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태공에 대한 일화는 초등학교 다닐 때부터 들었는데 이야기를 실감 나게 잘 하던 선생님의 모습이 지금도 선명하게 기억된다.
젊은 남자 선생님이 칠판을 등지고 서서 강태공 이야기를 얼마나 구수하게 하는지 우리는 숨소리도 내지 않고 들었다. 강태공이 강가에 앉아서 낚시하는 장면은 연기하듯이 하셨다. 오른팔을 낚싯대 삼아 앞으로 쭉 뻗어 학생들이 물고기라도 되는 양, 고기를 낚는 시늉을 하셨다. 검지를 구부렸다 폈다 하며 낚싯바늘에 대한 설명도 했다. 손가락을 꼬부리며 “이렇게 생긴 낚싯바늘 끝에 미끼를 달아 물속으로 드리우면 배고픈 고기가 냉큼 먹이를 물 때 얼른 낚아채야 한다.”라며 선생님 입술에 낚싯바늘이 꿰인 듯 손가락 끝을 따라 얼굴을 추켜 올렸다. 우리는 내 입술이 낚싯바늘에 꿰인 것도 아닌데 입술이 저절로 벌어지며 얼굴을 찡그려 가며 얘기를 들었다. 강태공은 엄마들이 이불 꿰맬 때 쓰는 곧은 바늘을 썼고 미끼도 없었다며, 손가락을 펴서 우리를 여러 번 찌르듯 했다. 어떤 바보 고기가 이런 바늘에 잡혀 올라오겠냐는 것이었다. 고기를 잡는 것이 아니라 강가에 앉아 세월을 기다린 사람이 강태공이라고 했다. 우리 반 친구들을 향해 강태공의 인내를 닮아야 한다고 강조하면서, 끝까지 인내하지 못해 재상의 부인이 될 기회를 놓친 강태공의 아내에 대한 비난도 했다. 오랜 기다림 끝에 강태공이 재상이 되어 수레를 타고 떠나게 되었고 그 소식을 듣고 집을 나갔던 아내가 찾아왔을 때, 강태공이 높은 수레에 앉아 아내에게 물을 떠오라고 하는 장면에서 선생님은, 두 손으로 물동이를 머리에 이고 가는 모습을 하고 교탁 이쪽에서 저쪽까지 걸었다. 그 후 물동이를 우리 학생들 머리 위로 쏟아 버리는 흉내를 냈고, 쏟아진 물을 우리에게 주워 담아보라고 했다. 쏟아진 물은 교실 바닥을 적시고 이미 마룻장 사이로 사라져버려 우리는 물을 다시 담을 수 없다며 고개를 강하게 흔들었다. 이왕 고생하는 것 조금만 더 참았으면 재상의 부인이 되었을 건데 그걸 못 참아서 그렇게 되었다고 강태공의 아내가 바보 같다는 생각을 했다. 선생님도 그런 의도로 우리에게 말씀했고, 우리는 끝까지 인내해야 한다는 교훈을 마음에 새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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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태공은 집안 살림에는 신경 쓰지 않고 책을 읽고 낚시만 했다. 한마디로 가장으로서 책임을 다하지 못했고 평생 백수였다. 아내가 남의 집 일을 해 주고 양식을 얻어 남편 끼니를 이었는데 강태공은 때를 얻지 못하고 늙도록 책만 읽었다. 하루는 강태공의 아내가 마당에 곡식을 널어놓고 멀리 일하러 가면서, “만약에 비가 오면 곡식이 젖지 않게 처마 아래로 들여놔 달라”라고 부탁했다. 비가 왔고 아내가 집으로 돌아와 보니 곡식이 마당 가운데에서 그대로 젖어 있었다. 곡식이 비에 떠내려가든 말든 아랑곳하지 않고 강태공은 여전히 방에서 책을 읽고 있었다. 더는 참을 수 없던 아내는 그 길로 집을 나와 버렸다. 강태공은 떠나는 아내 등 뒤에 대고 “조금만 더 참으면 재상 부인이 될 것을…….”라고 했다나?
실제로 재상이 된 강태공이 임금의 수레를 타고 성으로 들어가는데 아내가 그걸 알고 남편의 수레를 막아서자 아내에게 물을 한 동이 길러오라고 했다. 아내는 좋은 마음으로 물을 한 동이 남편에게 가져갔다. 강태공은 아내에게 길어온 물을 길바닥에 쏟으라고 했고, 영문을 모르는 아내는 길에다 물을 쏟았다. 강태공은 자기와 같이 가려거든 쏟아진 물을 쓸어 담으라고 했다. 이미 흙 속으로 스며들고 없는 물을 쓸어 담을 수 없어 난감한 아내에게 남편은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한 번 쏟아진 물은 쓸어 담을 수 없듯이 이미 엎질러진 일을 되돌릴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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훗날 강태공은 바라던 대로 주나라 문왕에게 발탁되어 재상이 되었고 문왕 후에 주나라 왕이 되었다지만, 그 아내 입장에서 보면 강태공은 나쁜 남편이다. 그가 아내 한 명 마음을 얻지 못하고 주나라 왕이 되면 뭐 할 건가? 여자를 노동의 가치로만 생각하고 자녀를 생산하고 남자의 보조인으로만 여겼다는 이야기다. 여자는 남자를 위해 항상 희생을 해야 하는 남성우월주의 시대니까 통했을 것 같다.
강태공의 아내가 집을 나갈 때 이미 80이 다 되어가는 나이었는데 그때까지 먹여 살린 공을 생각하면 아내에게 조금만 더 참아 달라고 설득하고 이해를 구했어야 한다. 아내는 남편의 위로 한마디면 된다, 일하러 가면서 집안에 있는 남편에게 마당에 널어놓은 곡식이 비 맞지 않게 집안으로 들여놔 달라는 요구가 무리한 것이 아니다. 사소한 것도 들어주지 않는 남편을 위해 평생 애쓰고 살아온 아내가 아닌가? 캄캄한 밤, 하루 종일 일을 하고 피곤한 몸을 이끌고 비를 맞으며 집에 돌아와 보니 마당에 곡식은 물에 젖어 떠내려가고, 남편은 비가 왔는지도 모르고 책에 코를 박고 있는 장면에서 아내의 절망이 느껴진다. 강태공이 아내의 고통을 조금이라도 생각했다면 집을 나가려는 아내를 설득해야 했다. “내가 지금은 이러고 있지만 곧 재상이 될 운이니 조금만 더 참아 달라.” 거나 “미안하다.”이런 말로 이해와 협조를 구했으면 아내가 집을 나가지 않았을 것이다. 아내는 자신을 먹여 살리고 생명을 유지하게 해 준 사람 아닌가? 출세 후에 트로피 아내를 얻고 싶었을까?
“한 번 쏟아진 물은 주워 담을 수 없다.”라는 유명한 말을 만들어낸 강태공이 역사에는 훌륭한 인물일지 모르지만 그 아내에겐 최악의 남편이다.
ss8000
2018-02-04 at 07:03
태공망의 얘기는 많은 교훈을 줍니다.
우리에게도 가난한 선비의 아내 얘기 등 비슷한
얘기들이 좀 있지만, 그 아내들이 지아비를 두고
최악의 지아비란 말을 한 건 들어 보지 못했습니다. ㅎㅎㅎ
반대로 조강지처(糟糠之妻)를 구글에 쳐 보십시오.
진짜 의리있는 남편들은 헐벗고 굶주린 시절의
아내를 버리지 않았습니다. 그렇다고 다 훌륭한 남편일 수는
없지요. ㅎㅎㅎ…
제가 수남님 좋은 말씀에 반기를 들자는 게 아니고
남편이든 부인이든 누가 훌륭하고 최악이고
따로 없는 듯 합니다. 아옹다옹 다투며 한 평생 보내면
그게 좋은 남편 좋은 아내일 것 같습니다.
어제 서울 집의 마누라랑 약간 실랑이를 했습니다, ㅋㅋ
그래도 마누라가 존 걸료, 뭐..
아! 문왕 후에 주나라 왕이 되었다지만, 이거 그대로 믿지 마십시오.
구글이 잘못 됐거나 수남님이 약간 오해를 하셨습니다.
강태공은 문왕을 잘 보필한 덕으로
지금의 산동성 북서쪽을 식읍으로 받습니다.
그 후손들이 그곳에 제(齊)라는 제후 나라를 세웁니다.
최 수니
2018-02-04 at 08:49
중국 고사와 삼국지 연구가인 오병규님께 딱 걸렸네요. ^^
최악의 남편이란 말은 요즘 남편으로 치면 그렇다는 얘깁니다.
강태공이 살던 시절엔 여자의 희생이 당연했고
요즘엔 그렇지 않잖아요?
사위가 만년 백수로 살면서 아내와 가정을 돌보지 않고
곧은 낚시만 하며 늙어 간다면
나중에 대통령이 된 들 참고 살라고만 할 수 없을 것 같잖아요?
댓글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