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동생과 만나 점심 식사를 같이 하기로 했습니다.
이번엔 차가 없는 내가 가기로 했습니다. 문정동 법조타운까지가 가는 시간은 행신역에서 KTX를 타고 동대구역 가는 거랑 별 차이가 없습니다. 그래서 보고 싶어도 자주 만나자 소리를 못하고, 바빠도 동생이 대부분 일산을 오는데 모처럼 내가 가려고 마음먹은 것은 시원한 지하철에서 책을 읽을 요량이었습니다. 자주는 아니지만 가끔 지하철을 타보면 여름엔 시원하고 겨울엔 따뜻해서 독서하기 좋습니다.
책 한 권을 핸드백에 넣어가지고 지하철을 탔습니다. 대화역에서 시작하는 지하철이라 주엽역에서 타도 자리를 차지하고 앉을 수 있습니다. 자리에 앉은 대부분 승객들은 졸거나 휴대폰을 들여다보고 있어서 지하철 안은 거의 독서실같이 조용하고 저마다의 세계에 빠져 있었습니다. 이렇게 고요하고 평화로운 풍경을 방해하는 분이 나타났습니다.
잔뜩 쉬어있는 목소리가 칸을 넘어 가까이 왔습니다.“주 예수를 믿으라, 그리하면 내 집이 구원받으리라”노란 어깨띠를 두른 남자입니다. 지치고 후줄근한 모습으로 목에 핏대를 세우며 소리 지릅니다. 잠시 고개를 들어 그 남자를 쳐다보기는 했는데 눈이 마주칠까 이내 책 속으로 머리를 숙였습니다. 남자는 광야에서 외치는 자 같이 구원이 없는 타 종교를 비난하면서 예수를 믿어야 한다지만 아무도 그 소리를 주목해 듣지 않았습니다. 다만 불편한 심기를 몸을 움찔거려 표시했습니다. 나도 그 남자가 볼세라 자리를 고쳐앉으면서 눈에 들어오지 않는 책장을 넘겼습니다. 나뿐 아니라 아무도 거들떠보는 사람이 없는데 앉아있던 어떤 남자가
“거 좀 조용히 합시다.”라고 하자 전도자는 자기만 소리쳐야 하는데 승객이 소리치자 기분이 나쁜 듯 다가갑니다. 세 사람 건너에 앉아있는 사람이라 내가 일어서서 나가기 전에는 전도자와 대결하는 입장에 앉아 있어야 했습니다.
“예수 믿어야 합니다. 아니면 영원히 꺼지지 않는 유황불에 들어갑니다.”
지목당한 남자는 노골적으로 적대감을 드러내며
“당신이나 유황불에 들어가지 않도록 조심해 벌 건 대낮에 시끄럽게 뭐 하는 거야?”
반말로 대응을 합니다.
“당신 영혼이 불쌍해서 그래”
“이렇게 떠들고 다니는 당신이 더 불쌍해. 당신 말 듣고 여기서 예수 믿을 사람이 어디 있어? 믿고 싶다가도 당신처럼 미칠까 봐 도망가겠다.“
이후 두 분의 설전엔 욕설이 섞여서 더 이상 옮기지는 못하겠습니다.
나는 태생이 예수쟁이라 전도하는 사람에게 심정적으로 호의적일 수밖에 없습니다. 어쩌면 목사님이셨던 아버지의 고난을 알기 때문에 저 목마른 외침에서 아버지를 떠 올리기까지 합니다. 그러나 지하철 안의 전도 행각은 많은 사람들을 불쾌하게 만들고 일종의 폭력으로 느껴졌습니다. 저분을 보고 예수를 믿을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 같고 오히려 종교에 반감만 가지게 될 것입니다. 매일 절절 끓는 날씨에 사람들은 지쳐 있고 지하철 안에서 나마 잠시 쉬길 원하는데 그 시간까지 유황불을 떠올리고 시달려야 하는 승객들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었습니다.
거친 전도자와 공의로운 승객이 한참 옥신각신하면서 싸우는 통에 지하철 안의 불쾌지수는 더 높아졌지만 거드는 사람은 없었습니다. 승산 없는 싸움인 줄 알았는데 승객의 승리입니다. 세례요한이 모습으로 전도하던 남자는 더 후줄근해진 뒷모습을 보이며 어느 역에 내렸습니다. 불청객을 내쫓은 승객은 지하철 안을 한 번 쓰윽 훑어보며 모두가 들으라는 듯 시원하게 한마디 뱉었습니다.
“날도 더운데 별 미친놈까지 설치고 난리야.”
대답하는 사람은 없었지만 그 남자에게 동조의 일별을 보내는 모습도 보였습니다.
나는 장석주 씨가 지은 “은유의 힘(metaphor)”을 읽고 있었는데 펼쳐진 장에 마침 이런 말이 쓰여 있었습니다.
은유를 사용한 목소리가 목 울대를 빠져나와 당신을 위로했던 적이, 지나간 시간들이 무늬가 되어 오래 가슴에서 특별해진 적이 있을 것이다. 이 척박하고, 이상한 사람들이 일으키는 먼지와 소음으로 가득한 세상에서 우리가 가슴을 쓰지 않는다면 우리는 깊디깊은 주름 속에 함몰되고 말 것이다.
전도자는 광야에서 외치는 세례요한의 심정으로 전도를 하러 지하철을 선택했지만 그의 절박하고 완악한 언행은 폭력 그 이상이었습니다. 지하철 전도자는 삶으로 타인에게 조용히 영향력을 끼치는 방법을 연구해 보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2000년 전에 하던 방법이 지금이 통할 리 없습니다. 직접적이지 않은 온유한 언어로 우리의 삶을 덮어주고, 세상을 보호하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 보여주는 그런 전도자의 모습이었으면 하는 생각을 지하철 속에서 해 봤습니다.
데레사
2018-08-04 at 11:34
아, 정말 그런 전도자 싫어요.
지하철이건 어디건 그런 사람 만나면 절대로
말섞지 말아야 합니다.
그나저나 이 더위에 어떻게 지내세요?
우리집 컴이 몇번의 정전으로 강제종료가
되드니 드디어 망가졌습니다.
모바일로 연습해봐야 겠습니다.
더워서 컴 보러 나가기도 싫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