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 남편이 13년 동안 병석에 있다가 돌아가셨는데 그 환자를 담당했던 의사가 아내인 내 친구에게 진심으로 존경한다며 머리를 숙였답니다. 그 사연은 이렇습니다.
딸이 고등학교, 아들이 초등학교 다닐 즈음 남편이 뇌출혈로 쓰러져 환자가 되었습니다. 친구는 지방공무원으로 근무 중이었고 남편도 건강한 모습으로 회사를 다니고 있었는데 느닷없이 가장이 쓰러지는 불행이 닥치자 모든 것이 힘들어지기 시작했습니다. 쓰러졌을 때는 남편을 건강한 모습으로 되돌려 놓겠다는 의지를 가지고 좋다는 병원은 안 다녀본 곳이 없답니다.
뇌출혈 치료 잘 한다고 소문난 경희대 한방병원으로, 아산병원으로 모시고 다니면서 중한 병이지만 극복하여 남편이 새 삶을 살아갈 수 있도록 최선을 다했는데 병은 하루하루 깊어져 갔습니다. 환자에게 좋다는 것, 특히 머리에 좋다는 음식은 안 해드린 것이 없고 뇌출혈에 관련된 것은 박사 논문을 쓸 거냐고 사람들이 말할 정도로 연구를 해 가며 남편을 간병했습니다.
그렇게 애를 써서 돌봤지만 환자는 점점 더 쇠약해져갔고 점점 기력이 떨어져 갔습니다. 남편이 쓰러지고 처음에는 형제나 친척들이 열심히 도와주었지만 그 기간이 길어지자 “환자를 요양원에 모시라.”라는 소리를 자주 듣게 되었습니다. 친정 언니도 동생이 하는 고생이 안타까우니까 “요양원에 보내면 잘 돌봐 줄 텐데 회복의 기약이 없는 사람을 왜 집에서 붙들고 고생을 하느냐?”라고 했고 나중에는 친정아버지까지도 “제발 환자는 요양원에 보내고 네가 살 궁리를 하라.”라고 하시더랍니다. 그런데 친구는 친정 언니고 친정아버지고 남편을 떼어 요양원에 보내라는 말을 하는 사람들이 다 서운했답니다.
내 남편이고 내가 책임지고 돌볼 테니까 그런 말하려면 우리 집에 오지 말라고까지 했답니다. 사실 낮에는 직장에 나가고 밤에는 환자의 대소변을 받아 내면서 사는 것이 얼마나 어려웠겠습니까?
친구가 출근한 낮 동안엔 간병인이 보살펴 주었는데 간병인이 전하는 말로는 환자가 낮동안 아내만 기다린다고 하더랍니다. 아내가 출근하고 나면 시계를 수시로 쳐다보며 아내가 퇴근해서 집에 올 때를 기다리는데, 아내가 올 때쯤 되면 남편은 불편한 몸을 간병인에게 부탁해서 거실에 나와 앉아 있답니다. 아내를 보면 편마비로 잘 쓰지도 못하는 손을 들어 손뼉을 치며 입꼬리가 크게 올라가며 좋아하는데 그 모습이 천진난만한 어린아이 같기도 하고 천사처럼 보이더랍니다. 환자는 언어 실조라 말을 잘 못했지만 남편의 미소가 그렇게 보기 좋았답니다.
아내를 만나 반가워하는 남편의 손을 잡고 흔들면서 ” 당신 오늘도 약 먹고 운동하느라고 애썼어.”라고 칭찬하면 얼굴이 더욱 환해지면서 더없이 행복한 모습이었답니다. 아내를 아이가 엄마 기다리 듯하고 좋아하는데, 그런 남편을 어떻게 떼어서 요양원에 보낼 수 있냐고 아무리 고생스러워도 남편은 내가 끝까지 돌보겠다는 각오를 다졌답니다.
그러는 사이에 남편의 상태는 더욱 나빠졌고 간병하는 아내도 나이를 더 먹어 힘에 부치게 되었는데, 아버지가 쓰러질 당시 13살이던 아들이 23살 청년이 되더니 어느날 엄마 앞에 무릎을 꿇으면서
“엄마! 아버지는 이미 병들었지만 엄마가 이렇게 고생하다가 엄마마저 병들면 나는 어떻게 해요. 아들을 고아 만들고 싶지 않으시면 아버지를 요양원에 보내십시다.” 이러더랍니다.
친구가 무릎을 꿇은 아들의 손을 잡고
“네가 말하는 뜻을 충분히 알겠다. 누나는 결혼해서 집을 떠났고, 엄마마저 쓰러지면 세상에 너 혼자 남는데 걱정하는 것은 당연하다. 그렇지만 엄마는 아빠를 포기하지 못하겠다. 내 남편인데 병들었다고 해서 남의 손에 맞기고 싶지 않다. 아버지는 끝까지 내가 돌보겠다.” 이렇게 말했더니 아들도 더 이상 아버지를 요양원에 보내자는 말을 하지 않더랍니다.
쓰러진지 13년이 지나고 남편은 폐렴이 와서 병원 중환자실에서 몇 달을 보내다 결국은 회복하지 못하고 돌아가셨습니다. 그때는 공무원으로 있다가 정년퇴임을 하고 환자만 돌봤는데 아무리 간병을 잘 한다고 해도 13년이나 병석에 있던 환자는 더 이상 버틸 체력이 없었던 겁니다. 중환자실에 입원시켜 놓고도 하루에 3번 면회시간마다 한 번도 거르지 않고 면회를 하면서 환자를 돌봤더니 처음엔 귀찮아하던 병원 직원들도 이해를 하더랍니다. 거의 의식이 없는 환자가 커다란 눈을 뜨고 아내를 바라보던 그 모습을 잊을 수 없다고 했습니다. 할 수만 있으면 임종도 집에서 맞고 싶었지만 그건 허락이 안 되었답니다. 산소호흡과 콧줄 소변줄 등을 하고 있어서 집으로 보낼 수 없기 때문이었을 겁니다.
결국은 병원 중환자실에서 돌아가시고 장례를 치른 후에 담당 의사에게 감사 인사를 드리러 갔더니 의사가
“진심으로 보호자분을 존경한다고. 만약 내가 쓰러지면 내 아내는 나에게 13년 동안이나 그렇게 못할 거라고 입장을 바꿔 내 아내가 쓰러져도 나 역시 그렇게 못할 거라고 대단하다.”라며 의자에서 일어나 허리 굽혀 인사를 하더랍니다.
이제 돌아가신지 2년이 되었는데 남편의 간병에 최선을 다했기 때문에 친구는 후회가 없다고 했습니다. 만약 중간에 포기하고 병든 남편을 남의 손에 맡겼으면 계속 마음이 아프고 미안했을 것이지만 병들었지만 남편과 함께한 세월이 감사하다고 말합니다. 지금도 구석구석 남편의 추억이 배어있는 집에서 침대 옆에 남편의 사진을 걸어놓고 살고 있습니다. 퇴근하면 자신을 어린아이처럼 반겨주던 남편의 미소를 늘 떠올린답니다. 요즘에도 남편이 즐겨 사용하던 컵을 가끔 꺼내보고 명절이나 제사에는 남편의 컵에다 커피를 따라 놓고 함께 마신다고 합니다.
데레사
2017-10-30 at 17:24
정말 존경스럽습니다.
요새 이러시는분 안계시거든요.
남은 생 복받으실겁니다.
김 수남
2017-10-31 at 00:14
언니! 정말 참 사랑을 아시는 분이시네요,저는 지금 눈물이 핑돌아 내립니다.참으로 귀한 좋은 친구를 가지셨어요.언니 친구 분 정말 저도 존경스럽습니다.친구 분의 두 자녀들이 참으로 삶의 의미를 어머니를 통해 제대로 잘 배웠겠어요.두 자녀들의 삶이 더욱 복되고 행복하게 되어질 것이 믿어집니다.언니도 자주 친구 분의 힘과 위로가 되어드리며 오래오래 함께 건강하시길 기도합니다.
초아
2017-11-04 at 18:54
존경하지 않을 수 없는 분이시네요.
처음 이 글을 읽고 댓글을 올리려다 실패했어요..ㅠ.ㅠ
응답해주지 않드라구요.
가끔 제 위블에 들리려해도
아에 문을 열어주지 않기도 하구요.
잘 지내시죠.
건강하셔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