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빵 언니
막내 여동생은 저를 대빵 언니라고 부릅니다.
자매가 넷이었는데 동생 한 명은 먼저 가고 세 자매인데 그나마 한 명은 호주에 가 있고 둘만 남았습니다. 동생과는 나이 차이가 무려 12살, 띠 갑장입니다. 그래서인지 큰언니라고 부르기보다 대빵 언니라고 부르고 나를 본인 지인들에게 소개할 때도 우리 대빵 언니예요. 라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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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내 여동생은 우리 일곱 남매 중에 가장 특이한 성향의 사람입니다.
학교 다닐 때부터도 노는 걸 좋아해서 어머니께서 걱정이 많았습니다.
“공부를 안 하는 널 어떻게 하면 좋겠니?”라고 어머니가 걱정하면
“엄마~ 나 어디서 주워왔지? 난 오빠 언니들하고는 정말 달라? 엄마가 책임져야 해 ”
이러면서 더 이상 말도 못 하게 억지를 부렸습니다,
아버지는 일찍 돌아가시고 어머니가 고생을 많이 하셨는데 요즘엔 이 딸이 어머니께 가장 잘합니다. 물질적으로도 그렇지만 바쁜 중에도 어머니를 자주 찾아뵙니다. 다른 형제들은 감정 표현이 그렇게 섬세하지 못한데 동생은 어머니를 끌어안고 뽀뽀를 하고 사랑의 표현을 찐하게 합니다. 그러는 막내딸이 어머니도 싫지 않으신 것 같고요.
주말에 이 동생이 재즈 공연에 초대를 해서 다녀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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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속버스터미널 뒤편에 있는 팔레스호텔이 쉐라톤 강남으로 이름이 바뀌었더군요,
작년엔 국립극장에서 하는 공연에도 갔던 터라 재즈 공연이 낯설지는 않은데 호텔 바에서 그것도 늦은 시간에 한다니 망설여졌는데 동생이 얘기할 것도 있고 하니까 꼭 오라는 겁니다.
나는 용기가 없고 망설임이 많은 사람이라 글쎄~ 이러고 있었더니 동생이
“언니는 여태 살면서 늦은 밤 공연을 함께 갈 친구도 한 명 없다는 게 말이 돼요?”
이러면서 나를 구박합니다.
어쩔 수 없이 가겠다고 하고 주변에 함께 갈 파트너를 물색하여 봤지만, 궁리가 나질 않아서
오랜 이웃이자 글 친구인 목사님 사모님께 같이 가자고 했습니다.
호기심 많고 글심 좋은 사모님은 좋은 구경인데 기회가 될 때 가겠다고 하더니 공연 두 시간 전에 아무래도 못 가겠다고 연락이 왔습니다.
너무 늦은 시간이고 다음날이 주일이고 밤 운전은 아무래도 무리가 될 것 같다면서 용기를 내지 못하더군요. 결국 혼자 갔습니다.
재즈 공연이 열리는 바에서 만난 동생의 제자라는 여인들은 직업이 춤 선생들이라서 그런지 옷차림이 유난하고 몹시 화려했습니다, 거기가 젊기까지 하니 얼마나 예쁜지 모릅니다. 자리에 앉는데 동생이 “야 너네들! 우리 대빵 언니에게 인사했어?” 라고 하니 예쁜 아가씨들이 벌떡 일어나 90도 각도로 허리를 굽혀 인사를 합니다. 나는 민망하고 불편한 느낌이 들었습니다. 동생은 불편한 내 마음도 모르고 제자들에게
“내가 우리 대빵 언니에게 꼼짝도 못 해요. 내가 젤 좋아하지만 젤 무서운 분이야.” 이러며 묻지도 않은 말까지 합니다.
동생은 명랑하고 적극적이고 직업이 춤 선생이라 (무용과 교수) 노는 물이 나하고는 다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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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급호텔 12층 바에서 와인을 마셔가며 재즈 듣는 일이 즐거웠을까요?
전혀 그렇지 않았습니다.
동생은 제자들과 함께 치즈를 씹어가며 와인을 마시고 재즈 선율에 몸을 싣고 흔들거리며 분위기에 흠뻑 젖는데, 난 꿔다 놓은 보릿자루 같은 모습이고 스스로 이질감이 들어서 1부를 마친 시간에 돌아가겠다고 했습니다. 내가 편안해하지 않는 것을 안 동생이 콜택시를 부르고 1층 로비를 지나 현관 밖으로 나와 배웅을 하는데, 동생 제자들이 쭈르르 따라 나와 허리 굽혀 인사를 합니다. 꼭 조폭 세계의 똘마니 같은 모습으로 형님 대신 대빵 언니 안녕히 가시라고 인사를 하는 묘한 광경이 벌어졌습니다.

택시가 출발하자 기사님이 저에게 말을 겁니다.
“뭘 하시는 분인데 저렇게 이쁜 처자들이 많이 따릅니까?”
나는 설명할 말이 없어서 그냥 웃었습니다. 그리고 기사님과 이야기를 트면 강남에서 일산까지 가도록 대화가 이어질 것 같아서 피곤하기도 해서 입을 다물었습니다.
기사님은 못내 궁금해하였지만 뭐라고 답하겠습니까?
동생이 춤 선생이고 예쁜 숙녀들은 춤 선생 제자들이라고, 난 그 춤 선생 대빵 언니라고 그렇게 말했어야 할까요? ^^
난 동생에게는 대빵언니일지 모르지만 주어진 분위기도 누릴 줄 모르는 흥이라곤 없는 사람입니다.

1 Comment

  1. 데레사

    2018-12-18 at 16:34

    ㅎㅎㅎ
    대빵언니라는 말에 웃음이 절로 나옵니다.
    사진으로만 봐도 엄청 멋쟁이들이고 예쁩니다.
    그러니 꿔다놓은 보릿자루가 될수밖에요.

    명랑한 동생을 둔것도 복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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