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이 머리가 많이 자랐기에 미장원에 데리고 갔습니다.
우리 한이는 머리가 길어도 보기 좋습니다. (할머니 눈에)
머리카락이 검은색이 아니라 갈색이라 하얀 얼굴에 긴 머리가 예쁘게 어울리지만
자고 나면 함부로 뻗쳐서 관리가 쉽지 않아 자르는 것이 나을 것 같아서입니다.
할머니가 되니 손자 머리 자른 것도 이야깃거리가 되는군요.
우리 한이는 얌전히 앉아서 머리를 깎았습니다.
젊은 남자분이 아이 머리를 감기고 드라이로 말린 후에
여자분이 빗으로 머리카락을 조금씩 들쳐가며 세심하게 머리를 자릅니다.
집에서 보면 까꿍이랑 비교해서 그런지 제법 체격도 크고 튼실해 보이는데
미장원 의자에 미용 보자기를 쓰고 머리만 내어 놓고 앉아있는 모습을 보니 조그만 아기입니다.
한이는 조용히 앉아 눈을 껌뻑이더니 이내 졸음이 쏟아지는 모습입니다.
가끔 간지러운 듯이 어깨를 들척거리다 눈으로 거울 속 엄마와 할머니를 찾았습니다.
나는 그 모습을 보면서 어릴 때 아버지 손잡고 갔던 이발소 생각이 났습니다.
설 명절을 앞둔 어느 날 아버지와 함께 오빠와 여동생 나
이렇게 4명이 머리를 깎으러 갔습니다.
추운 날씨였는데 이발소 안에는 유리창에 김이 어릴 정도로 따뜻했습니다.
강원도 산골 조그만 읍내에 있는 이발소는 동네에서 가장 현대적인 모습을 하고 있습니다.
유리가 붙은 미닫이문이 벌써 달랐습니다.
이발하는 의자는 붉은색 가죽에 틀이 철로 되어 있어 위엄 있게 생겼고
이발사가 어떻게 하면 의자가 뒤로 눕혀지기도 했습니다.
전면엔 이발소 안이 거의 다 비치는 커다란 거울도 있고
거울 위에는 이삭 줍는 여인이나 저녁 해질 무렵 내외가 밭고랑 사이에 마주 보고 서서 고개 숙여 기도하는 모습의 그림도 있습니다.
나중에 미술시간에 밀레의 만종이나 이삭 줍는 여인들 그림을 보고 친숙하다고 느끼게 된 것은 어린 날 이발소에서 여러 번 본 그림이었기 때문입니다.
요즘엔 이발소 그림이라고 하면 싸구려 모방품을 이야기하는데 그 당시 이발소 주인은
상당히 세련된 문화인이 아니었나 그런 생각이 듭니다.
이발소 그림이라고 하면 돼지가 새끼를 많이 낳아 젖을 먹이고 있는 그림이나,
소녀가 무릎 꿇고 앉아 기도하며 “오늘도 무사히”라는 구절이 쓰여있는 그림이 대부분일 때
밀레의 그림이 걸려있었으니까요.
이발사는 머릿기름을 발라 2:8로 가르마를 탄 머리에 하얀 가운을 입고 있는 모습은
도시의 바람을 먼저 맛보고 온 사람으로 시장 안에서뿐 아니라 읍내에서도 가장 멋쟁이였습니다.
구글 이미지
이렇게 세련되어 보이는 이발사도 여자아이들의 머리는 상고머리로 통일했습니다.
남자는 빡빡머리 여자는 상고머리 그 외의 스타일은 없습니다.
이마에 금을 긋듯이 반듯하게 일자로 머리를 자르고
뒤통수는 높게 벗겨 올리느라 낡은 이발 기계에 찝히기라도 하면 눈물이 나도록 아팠습니다.
구글 이미지인데 순이 어릴때 사진이라고 해도 될 듯합니다. ^^
아버지도 이발을 하고 오빠도 머리를 빡빡 밀고 여동생과 나는 상고머리를 하고
아버지와 함께 손잡고 집으로 돌아오는 시간은 행복했습니다.
우리 한이는 새로 산 스티커에 정신이 팔려 이발에 대한 감흥은 없었는데
할머니만 한이 머리를 이리저리 들여다보며 만족해합니다.
윤기가 반들반들한 한이 머리통이 얼마나 사랑스러운지 모릅니다.
우리 아버지도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괜히 오빠의 까끌까끌한 머리를 쓸어보고
내 머리도 쓰담쓰담 하곤 하셨습니다.
데레사
2017-12-30 at 03:37
사진의 아이, 바로 내 모습인데요.
아, 아니네 옷이 예쁜데요. 순이님이구나. ㅎㅎ
우리 어릴때는 삼베치마 저고리라 머리는 저 스타일인데
옷은 아니었어요.
어느새 한 해가 저무네요.
새해에도 열심히 위블을 사랑하기로 해요.
김수남
2017-12-30 at 04:42
네,언니! 한이 정말 많이 컸네요.너무 의젓해요.언니 글을 읽으니 그 모습이 그대로 저의 어릴적 풍경이어서 너무 반갑고 감사합니다.저도 언니 같은 그런 상고 머리 그리고 단발 머리로 어린 시절을 보냈습니다.이발소의 모습도 똑 같고요.정말 그 추억을 함께 기억나게 해 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