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의 이모님이 돌아가셔서 동계올림픽이 열리고 있는 강원도 평창을 다녀왔습니다.
돌아가신 이모님은 저와 오래 한집에서 살아서 어머니 같고 친구이기도 하고 저의 조언자였습니다. 일을 하는 저를 대신해서 저의 집 살림을 맡아 주셨는데 속이 깊고 지혜가 있는 분이라 나는 부엌살림에 관해서는 아무것도 걱정할 것이 없었습니다. 생활에 일어나는 모든 일을 이모님과 의논했고 이모님의 판단을 믿었습니다. 부지런하시기는 또 얼마나 부지런한지 하루에 잠은 3~4시간 정도 밖에 안 잤습니다. 잠을 그렇게 조금 자고 졸려서 어떻게 견디는지 물어보면
“죽으면 자기 싫어도 싫건 잘 건데 뭣하러 미리 잠자는 연습을 하냐?”라며 웃었습니다.
술을 좋아하셨던 이모부가 갑자기 돌아가시자 술집에 지은 빚과 노름빚이 상당했는데 살던 집을 팔아 그것부터 갚았습니다. 이웃에선 “술빚은 안 갚아도 된다, 당사자가 없는데 왜 바보처럼 술빚을 갚느냐? 부채도 주고받은 영수증이 없고 노름빚인데 모른다고 하면 끝이다.”라고 조언했지만 이모님은 그런 빚을 가장 먼저 갚아야 한다고 했습니다.
술집에서 외상값을 못 받으면 얼마나 욕을 하겠느냐고, 자녀들 앞날에 좋을 게 없다고 하면서요.
집과 텃밭을 팔아 빚을 청산하고 생계가 막연하자, 동네에서 “극빈자 구호 신청을 동사무소에 하라.”라고 했지만 이모님은 우리 집으로 오셨습니다. 스스로 일해서 먹고살겠다는 의지셨습니다. 우리 집에서 일을 한 월급을 드리면 자녀들 고등학생 대학생 학비를 보내며 열심히 사셨습니다.
내가 일 끝내고 늦게 공원에 나가 운동이라도 하면 수건을 들고 운동장 가에 서 계셨습니다.
이모님 딸들이 “우리 엄마는 엄마 딸보다 수니 언니를 더 좋아해”라고 할 정도로 이모님과 정을 나누며 살았습니다. 이모님 연세가 일흔이 넘고 자녀들이 다 결혼하여 잘 살게 되자 자녀 곁으로 가셔서 편하게 여생을 지내시다 지난 월요일 소천 하셨습니다.
나의 인생에서 소중한 분을 또 떠나보냈습니다.
그런데 그렇게 슬프거나 하지는 않았습니다.
올해 85세신데 그 정도면 육신의 생을 마감하기에 억울하지는 않다는 생각입니다.
요양병원에서 돌아가시지도 못하고 살아있다고도 죽었다고도 못하는 상태에서 오래 계시는 것보다 적당할 때에 하늘나라에 갈 수 있으면 복이고 행운이라는 생각이 오히려 듭니다. 100세 시대라고는 하지만 장수는 복이 아니라는 생각을 하기 때문입니다. 저는 누구에게도 폐 끼치지 않고, 병원에 입원하는 일 없이 살다가 갈 수 있기를 바랍니다.
이모님은 본인이 돌아가실 것을 예감하고 “내가 추울 때 가서 너희들이 울다가 눈물 얼까 봐 걱정이다. 그러니 울지 마라. 나는 하늘나라에 가서도 너희들 사는 것을 지켜보겠다. 바르게 살아라.”라고 하셨답니다. 돌아가시면서도 추운 날 장사지내느라 고생할 자녀들 걱정을 먼저 하는 분입니다.
그래서인지 문상을 가면서 올림픽 기간이라 길이 막히면 어쩌나 걱정을 했지만 오히려 한산했습니다. 설 연휴가 시작되기 전이라 수요일 귀경길에도 길은 한산했습니다. 그러나 반대편 차선은 이미 정체가 시작되고 있었습니다. 하루만 시간이 달랐어도 오가는 길이 무척 힘들었을 것 같습니다.
막내 여동생이 운전을 해서 다녀왔는데 반대편 차선이 막히는 것을 보며
“우리 이모님은 정말 멋진 분이시다. 어떻게 교통흐름까지도 아셨을까?”라며 웃었습니다.
올림픽 기간 중이라 평창 부근은 톨게이트비도 공짜였습니다.
우리 어머니껜 동생의 죽음을 알리지 않았습니다. 혹시 충격받으실까 봐요.
내 인생에서 소중했던 한 분을 이렇게 또 떠나보냈습니다.
김 수남
2018-02-16 at 00:39
네,언니! 이모님의 삶이 참으로 아름다우시고 성실하셨네요.천국에서 하나님 품에 안기셨으니 위로를 얻으시며 언니와 특별한 귀한 관계로 살아오신 이모님의 빈자리가 곁에 계신 가족들오 인해 잘 채워지시길 기도합니다.어머니께서도 더욱 건강히 잘 지내시길 기도합니다.
행복한 설 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