저 위에 할머니가 보여주는 사진을 한참 봐 드리고 그분이 돌아가시고 난 후
같이 사진을 본 선생님이 저에게 묻습니다.
“선생님은 왜 손자 자랑 안 해요?”
제가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음 ~ 나도 자랑해요.”
“자랑하는 거 못 봤는데요?”
“자랑하는 곳이 있어요.”
“어딘데요?”
제가 뭐라고 했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