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을 잃고 헤매는 일이

우리 어머니가 집을 못 찾아 길에서 헤매는 것을 중학교 여학생 두 명이 발견하여 경찰의 도움으로 서너 시간 만에 돌아온 사건이 지난 토요일에 대구에서 있었습니다.

어머니가 사는 아파트 단지 안에는 모여 놀 수 있는 쉼터가 있어서, 요즘에도 따뜻한 낮에는 할머니들이 모이나 봅니다. 어머니는 8층에 사시는데 혼자 엘리베이터를 타고 내려와서 현관 앞에서 멀지 않은 쉼터에 나가곤 한답니다. 그곳에서 심심한 할머니들이 모여 서너 시간 이야기 나누다 헤어지곤 하는데 간식거리를 조금씩 들고 나와 나누나 봅니다. 그날따라 할머니들이 여러 명 나오셨는데 간식거리가 없기에 어머니가 슈퍼에 가서 과자나 좀 사다가 나누어 드리려고 슈퍼를 혼자 가셨답니다.

사탕과 뻥튀기 등 간식거리를 사서 슈퍼마켓을 나왔는데 갑자기 방향을 모르겠더랍니다. 어림짐작으로 한참을 가다 보니 점점 낯선 곳이 나와서 다시 돌아서 가는 등 이쪽저쪽을 왔다 갔다 하다 보니 점점 더 혼돈이 오고 무릎이 푹푹 꺾이면서 걷기도 어렵고 어지럽기조차 하더랍니다. 뻥튀기와 과자가 들어 큼직한 검정 비닐봉지를 옆에 놓고 주저앉아 있자니 여학생 두 명이 다가와 할머니 어디가 아프시냐고 묻더랍니다. 길을 잃었다고 하니 학생들이 “우리가 찾아 드릴게요.” 하면서 양쪽 옆에서 어머니를 부축하고 과자봉지는 여학생이 들더랍니다. 할머니 집이 몇 동이냐고 묻는데 어머니는 몇 동인지 기억나지 않아서 가까이 가면 알 수 있겠다고 했더니 어린 학생들이 아파트 단지 안을 이리저리 모시고 다녔나 봅니다.

어머니가 사는 대구 삼성아파트는 대단지로 아마 4000여 세대 정도 되는 것 같습니다. 그러니 동 호수를 모르고서는 똑같이 생긴 아파트 입구를 찾아가기란 난해한 일입니다. 학생들이 어머니와 함께 찾아다니다 보니 안 되겠던지 파출소로 모시고 가서 할머니 집을 좀 찾아 달라고 경찰에게 부탁드렸답니다. 어머니는 집 앞에 나간 길이라 휴대폰도 안 들고 가셨고 신분증도 지참했을 리 없습니다. 파출소에 여학생 두 명과 한참을 앉아 있자니 어머니는 큰아들 이름이 생각나고 아들 교회가 생각나서 교회 이름과 아들 이름을 댔더니 경찰관이 바로 연락을 할 수 있었고 그래서 무사히 집으로 돌아올 수 있었답니다. 여학생 두 명은 경찰과 함께 어머니를 집안에까지 모셔드리고 가려고 하자 그 상황에서도 어머니는 주머니에서 돈을 꺼내 학생들에게 고맙다고 주었다고 했습니다. 경찰은 드리니까 안 받아서 너무 미안하다고 하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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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에 와서 한숨을 돌리고 나더니 몸살이 나는 듯 으슬으슬 떨면서 머리가 아프다고 하면서 일찍 잠자리에 들었다고 해서 전화 통화도 못하고 형제들끼리 대책을 위한 카톡만 분주했습니다. 형제들은 어머니의 길 잃어버린 사건이 다 본인들 잘못이라도 되는 양 속상해 했습니다. 하룻밤 자고 나서 어머니께 전화를 드렸더니 “내가 왜 이렇게 바보가 됐는 지 모르겠다”라 시며 몹시 낙심하시더군요.

그렇지 않다고 옛날 할머니들은 60대에도 그러셨는데 어머니는 90세가 아니냐고. 엄마는 똑똑한 거라고, 가끔 그런 혼돈을 느끼는 것은 당연한 일이라고 위로 말씀을 드렸지만, 길을 잃고 헤매는 어머니 모습을 생각하니 마음이 아팠습니다.

우리 병원에서도 지난주에 어르신들을 모시고 호수공원 산책을 다녀왔습니다.봄가을에 따뜻한 날을 골라 전 직원이 동원되어 환자 한 분당 직원 한 사람이 맡아서 휠체어를 밀고 호수 공원엘 갑니다. 병원에서 출발하면 호수공원이 큰길 하나만 건너면 되는 가까운 거리에 있지만 보도 불럭이 울퉁불퉁하고 건널목의 턱에 걸려 힘을 쓰다 보면 휠체어를 탄 분이나 장애인들에게는 참 쉽지 않은 길이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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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상 상태의 어르신을 빼고 휠체어로 이동이 가능한 환자분들을 모시고 이틀에 나누어 원무과 직원을 비롯하여 간호과와 주방 여사님 간병인 의사선생님까지 총동원하여 가는데 휠체어를 밀고 가는 모습을 행인들이 멈춰 서서 이상한 눈초리로 물끄러미 바라봅니다.

왜 저런 환자를 모시고 나올까? 그런 생각을 할지도 모르지만 일단 호수공원을 다녀온 환자분들은 정말 좋아하십니다. 바람이 조금 불어서 추운듯하기에 담요로 둘러싸고 마스크까지 해서 모양은 별로 없지만 어르신들은 즐거워했습니다.

layout 2018-10-23 (1a)오라버니와 남동생은 바쁜 틈에도 어머니를 위해 계명대 캠퍼스를 함께 산책하면서 위로해 드리고 사진을 보내왔더군요. 두 아들의 손을 잡고 단풍길을 산책하는 우리 어머니는 어제의 일은 잊어버린 듯 하셨습니다.

2 Comments

  1. 데레사

    2018-10-23 at 07:21

    가슴이 찡 해옵니다.
    나이든다는게 무서워요.
    어머님 상태가 많이 나쁘신건 아닌듯해서
    그나마 다행입니다

  2. 윤정연

    2018-10-23 at 10:23

    아이구…큰일날번 했군요…
    착한 여학생들이 참 고맙구요.
    우리동네 할아버지 한분은 연세가 많아서 그랬겠지만 명함만한 종이에 아들 전화번호 집 동호수 이런것을 적어서 코팅한 것을 목에 달아주셨던 것을 보았습니다.
    연세가 많아지면 어쩔수없는…
    부디 어머님꺼서 건강하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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