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복
한이가 올해 초등학교에 입학합니다.
작년엔 입학한 건이는 2학년에 됩니다.
토요일 오후에 한이 교복을 맞추러 온 가족이 가서 근무 중인 나에게 사진을 찍어서 보냈는데 어찌나 예쁜지 모릅니다.
그러나 예쁘다는 감탄도 잠시, 교복값이 너무 비싸서 깜짝 놀랐습니다.
작년엔 입학한 건이는 2학년에 됩니다.
토요일 오후에 한이 교복을 맞추러 온 가족이 가서 근무 중인 나에게 사진을 찍어서 보냈는데 어찌나 예쁜지 모릅니다.
그러나 예쁘다는 감탄도 잠시, 교복값이 너무 비싸서 깜짝 놀랐습니다.
나는 비싼 교복값 때문에 엉뚱하게도 아버지 생각이 떠올라서 마음이 아팠습니다.
우리 아버지는 많은 자녀를 공부시키느라 얼마나 힘들었을까…….
아이가 한두 명이라 아이가 원하는 것은 뭐든지 다 할 준비가 되어있는 요즘도 교복값이 생각보다 비싼 것에 놀라는데, 수입도 변변치 않고 자녀는 많아서 그 뒷바라지가 쉽지 않을 때에 교복값은 정말 큰 부담이었을 것 같습니다.
우리 아버지는 많은 자녀를 공부시키느라 얼마나 힘들었을까…….
아이가 한두 명이라 아이가 원하는 것은 뭐든지 다 할 준비가 되어있는 요즘도 교복값이 생각보다 비싼 것에 놀라는데, 수입도 변변치 않고 자녀는 많아서 그 뒷바라지가 쉽지 않을 때에 교복값은 정말 큰 부담이었을 것 같습니다.
중학교 입학식을 앞두고 아버지와 함께 양장점에 가서 교복을 맞추었습니다.
쇼윈도가 있는 번화가의 양장점은 비싸다고 해서 재래시장 깊은 곳에 재봉틀을 놓고 어깨에 줄자를 걸친 아주머니가 하는 허름한 수선집을 찾아가 교복을 맞추었습니다. 사실 맞춤이라는 말이 무색할 정도로 줄자를 가지고 있는 아주머니 재량입니다.
그곳까지 찾아온 가난한 아버지의 주머니 사정을 안다는 듯 아주머니는 나를 세워놓고 줄자로 손목을 지나 손등으로 10센티쯤 내려오게 팔 길이를 재고 치마 길이도 거의 발목까지 내려오게 쟀습니다.
한창 성장기인 중학생이 내리 3년을 입어야 하는 옷이니 그렇게 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모양을 볼 것도 없이 품도 크게 길이도 길게 그렇게 맞추는 것이 맞춤 교복입니다.
1학년 때는 치맛단을 서너 번 접어 입고 팔도 한번 접어 입어야 했고 2학년 때는 대강 맞고 3학년 때는 낡기도 했지만 작아서 껑충한 그런 모양입니다.
그래도 교복이 가장 좋은 옷이고 외출복입니다.
쇼윈도가 있는 번화가의 양장점은 비싸다고 해서 재래시장 깊은 곳에 재봉틀을 놓고 어깨에 줄자를 걸친 아주머니가 하는 허름한 수선집을 찾아가 교복을 맞추었습니다. 사실 맞춤이라는 말이 무색할 정도로 줄자를 가지고 있는 아주머니 재량입니다.
그곳까지 찾아온 가난한 아버지의 주머니 사정을 안다는 듯 아주머니는 나를 세워놓고 줄자로 손목을 지나 손등으로 10센티쯤 내려오게 팔 길이를 재고 치마 길이도 거의 발목까지 내려오게 쟀습니다.
한창 성장기인 중학생이 내리 3년을 입어야 하는 옷이니 그렇게 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모양을 볼 것도 없이 품도 크게 길이도 길게 그렇게 맞추는 것이 맞춤 교복입니다.
1학년 때는 치맛단을 서너 번 접어 입고 팔도 한번 접어 입어야 했고 2학년 때는 대강 맞고 3학년 때는 낡기도 했지만 작아서 껑충한 그런 모양입니다.
그래도 교복이 가장 좋은 옷이고 외출복입니다.
우리 친구는 부잣집 무남독녀였는데 나는 그 친구 처지가 어찌나 부러웠는지 모릅니다.
친구는 동복만 해도 여러 벌이었습니다. 교복 치마가 검은색이지만 원단에 따라 군청색일 수도 있고 회색빛이 날 수도 있고 초록빛이 돌 수도 있는데, 친구 엄마는 딸의 친구들이 입은 옷 색깔이 좋아 보이면 다시 맞춰주었습니다. 나는 허름한 수선집에서 맞춘 교복이라 원단에서 푸른빛이 나는 검은색인데 그게 좋아 보였나 봅니다. 친구 엄마는 어디서 맞추었는지 나에게 묻더니 거기 가서 한 계절만 입을 수 있게 꼭 맞게 맞추어 주어 친구는 입고 다니더군요. 한 명을 키우나 여러 명을 키우나 자식에게 들이는 공은 마찬가지인 것을 알았습니다. 오히려 친구 엄마는 한 명 키우는 것이 우리 집 보다 더 힘들었을 것 같습니다.
우리 아버지는 나에게 판초 비옷같이 큰 교복을 입혀놓고 너무도 좋아하셨습니다.
저도 우리 딸아이가 교복을 입었을 때의 감격을 잊지 못합니다.
딸아이 때는 아이비니 스마트니 엘리트니 하는 메이커 기성복이 나와서 3년씩 입힐 요량은 아니더라도 빨리 자라는 시기이니 조금 큰 것을 사 입혔는데도 제복이라는 아우라가 있어서 그랬는지 많이 키웠구나 하는 감격이 있더군요.
우리 아버지가 이래서 나에게 교복을 입혀놓고 좋아하셨구나 하는 것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이제는 손자에게 교복을 입혀놓고 그 기쁨을 느낍니다.
우리 아버지는 나에게 판초 비옷같이 큰 교복을 입혀놓고 너무도 좋아하셨습니다.
저도 우리 딸아이가 교복을 입었을 때의 감격을 잊지 못합니다.
딸아이 때는 아이비니 스마트니 엘리트니 하는 메이커 기성복이 나와서 3년씩 입힐 요량은 아니더라도 빨리 자라는 시기이니 조금 큰 것을 사 입혔는데도 제복이라는 아우라가 있어서 그랬는지 많이 키웠구나 하는 감격이 있더군요.
우리 아버지가 이래서 나에게 교복을 입혀놓고 좋아하셨구나 하는 것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이제는 손자에게 교복을 입혀놓고 그 기쁨을 느낍니다.
데레사
2019-01-07 at 17:36
나중에는 우라카이라고 해서 안과밖을 뒤집어서
입었지요. 수선집에서 그렇게 뒤집어서
고쳐 놓으면 새것같기도 했거든요,
그나마 시장에서도 못 맞추면 졸업생들 에게
가서 사정사정하여 헌옷을 얻어 입기도
했고요.
전설같은 시절 얘기입니다.
윤정연
2019-01-08 at 14:31
수니님…무남독녀 부러워 했다는 예전글이 생각났습니다…
무남독녀 물자도 풍부하고 부모 사랑은 넘쳤지요 또 걱정도 많이 하셨구요…난 그때나 지금이나 형제 많은것이 얼마나 부러웠던지 이담에 나는 애기많이 낳을꺼야!!! 했건만 유전자가 그런지
나또한 무남독녀를 뒀네요…
딸은 나는 많이 낳을래 하더니 남매를 두고요…
수니님 우리가 클때는 여러형제 있는집은 사지 라는것도 입었고…참 옛날예기라 정겹네요~~**
김 수남
2019-01-09 at 01:59
네,언니! 한이의 입학을 축하합니다.교복 추억이 함께 있어 감사합니다.저는 언니 것 물려 입어서 빛바랜 것을 입었는데 2학년 때는 하복 ,동복 모두 저의 몸에 맞춰 주신 것이 감사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