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엔 우리 농막에서 모이자!”
친구의 제안에 모두 기뻐했습니다.
친구는 굳이 농막이라고 부르지만 경치 좋은 곳에 위치한 별장입니다.
은퇴 후의 삶을 위해 준비해 둔 곳으로 용문역에서 내려 승용차로 15분 정도 더 가야 합니다.
강동구에 사는 친구 집에서는 40분 거리라고 하는데 일산에선 경인중앙선을 타고 2시간 20분을 갔습니다.
일산에 사는 친구와 열차에 나란히 앉아 43개 역을 지나며, 밤꽃이 하얗게 핀 야산과 초록색이 펼쳐지는 풍경을 바라보며 밀린 이야기를 하며 가니까 지루하지 않았습니다.
우리를 초대한 친구는
“반찬은 있는데 요리가 없다.”라고 걱정하는 카톡을 올렸습니다.
바비큐가 있는데 무슨 요리 걱정이냐고 괜찮다고 했습니다.
별장을 농막이라고 말하는 겸손한 친구는 김치만도 5~6가지가 되는 상을 준비해 놓고 친구들을 기다렸습니다.
처음 보는 가지김치, 파김치, 열무김치. 명이나물 이런 것을 기본으로 돌 틈에서 뜯어다 무친 돌미나리, 밭에서 금방 뜯어온 상추 쑥갓 풋고추 오이 등이 상에 놓였습니다.
덱에는 빨간 파라솔이 펼쳐있고, 파란 식탁보가 깔린 식탁이 푸른 자연을 배경으로 놓였습니다.
별장 주인은 이런 야채들을 “마일리지 제로 식품”이라고 하더군요.
땅에서 금방 수확해서 그 자리에 씻어서 먹는 야채!
정말 훌륭한 것 같습니다. 밭에서 막 따온 햇콩을 넣어 지은 밥도 너무 맛있었고
왕소금을 뿌려 숯불 바비큐 그릴에 노릇하게 구워낸 꽁치의 맛도 일품입니다.
호박과 감자를 썰어 넣고 끓인 된장국은 강원도에서 우리 어머니가 끓여주시던 그 맛이 났습니다. 친구들은 고향의 맛이라고 했습니다.
사실 시장에서 사 먹는 야채가 싸지,
마일리지 제로인 야채를 먹으려면 그만큼
노동력과 공을 들여야 합니다.
워낙 부지런한 친구라 고추밭 호박밭 상추밭 파밭 감자밭 고구마밭 ……. 가지런히 구획을 지어 농사를 하는 밭, 그 자체가 예술입니다.
농부의 발자국 소리를 듣고 식물이 자란다는데 친구는 서울과 용문을 열심히 오가며 농사를 지었을 겁니다.
우리는 친구가 애써 지은 농산물로 배불리 먹고 싸가지고 오기도 했습니다.
용문산 자락에 예쁘게 지은 집 거실에서
자녀들의 안부를 묻고
목소리를 높여 즐겁게 세상을 개탄하다가
목소리를 낮추어 항간에 떠도는 이야기를 하고
서로의 건강을 염려했습니다.
“얘들아 우리는 고등학교 입학시험에서 4:1의 경쟁을 뚫은 사람들이야”
친구의 뜬금없는 말에 우리는 서로의 얼굴을 쳐다보며 웃었습니다.
별걸 다 기억하는구나 했지만
이제 노년기에 접어든 친구들에게 힘내라고 하는 은근한 친구의 격려였습니다.
“얘들아 입학시험을 위한 예비 소집에 운동장에 모였는데 영동지방에서 모여든 중학생들이 바글바글하더라. 그런데 합격자 발표하는 날에는 운동장 한 귀퉁이 밖에 안 남았더라고. 그날 내가 어떻게 여기에 뽑혔지? 하며 스스로 감격했었어.“
말할 때마다 서두에는 얘들아! 얘들아! 하고 말하는 친구의 말은 소박하지만 친구들을 즐겁게 했습니다.
마일리지 제로 친구들은 우리의 인생여정에 큰 지표와 힘이 됩니다.
회비를 걷고
백일 된 손녀가 있는 집에 아기 내복을 선물하고 다음달을 기약하면서 친구들과 헤어졌습니다.
같이 자라고 함께 나이 들어가는 마일리지 제로 친구들이 있어 감사합니다.
데레사
2018-06-17 at 23:46
길러서 먹는게 비용도 많이 들고 힘도 많이 들지만 훌륭한
먹거리지요.
연천 루시아님댁을 생각하게 합니다.
나야 마음만 뻔했지만 게을러서 아무것도 못 기릅니다만
얻어먹는건 좋아해요. ㅎ
아프지들 마시고 건강히 오래오래 만나시길 바랍니다.
지은하
2018-06-21 at 11:13
수니언니~그간 미루다 오늘에야 맛난 글들 읽습니다.그냥 흘러버리는 시간들을 붙잡아 엑기스로 만드는 언니가 멋집니다.조만간 뵐 수 있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