찌찌 다방의 추억

오래전 약국을 할 때 일입니다.
약국 안, 내 자리에 앉아서 보면 찻길 건너에 재미난 간판이 있었습니다.
20년쯤 전인데 건물 지하에 있는 다방 이름이 찌찌 다방이었습니다. 찌찌라는 발음이 유아적인데도 불구하고 찌찌와 다방과 합쳐지니 어딘가 좀 엉큼하고 퇴폐적인 느낌이 들었습니다. 찌찌 다방 위엔 지금은 24시 편의점으로 바뀐 구멍가게가 있었고 그 옆은 투덜이 아저씨네 식당, 2층엔 중국음식점이 있었습니다.
 
우리 동네는 일산시장을 중심으로 파주 운정 등 주변 도시까지 흡수하던 활발한 상권이 형성된 일산의 핵이었는데 일산 신도시가 생겨나고 신도시에 어울리는 이마트 까르푸 코스트코 같은 대형 마켓이 여러 개 생겨나 그런 것에 밀려 구일산이라는 지명으로 쇠락해 갔습니다. 변화에 발맞추어 빠르게 신도시로 사람들이 빠져나가고 조금은 허수룩한 사람들이 남아 신도시를 부러워하며 옹기종기 모여 있었습니다. 철길 하나 건너면 신도시고 커피숍이 우후죽순처럼 생겨나는 때에 찌찌 다방이라니 얼마나 안 어울리는 일입니까?
 
나는 일하다 눈만 들면 찌찌 다방이 마주 보여서 손님이 드나드나 관심을 가지고 지켜봐도 지하로 내려가는 손님은 좀체 볼 수 없었습니다. 거의 커피 배달로 먹고 사는 듯 찌찌 다방에 김양이라고 불리는 아가씨가 있었는데. 약간은 푼수 같은 여인이었습니다. 어찌 보면 귀여운데 너무 헤헤거리고 다녀서 주책스럽기도 하고 속이 없어 보였습니다. 동그란 쟁반 위에 맥스웰 로고가 있는 빨간색 보온병에 커피를 담고 프림과 설탕통을 얹어서 보자기로 싸서 들고 다녔습니다. 가끔 두통 때문에 약을 사러 오기도 했는데 전날 술을 좀 많이 마셨다고 묻지도 않은 말을 하곤 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동네가 소란스러워졌는데 다방 레지와 중국집 사장이 야반도주를 했다는 겁니다. 중국집 사장은 상인들끼리 계를 하자고 하면서 동네 사람 돈을 끌어모아 계획적으로 한몫을 챙겨서 달아났는데 레지가 함께 갔다고 했습니다. 대책반을 구성해서 중국집 사장을 체포한다고 했지만 결과는 없었던 것 같습니다.
 
20년 쯤 지난 지금도 우리 동네는 크게 변한 것이 없습니다.찌찌 다방 자리가 오래 비어있더니 스크린 골프 연습장이 들어왔고 2층 북경반점은 오락실로 바뀌었습니다. 투덜이 아저씨가 하던 식당은 아저씨가 몸이 아파서 그만두고 술집이 된 정도입니다, 약국 간판도 그대로, 병원도 그대로인데 약국은 약사가 바뀌었고 병원은 의사가 바뀌었습니다. 나는 약국 간판을 보면 그 안에 내 동생이 살아있을 것 같고 언니를 부르며 뛰어나올 것 같은 환영 때문에 약국 앞으로는 잘 가지 않고 큰 도로 쪽으로만 다닙니다.
 
나는 어쩐지 찌찌 다방 아가씨가 북경반점 아저씨와 어디 멀리 도망가서 아들딸 낳고 잘 살 것 같습니다. 중국집 아저씨는 얼굴이 생각이 안 나는데 아가씨는 커피 쟁반을 들고 헤헤거리며 다니던 모습이 떠오릅니다.

찌찌 다방 이야기를 한 것은 어느 블로거가 비밀글로 찌찌 다방 이야기를 하는 겁니다.
그때 계시던 약국이 찌찌 다방 건너편이라고 기억이 됩니다만~~ㅎㅎ
이러셔서요.
오래전 동아일보 커뮤니티에 글을 올린 적이 있는데 그걸 여태 기억하고 있었던 겁니다.
인터넷 아이디를 20년 넘게 순이로 하고 있으니 오래 잊고 있다가도 생각이 나나 봅니다. 
덕택에 찌찌 다방에 얽힌 추억을 들추어 봤습니다. 그 글을 찾으려고 해 봤는데, 동아닷컴도 커뮤니티를 닫아버렸고 조선 블로그도 위 블로그로 넘어오면서 글 보따리를 싸 주긴 했는데 어느 갈피에 들었는지 못 찾아서 다시 썼습니다.
그때 이야기를 찾아 올리면 훨씬 실감 나고 재미있는데 아쉽네요.^^

 

2 Comments

  1. 막일꾼

    2018-12-04 at 07:11

    짠한 느낌을 주는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저도 그 찌찌다방 아가씨가 지끔쯤 아들 딸 잘 키우고 행복하게 살고 있었으면 하고 바래 봅니다.

  2. 데레사

    2018-12-04 at 10:55

    어디선가 이글을 읽고 있을지도…ㅎ
    중국집 아저씨는 유부남이었을것 같은데
    평탄 했을까요?
    옛동네들은 이런 재미난 이야기가 많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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