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마투어를 다녀왔습니다.
“은비령” 작가인 이순원 선생님의 안내로 강원도 문학 투어버스를 타고 은비령을 보고 한계령을 넘어 속초 양양 낙산사, 주문진을 둘러서 오는 긴 여정인데 하룻길에 가뿐하게 다녀왔습니다.
강릉이 고향인 이순원 선생님은 처가가 양양이라 한계령을 자주 넘어 다니면서 잠깐 보이다 지나가는 작은 샛길을 차창 밖으로 바라보며 저 안쪽에는 어떤 세상이 있을까 궁금했다고 합니다. 은비령은 관심을 두지 않으면 눈에 띄지 않는 은밀하고 숨겨진 장소입니다. 그 길을 보고 지은 소설이 은비령입니다.
유명인 이름을 따서 드골 공항이니 케네디 공항같이 명명하기도 하고 테헤란로같이 어떤 일을 기념하기 위해 도로 이름을 정하기도 하지만 기존의 지명이 소설로 인해 바뀐 것은 은비령이 유일한 것 같습니다.
은비령의 처음 지명은 필례로, 필례계곡입니다. 은비령을 읽은 독자들이 그곳을 찾아가 동네 사람들에게 “여기가 은비령 맞나”물어보면 처음에는 아니라고 하다가 끝내는 은비령이라는 간판을 단 식당도 생겼고 커피숍 펜션 등이 생겨나고 지도에서 은비령으로 지명을 바꾸었습니다. 우리나라에서 유일하게 문학작품 속의 무대가 실제 지명으로 바뀐 곳입니다. 일본 영화 러브레터에서 눈 쌓인 벌판에서 여주인공이 “오 갱끼데스까” 라고 소리 지르는 장면이 있는 북해도 어디쯤이 관광명소가 되었고, 우리나라 겨울연가를 찍은 남이섬에 손님이 몰려오고 욘사마 열풍이 일기도 했습니다. 로마의 휴일에 나오는 연못도 그렇고요. 그렇듯 어떤 작품의 무대가 어디다 하는 곳은 많지만 작품 때문에 실제 지명이 바뀐 곳은 없다고 합니다.
은비령을 쓴 작가와 직접 가보게 되어 정말 행복했습니다.
은비령은
중년 남녀의 이루어지지 못하는 사랑을 배경으로 시간의 의미와 인연의 아픔들을 그렸습니다. 소설가인 주인공은 이곳 깊은 골짜기에서 고시공부를 하던 한 남자를 친구로 알게 되고, 먼 훗날 우연히 운전면허 시험장에서 그 친구를 다시 만나게 되는데 친구의 아내가 바람꽃 같다는 느낌을 가집니다. 소설가로 살아가는 주인공 남자는 아내와 별거 중이었습니다. 세월이 흐르고, 그 친구가 채석강에서 사망했다는 소식을 듣습니다. 남편 없이 살아가는 친구의 아내를 스치듯 짧은 만남이 가끔 이어졌는데 남자는 바람꽃 같은 이미지의 여자를 사랑하게 됩니다. 하지만 그 사랑에는 영원히 썩지 않는 소금 짐이 얹혀 있었고 그 소금 짐을 조금이라도 씻어내 보려고 예전에 같이 공부했던 은비령으로 차를 몰게 됩니다. 그날 밤, 은비령엔 아직 녹다 남은 눈이 날리고 소설가는 2천5백만 년 전의 생애에도 그랬고 이 생애에도 다시 비껴 지나가는 별을 내 가슴에 묻었다고 남자는 혼잣말을 합니다.
씨눈이라는 말도 설명해 주셨는데 겨울이 시작되어 첫눈이 오고 그 위에 또 눈이 쌓이고 하면서 겨울이 지나도록 씨눈은 그대로 있다고 합니다. 씨앗 같기도 한 “씨눈”이라는 말이 너무 아름답게 들렸습니다. 은비령을 가는 길엔 눈이 녹았지만 산에는 눈이 하얗게 쌓여 있었습니다.
이순원 선생님은 은비령에 대해
“작가로서 독자들에게 남다른 선물과 남다른 빚을 동시에 받은 셈이다.
작가로서 행운과 작가로서의 의무가 함께 느껴지는 부분이기도 하다.
나는 이 땅에서 작가로서 내게 주어진 삶을 다하면 그곳 은비령으로 간다.
가족에게도 미리 말해 두었다. 가서 묻히는 것이 아니라 그곳에 뿌려져 그곳의 바람을 타고 이동하며 또 밤하늘을 바라보며 하쿠다케 혜성처럼 한번 떠난 다음
영원히 우리 곁으로 다시 돌아오지 않는 별을 기다릴 것이다.”라고 했습니다.
필례약수가 유명해지면서 이 고개 또한 유명세를 타게 되었으며,
지금은 필례약수, 원대리 자작나무 숲과 함께 둘러보는 관광 명소가 되었습니다.
서울에서 하룻길에 넉넉히 다녀올 수 있는 거리입니다.
전에는 은비령을 어떻게 찾아가느냐고 묻는 분이 많았다는데
이제는 내비에 “은비령”만 치면 된다고 합니다.
가을 단풍이 아름다울 때 다시 한번 가보려고 합니다.
김수남
2018-02-16 at 23:20
네,언니! 은비령! 이름이 참 예뻐요.소설의 이야기가 엮어진 그곳을 저도 가보고 싶어집니다.
늘 건강하신 모습 뵐 수 있어 반갑고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