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원도 산골의 겨울은 일찍 찾아옵니다.
추운 겨울을 대비해서 가을이면 솔방울을 주우러 선생님과 학생들이 산으로 갑니다. 주워온 솔방울을 학교 창고에 채워놓았다가 겨울에 교실 난로를 피울 때 불쏘시개로 씁니다. 바짝 마른 솔방울에 불을 붙이고 그 위에 장작 몇 개 얹고 맨 위에 갈탄을 붙습니다. 갈탄에 불이 붙기까지 교실은 메케한 연기로 가득 차게 되어 문을 열어 환기를 시켜도 매워서 눈물이 납니다. 일찍 등교한 친구들은 불 피는 당번만 남고 교실 밖에서 대기합니다.
바람만 불지 않으면 학교 건물의 동쪽 벽이 참 따스합니다. 건물 벽을 등지고 우리는 다닥다닥 붙어 서서 해바라기를 합니다. 그사이에도 고무줄놀이를 좋아하는 친구들은 고무줄놀이에 빠집니다.
“금강산 찾아가자 일만 이천 봉~”
“무찌르자 공산당~”
이런 노래에 맞춰 친구들은 다리를 높이 들어 고무줄을 넘어가고 돌아가고 합니다.
나는 벽에 등을 기대고 서서 친구들 노는 것을 보면서 노래를 같이 부르곤 했습니다.
초등학교 건물 외벽이 동쪽이었고 겨울날 따뜻한 놀이터였습니다.
지금도 그곳이 내 마음의 동쪽입니다.
지금도 방향을 잘 모르고 길눈이 어둡지만 어릴 때도 그랬습니다. 우리 집을 기준으로 내가 다니던 초등학교는 서쪽에 있었습니다.
오빠는 4학년, 나는 1학년, 체격이 크고 의젓했던 오빠는 나를 학교까지 늘 에스코트했습니다. 책가방을 대신 들고 가고 신작로 안쪽으로 나를 걷게 했습니다. 선생님들 사이에 나는 수니라고 불리기보다 오빠 동생으로 알려졌습니다.
“수니가 4학년 영태 동생이야”
초등학교 다닐 때부터 뛰어난 학생으로 소문난 오빠 덕을 톡톡히 봤고. 지금까지도 나의 인생에 조언자이고 나의 멘토입니다.
나는 동서남북을 오빠에게 배웠습니다.
어느 날 학교를 가다가 오빠가 나에게 물었습니다.
오른손이 어느 거냐?
나는 오빠의 그 단순한 질문에도 즉답을 못 해 오른손 왼손을 들고 어디라고 말해야 할까 쭈뼛쭈뼛하는데 오빠가 “너 밥을 어느 손으로 먹지?”라고 물어도 또 우물쭈물하니까
“수니야 밥 먹는 손이 어느 손이야?”
그 이야길 듣고 밥상에 앉아서 밥 먹는 모습을 그려보니 오른손이 생각났습니다.
동생의 민첩하지 못한 행동에 짜증이 날 만도 한데 오빠는 빙그레 웃더니 그 자리에 걸음을 멈췄습니다.
우리는 마침 군청 앞을 지나고 있었습니다.
우리 집과 학교 사이에 군청이 있었는데 군청 출입문 시멘트 기둥에 내 책가방과 오빠 책가방을 기대어놓더니
“수니야 내가 설명해 줄게 잘 들어”
라고 하면서 학교를 향하던 발걸음을 멈추고 뒤로 돌아보라고 했습니다.
마침 산 위로 아침 해가 솟아 있었습니다.
내가 살았던 곳은 군청도 있고 면사무소도 있는 평창 읍내였지만 사방이 산으로 둘러싸여 있어서 해는 늘 산에서 뜨고 산으로 넘어갔습니다. 지평선이니 수평선이니 하는 것을 본 적이 없습니다.
오빠는 나를 산 위로 떠오르는 해를 바라보고 서게 하더니
해가 떠오른 곳이 동쪽이야.
저기가 동쪽이고 네 뒤가 서쪽, 밥 먹는 손이 남쪽, 군청이 북쪽 이렇게 알려주었습니다.
해를 바라보고 섰을 때는 그렇고 학교 방향으로 갈 때는 달라져……..
그때부터 나는 왼쪽 오른쪽을 구별해야 할 때는 늘 그 광경이 머릿속에 그려집니다.
신문을 보면 사진 설명으로 “왼쪽으로부터 누구누구다.” 하면 머릿속에 신문을 군청 앞에 펼쳐놓고 밥 먹는 손은 오른쪽이니까 왼쪽은 여기구나……. 이러기도 합니다.
내 몸에 붙은 오른손을 어린 날 군청 앞에까지 가서 확인하는 그 느낌은 어리석음의 단면 같기도 하지만 어쩌면 정신의 사치 같기도 합니다.
군청 앞에서 만난 오른손 그 앞에서 익힌 동쪽 그리고 높고 컸던 학교 교실의 동쪽 벽
그 벽에 붙어서 햇살의 온기를 느꼈던 그런 날들이 지금도 머릿속에 선명합니다.
주일 아침
방안으로 햇살이 비스듬히 들어오는데 초등학교 건물 동쪽 벽이 갑자기 그리워지는군요.
김 수남
2018-09-17 at 12:56
언니! 참으로 정답고 아름다운 이야기입니다.저도 3살 위의 오빠가 있는데 오빠들은 다들 그렇게 좋은 성품을 가진 것 같아요.이번 추석도 행복하게 잘 지내세요.언니가 마음 써 주신 것들 항상 감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