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말에 어머니 뵈러 대구 간다.”
카톡에 알렸더니 여동생들이 나도 나도 하면서 대구에서 만나자고 합니다.
주말에 더 바쁜 사람들인데 열 일을 젖히고 어머니 뵐 겸 형제들이 다 모이자는 것입니다.
그렇게 해서 뜻하지 않게 형제들의 번개가 대구에서 이루어졌습니다.
일산은 비도 오고 바람이 불면서 날씨가 몹시 사나웠는데 대구에 도착하니
수목원에서 국화 전시회가 열리고 있을 정도로 날이 온화해서
어머니를 모시고 만추와 국화꽃을 보며 즐거운 시간을 보냈습니다.
어머니가 지난봄에 발목 골절을 당한 후로 걷는 것이 자유롭지 않아,
공원 입구에서 휠체어를 빌렸습니다.
오후 4시가 넘은 시간에 대구 수목원에 도착했는데
가을 석양과 단풍과 국화가 얼마나 곱고 아름다운지
이보다 더 아름다운 가을을 느낄 수 있는 장소는 없어 보였습니다.
급하게 이루어진 번개인데도 형제 5명이 다 모였고 어머니와 함께 가을을 만끽한
더없이 행복한 순간이 되었습니다.
남동생과 여동생이 서로 휠체어를 밀겠다고 해서 나에겐 차례조차 오지 않았습니다.
나는 어머니 지팡이를 대신 짚고 다녔습니다.
막내 여동생은 휠체어를 밀다가도 틈만 나면 어머니 볼에 얼굴을 비비고 뽀뽀를 하면서
“우리 엄마 우리 엄마” 하면서 애교를 부립니다.
어머니는 “야~ 야~ 사람들이 본다.”이러면서도 싫지 않은 표정입니다.
우리는 어머니가 좋아도 그렇게 달려들어 그러지를 못하는데 막내는 막내티를 내는 건지
남동생도 똑같이 그럽니다.
공원에서도 자주 그러기에 내가 좀 벌쯤 하게 쳐다봤나 봅니다.
“언니~ 내가 이러는 것이 싫어?ㅎㅎㅎ”
동생은 센스도 빠르고 웃기도 잘하고 말이 워낙에 많습니다.
휠체어를 밀면서도 수다쟁이라 심심할 틈이 없이 여러 말로 우리를 즐겁게 합니다.
“언니, 엄마가 재산이 많다면 내가 이러면 보기 싫겠지? 저 여우 같은 것이 엄마 유산 바라고 저런다고.ㅎㅎㅎ”
“그래 그럴 수도 있겠다. 어머니가 재산이 없으니 다행이지 만약에 엄마 재산이 많다면 서로 더 달라고 어머니를 괴롭힐 거 아니야?“
“누군 더 주고 난 덜 주는 것이 아닐까 해서 서로 경계할 수도 있겠지.”
” 난 순수하게 엄마를 좋아하는데도 ‘저게 뭘 바라고 저러지…….’ 그런 눈으로 볼 거 아니야.”
“우리 엄마는 전 생애를 자녀들에게 바치고 홀가분하게 자녀들의 효도로 살아가니 얼마나 다행이야”
“주변에서 보니까 부모가 재산이 좀 있으면 자녀들이 우의를 지키기 어렵더라고”
“어떤 어른은 얼마 안 되는 재산 가지고 자녀들의 의를 다 끊어 놓기도 하더라.”
이런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나도 병원에서 본 이야기를 동생들에게 들려주었습니다.
교장으로 정년퇴임한 할아버지가 아내가 죽자 딸 세 명 중에 큰딸 집에 사시게 되었는데 막내딸이 아버지 옷이랑 먹을 것을 싸 들고 드나들면서 그렇게 잘 하더랍니다. 큰딸은 동생이 드나들면서 아버지께 잘 하는 것이 고마워했고요. 그러나 막내딸은 계산이 달랐던 겁니다. 할아버지는 모시고 사는 큰딸 몰래 막내딸에게 퇴직금을 전액 털어 사업 자금으로 주었는데 거기서 나오는 이자로 용돈을 쓰면서 막내딸을 그렇게 예뻐하며 사셨던 겁니다. 그러다 할아버지가 덜컥 중병에 들어 병원에 입원하게 되었는데 아버지 수중에 있어야 할 퇴직금은 한 푼도 남아있지 않아서 병원비 낼 돈도 없게 되었습니다. 아버지 통장을 막내가 다 털어간 것을 안 큰딸이 막내에게 병원비 좀 내라고 하니, 막내딸은 이미 사업이 망한 뒤라 오히려 보태줘야 할 형편이었습니다. 큰딸은 아버지와 막냇동생에게 원망을 해 봤자 소용이 없어서 식당에 다니며 일을 해서 아버지 입원비를 냈습니다. 그런 과정을 겪으면서 자매가 아버지도 보기 싫어하는 바람에 아버지 임종을 둘째 딸이 지켰습니다. 큰딸과 막내딸은 아버지 임종도 같은 자리에서 보기 싫을 정도로 원수가 되었습니다. 큰딸 입장에서 모시고 사는 딸을 무시하고 아무 의논 없이 막내에게 통장을 내어준 아버지가 밉기도 하고 끝까지 암체같이 구는 막냇동생이 얼마나 얄미웠겠습니까. 아버지는 가시고 자매들은 서로 등을 지어 남남만도 못한 사이가 되었습니다.
그런 면에서 우리 어머니는 복이다 그치?
누가 어머니께 아무리 애교를 부려도 따로 줄 것이 없으니 서로 경계할 필요가 없고 진심을 알 수 있으니까 얼마나 좋아? 내 성격에 엄마가 큰언니를 더 예뻐하면 참을 수 있었겠어? 오빠를 편애하면 가만히 있었겠어? 내가 만날 화근 덩어리였겠지. (알기도 잘 알아요. ^^)
막내 여동생은 자칭 “나는 항상기쁨조야”라고 할 정도로 늘 자리를 즐겁게 합니다.
우리는 낙엽이 우수수 비처럼 쏟아지는 수목원에서 엉뚱하게도 어머니의 가난을 예찬했습니다.
가난한 부모 밑에서 우리 형제가 잘 자란 것도, 본인의 소유 없이 자녀에게 기쁨이 되는 어머니가 계셔서 우리도 큰 복입니다.
어머니랑 함께 오리고기를 구워 먹으며 뜻밖의 번개가 즐거웠습니다.
초아
2017-11-14 at 05:51
화목한 가정 부럽습니다.
뜻밖의 번개 하시기에 행여
블로그 이웃님들과 번개를 하셨나했어요.
가족 모임이셨군요. 많이 더 많이 행복하셔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