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가복

어머니 생신에 전가복이란 요리를 처음 먹어봤습니다.

모인 날은 어머니 생신이기도 했지만, 새언니로서는 사위가 결혼식 후 처가 친척들과 함께하는 첫 모임이라 음식점 선택에 고심을 많이 해서 선택한 장소였습니다.
형제들이 어머니 생신에는 거의 빠짐없이 참석합니다. 그래서 많은 사람이 모여서 입맛대로 먹기에 편한 호텔 뷔페에서 모이곤 했는데 이번엔 대구 근교의 중국음식점에서 만나자고 했습니다.
약속 장소에 도착해 보니 근사한 자연 풍경을 배경으로 한적한 곳에 자리 잡은 중국음식점이었습니다.
어머니 생신 핑계로 잘 먹을 것을 생각해서 식사를 소홀히 하고 간 길이라 배가 고팠습니다.

예약된 방에서 형제들이 생일 축하 노래를 부르고 어머니가 촛불을 끄는 세리머니를 하고 난 후 첫 음식이 나왔는데 매생이 수프입니다.
파란 풀색이 나는 걸쭉한 매생이 수프는 일단 비주얼이 별로였습니다.
나만 그런 것이 아니라 어머니께서 수프 그릇을 들여다보면서
“이게 뭐냐?” 묻습니다.
매생이 수프라고 말씀드리니 매생이를 나생으로 알아들으시고는
“나생이로 죽을 끓이냐? 나는 안 먹을란다.” 이럽니다.
나생이는 냉이의 강원도 사투리입니다.
어머니는 강원도에서도 산촌인 평창이 고향이라 바다 풀인 매생이는 처음 먹는 음식이라 낯설어서 그런지 별로 구미에 당겨 하지 않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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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으로 요리가 나왔는데 저는 처음 보는 음식이었습니다.
음식 이름이 뭐냐고 조카에게 물었더니 전가복이라고 하는데 이름을 처음 들어봤습니다.
전복이나 복어가 들어가서 전가복인가 했더니 조카의 설명으로 “모든 가족이 행복하다.”라는 뜻의 전가복(全家福)이라고 했습니다.
전가복은 주방장이 재료를 아낌없이 넣고 자신이 가장 잘하는 방법으로 하는 요리랍니다.
지방에 따라, 가게에 따라서 전부 맛이 다르다고 하는데 재료를 기름에 데쳐 소스와 볶는 집도 있고, 팔보채처럼 걸쭉하게 만드는 집도 있는데. 탕요리로 하는 집도 있다는 새언니의 설명입니다.
이곳의 전가복은 팔보채와 비슷하게 생겼습니다. 전복, 해삼, 소라, 새우, 송이, 표고버섯, 죽순, 청경채 등의 재료로 만들었습니다.
재료가 럭셔리해서 일단은 비싼 음식인 것은 알겠는데 매생이 수프와 마찬가지로 비주얼은 그다지 좋지 않았습니다.
어머니 생신인데 음식이 어머니 맘에 안 들어 걱정하면서 접시에 덜어서 드렸더니.
한입 드시더니 언짢은 기색을 드러냅니다.
“무슨 떡볶이 맛이 이러냐? 고추장도 좀 넣고 맛있게 하지 닝닝하기만 하구나……..“

어머니와 마주 앉은 오라버니는 어머니 말씀에 빙그레 웃기만 할 뿐 대답은 하지 않고 접시에 음식을 덜어 먹습니다. 나도 일단은 몸에 좋다는 전복 해삼이 많이 들었기에 전복을 골라  먹었습니다. 기회에 몸보신하자고 생각하니 음식 타박할 일이 없었습니다. ^^
새언니는  전가복 속에 고급한 재료는 빼고 죽순이나 청경채만 골라 접시에 담습니다,
“언니는 왜 채소만 드세요? 맛있는 게 많은데요?” 했더니
“익힌 청경채가 맛있어요.”라고 하는군요.

어머니는 원래 좋고 싫고의 감정을 잘 드러내지 않는 분이고 참을성이 많은 분입니다. 특히 큰아들이 하는 일에 토를 다는 일이 없었는데 요즘 들어서는 싫은 감정을 여과 없이 들어냅니다.
“무슨 음식을 이렇게 만드냐? 이 집은 음식도 할 줄 모르나 보다.”
나를 비롯하여 오라버니 내외와 조카 내외 막내 남동생 다섯 식구, 막내 여동생 가족 등은 다들 맛있게 먹다가 어머니 심기가 불편한 것을 알고 걱정이 되었습니다.
어머니 생신이라 흡족하게 해 드리려고 했는데 음식이 하나도 마음에 들지 않으니 식사 중에 장소를 옮길 수도 없고……..
전가복 이후에 몇 가지 더 나온 음식 중에 짜장면이 있었는데 어찌나 반가운지 모릅니다. 어머니도 그제야 짜장면을 맛있다고 하며 드셔서 생일날 굶는 사태는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매생이 수프도 전가복도 마음에 안 들었지만 짜장면은 늘 드시던 맛이라 좋았나 봅니다.

전가복은 “온 가족이 행복한 요리”라고 영어로도 ”Happy Family”로 부른다는데 우리 가족에게는 짜장면이 가장 행복한 음식이었습니다. 특히 전가복을 맛내기에 실패한 떡볶이로 아는 어머니께는 짜장면이 최고의 요리였습니다.

1 Comment

  1. 데레사

    2019-01-01 at 01:55

    ㅎㅎㅎ
    저도 어머님처럼 말할것 같아요.
    사실 전가복 비주얼이 고급스럽지는 않아요.

    어머님 생신에는 여쭤보고 식당을 선택
    하셨으면 좋았을텐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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