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이 따뜻해 지는 문상

장례식장 분위기가 잔치하는 집 같다면 좀 이상한가요?
친구의 시어머님이 올해 100 세가 되셨는데 돌아가셨습니다. 이분이 구십이 넘고 기력이 저하되자 자녀들에게 폐 끼치는 것이 싫다며 스스로 양로원에 들어가셨던 어른입니다. 육체는 쇠하여 기력은 없지만 인지저하 없이 생각이 바르셔서, 움직일 수 있는 한 다른 어르신들 밥도 먹여주고 도움을 주셨고 직원들을 위로하고 그러셨다는 군요.
자녀들이 면회를 가면 딱 오 분만 앉아있게 하고 빨리 가라”라고 재촉하셨답니다. 어머니랑 오래 얘기도 하고 앉아 있으려고 해도 집에 가서 네 볼일 보라며 성화를 하셔서 면회를 오래 하지 못했답니다. 어머니가 면회 온 자녀가 보기 싫어서가 아니고, 분명 반갑고 좋지만 자녀들 시간을 빼앗고 싶지 않은 배려에서 그러신 것이랍니다.

돌아가신 친구의 시어머님은 41녀를 두셨습니다. 어머니만 착한 것이 아니라 형제들이 다 좋고 막내 시누이도 착하답니다. 내 친구 남편이 장남이라 결혼해 시댁에 갔더니 어린 시누이가 세숫물을 떠다 주면서 언니는 도시에 살아서 촌에 오니 세수하기도 어렵겠다. 소죽 끓이는 가마솥에 물을 데워 왔는데, 언니 괜찮으려나 모르겠어.”라며 미안해하더라는 겁니다. 오빠 넷 틈에 하나 밖에 없는 막내 시누이가 소위 말하는 시누이 값을 해도 당연할 판에 이렇게 새언니를 배려하더라는 겁니다. 요즘에도 올케언니 네 명 모시고 여행 가려고 적금을 넣고 있다.”라고 해서 가슴이 뭉클하더랍니다.
시어머님은 교회 권사님이시고 내 친구는 독실한 불교 신자입니다. 맏며느리와 시어머니의 종교가 같지 않으니 집안에 큰 충돌이 일어날 판인데 이 가정에서는 종교가 문제 된 적이 한 번도 없었답니다. “우리 시어머니를 보니 시어머니가 믿는 하나님은 정말 좋으신 분이구나!” 며느리는 이렇게 생각했고, 시어머니는 맏며느리가 믿는 부처님은 대자대비하신 분이구나.” 감동하고 인정하면서 서로의 종교를 강요하지 않았답니다. 가정 내의 권력 구조상 시어머니가 며느리에게 종교를 강요하는 경우를 많은데 그러지 않으셨답니다.

용산에서 7300원 요금으로 춘천까지 1시간 10분 만에 갈 수 있으니 우리나라 대중교통이 정말 좋습니다. 친구 두 명을 용산역에서 만나 오후 2시에 용산에서 출발해서 오후 9시에 용산으로 돌아왔습니다. 기차로 왕복하는 그 시간을 제외하고는 강원대학교 병원 장례식장에서 친구들을 만나서 놀았습니다.
아들 4형제와 사위가 지키는 빈청에 인사를 하고 우리 친구들은 VIP 실에서 식사 대접을 받았습니다. 요즘 장례식장 VIP 실엔 상주들이 잠을 잘 수 있는 침대방과 샤워시설도 있고 문상객이 식사를 하는 곳도 한실과 양실이 따로 있더군요. 우리는 의자에 앉아서 식사를 하는 양실에서, 맛집 순례를 간 것처럼 식사를 맛있게 했습니다. 늦은 점심이라 그랬는지 밀전병 부침개 떡 등이 너무 맛있어서 더 음식을 더 청해 먹으면서 맥주까지 마셨습니다. 장례식장 음식이 어찌나 맛있는지 우리가 문상을 온 것이 아니라 꼭 먹으러 온 것 같다.” 이러며 웃었습니다. 조금 있다 보니 강릉 사는 친구들이 남편들과 함께 차 두 대에 나눠 타고 10명이 넘게 왔습니다. 뜻밖에 강릉 친구들을 만나니 이야기가 길어져서 예매했던 기차 시간을 미뤄가면서 놀다(!) 왔습니다.

호상이란 말을 하면 안 된다고 하지만 늘 무거운 분위기의 장례식에 다녔는데 모처럼 죽음에 대한 두려움 없는 밝은 장례식이었습니다. 장례식장에서 며느리를 통해 돌아가신 분의 칭송을 듣는 것도 좋더군요. 시어머니는 41녀를 알뜰히 거두어 키우셨고 형제 많은 집에서 흔히 보는 불화는 조금도 없었답니다. 요양병원에서 보면 어른들이 처신을 잘못하는 바람에 자녀들 간에 서로 미워하고 원망하는 것을 많이 보는데, 어머니는 정말 현명하신 분이셨나 봅니다. 친구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우리도 나이 들수록 하고 싶은 이야기를 다 하지 말고 현명하게 살자.”라고 했습니다.

자녀들이 다 5~ 60대이고 손자 손녀가 있고 증손녀까지 있는데 초등학생인 증손녀가 장례식장 분위기를 더욱 밝게 했습니다. 엄마가 상복을 입으니까 저도 엄마처럼 상복이 입고 싶다고 해서 빌려 입혔는데 어른들 사이를 왔다 갔다 하며 천진난만하게 놀고 있는 모습이 얼마나 귀여운지 모릅니다. 돌아가신 어른이 너무도 귀애하시던 아이라고 합니다. 어디서 사진 액자를 들고 와서 웃기에 사진도 찍었습니다.

세상에서 잘 사시다가 돌아가셔도 아무 거리낌이나 아쉬움 없이 푸근한 모습의 장례식에 다녀오니 내 마음이 오히려 위로받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생각하면 마음이 따뜻해지는 문상이었습니다.

1 Comment

  1. 데레사

    2018-03-29 at 15:59

    누구든 그렇게 살다 그렇게 죽어가고 싶지요.
    뜻대로 잘 안되겠지만 노력은 열심히 해야겠다고 다짐을
    해봅니다.
    자식들 귀찮게 안해야 하고말고요.

    제가 지난번에 갔던 문경의 99세 할머니도 앓아눕자 마자 나 요양병원은
    안가 한 마디 하시고는 일체의 음식을 거부하신후 보름만에 돌아가셨다고 해요.
    물론 그 전까지 집안일도 농사일도 다 하셨다고 해요.

    남을 보면서 자기를 반성하고 배웁니다.
    할머님 편히 가십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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