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세히 보아야 예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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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는 마음의 표현이고, 더 나아가 영혼의 언어입니다.
시는 영혼과 영혼을 연결해주는 언어라고 시인은 말했습니다.
노시인은 베옷을 아래위로 입으셨는데 딱 방송인 송해 씨를 닮아 보였습니다. 시인은 의자에 앉지도 않고 손목시계를 풀러 탁자 위에 놓더니 두 시간 동안 원고도 없이   삶의 자세와 지혜를 깊이 있고 쉽게 알려주셨습니다.

소설가도 그렇지만 시인도 대표작이라는 것이 있는데 그것이 어떤 사물을 통칭하게 만들기도 한다고 했습니다. 김소월 하면 가장 먼저 진달래가 떠오르기 때문에 다른 사람이 아무리 진달래에 대해 아름다운 시를 써도 김소월의 진달래를 능가하지 못한다고 겁니다.
“국화”는 서정주 시인이고 “별”은 윤동주 “님” 은 한용운 “모란”은 김영랑 “청포도”는 이육사……. 이렇게 우리에게 각인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나태주 시인은 “아도”라는 일본어를 사용해서 죄송하다고 하시면서 시가 어떤 이미지를 독점하게 하는 힘이 있는데 그것이 시가 가지고 있는 힘이라고 하셨습니다.
나태주 시인하면 대표작으로 “풀꽃”을 떠올립니다. 광화문 교보문고 글판에서 나태주 시인의 풀꽃이 25년간 가장 사랑받은 시구로 뽑혔습니다.

자세히 보아야 예쁘다. 오래 보아야 사랑스럽다. 너도 그렇다.

풀꽃은 잡초에 피는 꽃으로, 흔하고, 가꾸지 않고, 길가에 아무렇게 자라고, 귀하게 여기지 않는 허드레 느낌이고 마이너리티에 속하는 이미지이지만 오래 보아야 사랑스럽고 자세히 봐야 예쁘다는 것입니다. 이런 것을 언어적 발견이라고 하는데 원래 있었던 것을 찾아내고 재발견하는 것이 시인이라고 했습니다. “해 아래 새것이 없니…….”라고 했던 솔로몬의 말을 인용하면서 원래 있었던 것을 조합해서 새로이 하여 시가 탄생된다고 했습니다.

가는 길 (김소월)

그립다
말을 할까
하니 그리워

그냥 갈까
그래도
다시 더 한 번

저 산에도 까마귀, 들에 까마귀
서산에는 해 진다고
지저귑니다.

앞강물 뒷강물
흐르는 물은
어서 따라오라고 따라가자고
흘러도 연달아 흐릅디다려.

나태주 시인은 개인적으로 김소월 님의 “가는 길”을 최고의 시로 꼽는다고 하셨습니다. 그립다 말을 할까 하니 다시는 못 볼 것처럼 정말 그리워진다고 표현한 언어의 주술성을 말했습니다. 속상하다, 외롭다, 괴롭다, 슬프다. 말을 하니까 더욱 그렇다는 말로도 해석된다고도 했습니다. 우리는 반갑다. 고맙다. 기쁘다.라는 말을 공초 오상수 선생님처럼 말하고 살면 좋겠다고 했습니다. 살아있어서 좋고 하는 일이 있어서 좋고, 만남이 좋고 작은 것, 내게 있는 것을 족하게 여기는 것, 네 덕이다.라고 말할 수 있는 것. 여기가 가시밭길이 아닌 꽃자리라 여기며 살면 행복하다는 말씀이셨습니다.

좋은 시는 뒷부분에 반전이 있습니다. 우리의 인생도 나이 들어서 반전을 해야 한다고 하셨습니다. 초년에는 부모의 복으로 살고 중년에는 부모와 자신의 힘이 섞여 있지만 노년의 생은 고스란히 자신의 생입니다. 자기답게 사는 것이 중요하다고 했습니다. 행복은 감사하는 마음이고, 감사는 기쁨을 가져오는 마중물이라는 말씀도 하셨습니다.
살아있어서 좋고, 하는 일이 있어서 좋고, 만남을 감사하고, 내게 있는 작은 것에 감사하면 행복하다는 것입니다. 반갑고 고맙고 기쁘다. 이 말은 공초 오상수 선생이 자주 하셨는데 나중에 구상 시인이 꽃자리라는 시로 쓰셨다고 했습니다.

나태주 시인의 두 여자라는 시는 이렇습니다.
한 여자로부터
버림받는 순간
나는 시인이 되었고

한 여자로부터
용납되는 순간
나는 남편이 되었다.

젊은 날 같은 학교 여선생님을 좋아해서 청혼하려고 여자의 집에 갔다가 여자의 아버지에게 매만 맞고 쫓겨나 죽을 것 같은 상실의 고통을 느끼다가 시를 썼다는 얘기를 하셨는데 이렇게 짧은 시로 함축되었다고 했습니다. 교직에 계셨던 선생님은 좌천의 아픔도 겪었고 여자에게 버림도 받았고 실패도 겪었지만 그 얘길 쓴다고 하셨습니다. 잘 먹고 잘 사로 행복하고……. 이런 것보다 나의 실패에서 터닝 포인트를 찾아내고 실패, 위기, 결핍, 그런 것들을 극복한 일을 말하라고 했습니다. 늘 감사를 찾아야 하고. 진짜 좋은 인생은 실패를 딛고 일어서는 일이라고 하셨습니다.

나태주 시인은 “시는 자서전”이라고 하시며 일기 대신 시를 쓴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시인이 쓴 시에는 아랫부분에 꼭 날짜를 써넣는답니다. 시인은 시에 대해 강의하는 듯했지만 삶의 연륜을 우리에게 보여주셨습니다. 꼭 목사님 말씀 같기도 했습니다.

우리는 경제적으로 어려운 시대에 사는 것이 아니고. 분명 잘 살고 있는데 사람들이 어려운 시대라 말하고 자기만 어렵다고 말하는 것은 만족이 없기 때문이라고 했습니다. 가진 것에 만족해야 하고. 그런 다음 세상을 둘러보고 해야 할 일을 찾아보면 얼마든지 많은 일이 있을 것이라고 했습니다.

꽃피우는 나무
좋은 경치 보았을 때
저 경치 못 보고 죽었다면
어찌했을까 걱정했고
좋은 음악 들었을 때
저 음악 못 듣고 세상 떴다면
어찌했을까 생각했지요
당신. 내게는 참 좋은 사람
만나지 못하고 이 세상 흘러갔다면
그 안타까움 어찌했을까요…….

강의를 들었던 사람들과 사진을 찍으면서 이런 말씀을 하시더군요.
이제는 남자가 아니라 나무로 서 있다고요.

 

1 Comment

  1. 데레사

    2018-08-19 at 18:41

    나는 이제 좋은 사람을 만나면 또 볼수 있을까,
    좋은곳에 가면 또 올수 있을까 이런 생각이
    자꾸 들어요.
    남자가 아니라 나무라는 말에 공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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