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때는 바다였던 시화호 갈대밭

기온이 영하 7~8도로 한파주의보까지 발효되었는데, 이런 날 바다를 보러 갔다가는 얼어 죽기 딱 맞지 않을까? 은근 못 간다는 연락이 오기를 기다렸습니다. 추위를 많이 타고, 고양이 띠라고 놀림당할 정도로 따뜻한 것만 좋아하는데 추운 날씨에 집을 나서기 겁이 났습니다. 그렇지만 오래전부터 약속된 일정이라 어쩔 수 없이 출발하는데 “날씨가 이렇게 추운데 괜찮을까?”딸이 걱정을 합니다. 두툼하다 못해 항아리처럼 부푼 몸을 이리저리 돌려가며 보여주고 현관문을 나서는데 코끝이 쨍할 정도로 추웠습니다. 산악인들이 입는 기모가 들어간 두꺼운 등산용 바지와 티, 등산 양말, 다운 점퍼까지 입었더니 둔하기가 이루 말할 수 없지만 에베레스트산이라도 정복할 수 있을 것 같았습니다. 장갑과 목도리 모자까지 온몸을 두툼하게 둘러싸고도 잔뜩 움츠리고 도착한 장소에는 이미 다른 분들이 와 있었습니다. 추위 걱정은커녕 놀러 간다는 설렘에 잠이 안 와서 오전 3시부터 깨어 준비했다고 하는 분이 계셔서 미안한 생각이 들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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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산에서 한 시간 남짓 승용차로 달려서 시화방조제를 지나 시화 나래 휴게소에 도착했습니다. 난 별명이 수하물일 정도로 차만 타면 아무 생각 없이 실려 다니는데, 바다와 호수를 가로지르는 시화방조제를 달리는 느낌은 바다 위를 날아가는 듯 상쾌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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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때는 바다였던 평원 위에 드넓게 펼쳐진 갈대밭은 싸늘한 겨울 날씨를 즐기기 좋았습니다. 추운 날씨 덕에 사람들이 없어서 한가하게 다닐 수 있었습니다. 갈대밭 가운데로 나 있는 흙길은 고향의 시골길을 걷는 기분이었고 갈대의 수수한 노란색이 주는 평안함은 차거운 기온 속에서도 그 속에 들어가 눕고 싶다는 생각이 들게 했습니다. 한적한 갈대밭 사이로 탐방로를 조성한 바다향기 테마파크가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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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대밭 뒤쪽으로 늘어선 메타세쿼이아 나무들은 아직 뿌리를 내린 지 오래지 않아, 어린 나무들이 이국적인 풍경을 만들고 있었고. 커다란 군락을 이루어 노니는 백조의 군무도 볼 수 있었습니다. 백조가 노니는 곳이 바단지 호순지 구별이 안 되었지만 “백조의 호수” 정경 가락이 머릿속에서 저절로 울려났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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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대밭 서쪽 양지쪽 벤치에 앉아서 햇볕을 쬐며 다리를 쉬다 보니 머리 위로 비행기가 무수히 지나갑니다. 시화호 하늘은 인천공항으로 도착하는 비행기가 다니는 길목이었습니다. 도착점이 가까운 비행기들이 고도를 낮추고 있어서 대한항공인지 아시아나인지 비행기 로고가 선명하게 보였습니다. 함께 간 문우들은 하늘로 지나가는 비행기를 세어보며 동심으로 돌아갔습니다. 벤치에서 고개를 젖혀 하늘의 비행기를 세는 일이 즐겁기까지 했는데 놀라운 것은 비행기가 쉴 새 없이 지나간다는 것입니다. 어떤 분은 20초 간격으로 한 대씩 지나간다고 했습니다. 그렇게 많은 비행기가 인천공항에 내리는지 처음 알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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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체가 긴 봉고차를 캠핑카로 개조하여 은퇴 후 제주도 한 달 살기 등 전국을 여행하는 문우 한 분이 “여기는 꼭 가봐야 해”라며 시화 나래 휴게소를 소개했습니다. 캠핑카는 운전석과 조수석을 제외하고는 다 개조를 했는데 차 안에 온돌방이 있을 정도로 완벽하게 생활시설이 되어있습니다. 타일로 된 싱크대 위에서는 조리를 하고, 싱크대 문을 열면 그릇 칼 양념 등의 주방도구가 갖춰져 있습니다. 길이 있는 곳에는 어디라도 갈 수 있고 차가 멈추어 선 곳이 집이 되니 얼마나 근사한지 모릅니다. 말이 노숙이지 호텔 부럽지 않은 시설입니다. 추운 겨울에는 휴게소나 공중 화장실에 온수까지 나오기 때문에 그 근처에서 취사를 하고 설거지까지 한답니다. 목욕은 목욕탕에서 하거나 여름이면 야외에서도 가능하다고 합니다. 통유리로 된 한쪽 면을 바다로 향하게 차를 세우자 바다가 내 앞에 다가와 있었습니다. 차 안에 식탁까지 펴 놓고 7명이 식사를 하는데 협소하다는 느낌보다 소꿉장난처럼 재미있었습니다. 캠핑카 주인은 노숙생활에서 익힌 노하우로 매운탕을 끓여서 따끈하게 갓 지은 밥을 해 주었습니다. 캠핑카에서 바다를 보며 먹는 밥은 별미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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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은 일몰도 짧게 이루어졌습니다. 붉게 물들던 석양은 순식간에 모습을 감추고 어스름이 내려앉는 바다를 뒤로하고 달 전망대로 갔습니다. 매일 뜨고 지는 해지만 바다에서 보내는 해 질 녘의 한때는 특별한 느낌이었습니다. 시화 방조제의 일몰을 감상할 수 있는 시화 나래 휴게소 24층 높이의 달 전망대는 입장료도 없었습니다. 높은데 올라가자 아이들처럼 기분이 좋아진 문우들이 신발을 벗고 유리로 된 스카이워크를 무서워하면서도 걸어봤습니다.

시화 나래 휴게소 가족과 함께 나들이하기에 멋진 곳입니다. 추천합니다.

1 Comment

  1. 데레사

    2017-12-10 at 18:02

    우리집에서는 가까워서 몇번 가봤습니다.
    하루 즐기기에 좋은 곳이지요.

    오늘은 성당갈려고 나셨다가 진눈깨비에 미끄러 질까봐
    도로 들어오면서 속으로 나는 겁쟁이야 하면서 웃었답니다.
    이제는 조심하면서 사는수밖에 없어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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