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철에 봄바람 불어 잇고

제가 어렸을 때 울 아버지께서 오빠와 저에게 공부를 가르쳐 주셨습니다. 음표를 배울 때 사과를 그려놓고 온음표는 사과 한 개, 이분음표는 사과 반쪽, 사분음표는 사과 1/4 쪽 이렇게 그림을 그려서 이해하기 쉽게 했습니다. 음악이 지극히 수학적인데 수학적인 머리가 없는 나는 4분 음표 더하기 4분 음표가 이분음표라고 하는 것이 무지 어렵기만 했습니다. 4분 음표 더하기 4분 음표는 8분 음표가 되어야 맞는데 그렇게 안 되고 2분 음표가 되는 것을 이해하기 어려워하면 사과를 쪼갠 그림으로 설명해 주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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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명 외우는 것은 오빠 보다 조금 잘했습니다. 오빠가 아버지께 야단맞는 것을 은근 좋아했는지? 공부 잘하는 오빠를 질투했는지, 잘난척하느라 오빠 음악 책에 있는 노래를 오빠보다 먼저 계명을 외워서 불렀습니다. 그러면 오빠는 아버지께 “동생보다 못하다.”라고 야단맞기 일쑤입니다. 오빠가 구구단 외울 때 옆에서 같이 외워서 종알거리지만 아무리 그래 봐도 저는 오빠에겐 어림도 없습니다.
지리 감각이 어릴 때부터도 유난히도 떨어졌던 난, 압록강이나 두만강이 집 앞에 흐르는 평창강의 다른 이름인 줄 알았고, “태백산맥은 사람으로 치면  우리나라 국토의 등뼈 같은 것이다.”이렇게 아버지께서 설명하면 손을 등 뒤로 돌려 내 등뼈를 만져 보면서 왜 산을 등뼈라고 할까? 오히려 더 곤란을 느끼고, 백두산 한라산이 집 뒤에 노성산보다 크다는 것을 상상하지 못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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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말귀 어둡고 근시안적인 딸을 앉혀 놓고 가르치면 아버지께서 무척 화가 나셨을 터인데 이상하게 저에겐 야단을 안쳤습니다. 오빠는 조금만 아버지 성에 안 차면 불호령을 내리고 난 조금만 잘하면 “오빠보다 낫다”라고 추켜세워 주었습니다. 내성적이고 수줍음이 많아서 우리 아버지가 저를 특별히 두둔하고 격려하지 않았으면 자존감이 무척 낮은 사람으로 자랐을 것 같습니다. 그런 것을 감안해서 아버지께서는 사랑으로 저를 격려하신 것 같습니다.
내가 여학교를 다닐 때는 여자가 직업을 가지면 팔자가 사납다고 했습니다. 여자는 집에서 남편이 벌어다 주는 돈으로 살림이나 잘하고 아이를 낳아 양육하는 것을 최고의 팔자로 쳤습니다. 여학교 학생에게 장래희망이 뭐냐고 물으면 한 반에 절반 이상이 “현모양처”라고 답했을 때입니다. 그럴 때 우리 아버지께서는 “앞으로는 여자 대통령도 나온다. 여자도 배워야 하고 자기 직업을 가지고 살아야 한다.”라 시며 공부의 중요성을 강조했고 딸들도 직업을 가지길 원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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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우리 아버지 말씀을 잘 듣는 착한 딸이었으면! 공부하라고 할 때 공부하는 척하고 소설책만 무지 읽지 않았으면! 새벽에 공부하라고 깨워 놓으면 냄새나는 화장실에라도 가서 한숨(?) 더 자지 않았으면 오라버니처럼 아버지 말씀을 더 잘 들었으면, 지금보다 나은 삶을 살겠지요. 저는 아버지의 기대에 미치지 못해서 늘 죄송했습니다.
아버지께서 돌아가신지 40년 가까이 되었습니다. 아버지 추도식에 형제들이 모이면 아버지께서 즐겨 부르시던 “사철에 봄바람 불어 잇고…….” 이곡을 부릅니다. 우리 형제는 “아버지의 은혜로 이만큼이나마 평안을 누리며 사는구나…”. 하며 감사합니다. 7남매를 낳아 기르시느라 고생만 많이 하셨으면서도 자녀들의 삶에는 “사철에 봄바람이 불기”를 바라셨던 우리 아버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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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우리 한이와 까꿍이에게 공부를 가르치면서 아버지 생각을 많이 합니다, 우리 아버지께서 우리에게 공부하는 것과 독서 습관을 물려주신 것처럼, 나도 우리 손자들이 텔레비전이나 게임에 몰두하지 않고 글 읽는 습관을 가질 수 있도록 짬짬이 책을 읽어 주고 함께 공부합니다. 아기들이라 공부라고 해봐야 줄긋기 연습이나 같은 그림 찾기, 달라진 곳 알아보기 정도지만 그런 습관이 앞으로 자발적인 독서와 지적 능력을 키우는데 도움이 되지 않을까 해서입니다.
오래전 우리 아버지의 심정으로 우리 손자들을 대합니다.

2 Comments

  1. 김 수남

    2018-07-17 at 13:18

    네,언니! 오랫만에 뵈니 더욱 반갑습니다,한이와 까꿍이도 많이 컸고 멋진 소년들이 되었네요.저희도 ‘사철에 봄 바람 불어 잇고’를 잘 부릅니다.28장 복의 근원 강림하사는 가정 예배나 집안 모임 때마다 부르고요.

    부모의 역할이 정말 중요함을 늘 체험합니다.저희 부부는 텔레비젼 앞에 앉는 취미가 없었던 덕분에 아이들도 모두 시간 사용이 닮았는 것이 감사합니다.

    언니를 잘 키워 주신 아버지의 사랑이 가득 전해옵니다.
    한이와 까꿍이는 복이 참 많은 어린이들입니다.
    이렇게 좋은 할머니를 만났으니요.
    언니의 기도대로 건강하고 지혜롭게 잘 자라서 훌륭한 사람이 되거라 믿으며 기도합니다.
    어머니께서도 안녕하시지요?
    언니네 가족 분들 모두 늘 건강하시길 기도합니다.
    저에게 일일이 마음 써 주신 것 늘 감사드립니다.여호와 살롬!

  2. 데레사

    2018-07-17 at 20:09

    나이 들어갈수록 육친에 대한 그리움이 더 사무치지요.
    다시 태어난다면 그때는 아버님 말씀 정말 잘 들을건데,
    아니면 지금까지 계셨드라면 정말 잘 해 드릴텐데 하고요.
    부모는 기다려주지 않는다는 말이 딱 맞습니다.

    저도 자주 우리 아버지가 하셨던 말씀들을 되뇌이곤 합니다.
    무척 덥지요? 더위에 건강 잘 챙기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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