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어컨

매년 여름이면 올해가 젤 덥다고 합니다. 지나간 해도 분명 더웠겠지만 지나가면 잊어버리고 지금이 가장 더운 것 같기 때문입니다.
요즘 매일 기록적인 더위로 온 나라가 들끓고 있습니다. 저는 선풍기나 에어컨 바람을 싫어하는데 요즘엔 싫은 게 다 뭡니까? 밤에도 거실 에어컨을 켜 놓고 방문을 열어놓고 자는 형편입니다. 낮에는 그렇다고 해도 밤까지 열기가 식을 줄 모르니 견디기 힘든 더위입니다.

우리 병원은 토요일에도 진료가 있고 오후 3시에 일과가 끝납니다. 행정직원들을 비롯한 진료팀이 퇴근을 하려는데 비가 시원하게 쏟아지더군요. 폭염을 식혀줄 단비라고 다들 좋아하는데 천둥 치는 소리가 크게 났습니다. 무더운 여름날 소나기가 퍼부으면 통쾌한 기분이 드는데 벼락까지 치니 실내에서도 실감이 났습니다.
좀 시원해지겠지! 기대하는 맘으로 시원하게 오는 비 얘기를 나누고 있는데 천정에 달린 에어컨이 스르르 멈춥니다. 왜 에어컨이 멈추지? 하면서 다시 리모컨으로 켰는데 잠시 돌아가는 듯하더니 다시 멈춥니다. 잠깐 동안인데도 에어컨에서 나오던 냉기가 가시면서 후끈한 열기가 스멀스멀 피어오릅니다. 만약 에어컨이 고장이면 큰일인데 하는 생각이 들어 총무과장이랑 모든 직원들이 퇴근을 못하고 스톱이 되었습니다. 전기기사가 옥상을 올라가 보니 실외기가 멈추었다고 합니다.

급하게 AS 센터에 고장 신고를 하고 수리를 요청하니 세상에~ 한 달 후에나 점검을 나올 수 있다고 한답니다. 728일 고장 난 에어컨을 827일에나 수리가 가능하다는 얘깁니다. 모든 AS 기사들이 밤낮없이 뛰어다니지만 더위에 무리하게 가동된 에어컨 고장이 많아서 서비스가 그만큼 늦어진다는 AS 회사 사정입니다. 여기는 병원이고 환자들이 있는 병원이라는 특수한 상황으로 고려해서 지금 빨리 오지 않으면 안 된다고 해도 그런 사정이 통하지 않았습니다. 정말 삼성전자 서비스는 세계 제일이라고 여겼는데 폭염에는 속수무책이었습니다. 폭염은 자연재해에 속하는 것이 맞습니다.

그사이 병동 전체가 후끈 달아올랐습니다. 창문을 열면 더운 바람이 들어오고 선풍기를 돌리자 열풍이 나왔습니다. 선풍기도 공기 속에 찬 기운이 있을 때 돌려야 찬바람이 나오는 것이지 더운 온도에 선풍기를 돌려 봤자 더운 바람만 휘몰아쳤습니다.
일단 가장 걱정은 환자분들입니다. 기력 없고 병든 어르신들이 높은 온도에 오래 노출되면 생명까지 위험한 일입니다. 병원에서 에어컨이 고장 난 상태로 여름을 난다면 상상할 수 없는 일이 벌어질 것 같았습니다.
위기 탈출을 위해 한 팀은 AS 센터로 직접 쫓아가고, 한 팀은 냉풍기라도 사다가 병실에 놓아 보려고 가전제품 파는 곳으로 가고, 혹시 지인들 중에 에어컨 기사 아는 분이 있으면 거기다 전화를 하고 그야말로 난리도 그런 난리가 없습니다.
결론적으로 냉풍기는 일산 시내에 한 대도 없이 동이 났고 에어컨 기사는 한 명도 수배가 안 되고
환자들은 더위에 지쳐가고……. 이 상태에 환자를 둘 수 없어 다른 곳으로 보내려고 자리를 수배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다 어떤 직원 한 분이 동생의 친구가 전기 가사라며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전화를 걸었답니다. 언제부터 그렇게 되었는지 증상이 어떤지 전화로 진단을 하더니 될지 안 될지는 모르지만이라는 단서를 붙이면서 이렇게 한번 해 보라고 해서 그분이 전화로 시키는 대로 병원 기사분이 해 봤습니다.
우선 배전실의 에어컨 전기를 차단했다가 5분쯤 후에 다시 켜라고 했습니다. 다음엔 옥상 실외기를 점검하라고 했습니다. 실외기 옆에 있는 배선함을 열고 전기를 다 뽑았다가 다시 연결하라고 해서 그대로 했답니다.
옥상을 오르내리며 더위에 지칠 대로 지친 전기 기사분이 짜증이 나서 이래도 안 되면 어쩌나?”하면서 배선함을 툭 찼는데 갑자기 실외기가 윙 소리를 내며 돌아가서 그곳에 함께 있던 직원들이 기절할 뻔했다는군요.

어찌 되었든 4시간 만에 에어컨이 가동되면서 소동은 마무리되었습니다.
벼락을 맞고 전기 배선이 끊어졌었는지 (이 원인이 가장 설득력 있습니다) 발로 걷어차서 됐는지 전화로 짚어준 직원의 동생의 친구분의 조언이 적중했는지 에어컨이 나오자 병원은 정상 가동이 되었습니다. 오후 3시에 퇴근을 해야 하는 직원들은 도움이 되든 안 되든 퇴근도 못하고 있다가 기쁜 순간을 함께 보면서 뜻하지 않게 회식까지 이어졌습니다.

여름날 4시간의 지옥 경험이었습니다.
천국이 따로 없습니다.
여름날 에어컨이 나오는 현장이 천국이었습니다. ^^

1 Comment

  1. 데레사

    2018-07-30 at 12:46

    라디오도 그렇고 예전에는 고장나면 툭쳐서
    다시 사용하곤 했지요.
    그러면서 매가 약이라는 얘기도 하고요.
    그게 요새도 통하네요.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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