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정

새해 들어 친구들을 처음 만났습니다.
매달 한 번씩 만나는 친구가 12명 정도인데 어제는 아홉 명이 출석했습니다.
일산에 사는 친구의 사위가 40세 젊은 나이에 의대 교수에 임용되었다고 점심을 사기로 했습니다. 친구의 큰딸 내외는 의대 동기로 만나 결혼했습니다. 요즘 화제가 되고 있는 텔레비전 드라마 스카이 캐슬에서 보면 3대째 의사가문을 만들겠다고 인성이 파괴될 정도로 목숨을 거는 것을 봅니다. 수억을 들여 입시 코디네이터를 두고 학교 시험지를 빼돌려 가면서 전교 일 등을 해서 내신으로 의대를 가려고 합니다. 드라마니까 허무맹랑한 픽션이어야 하는데 실제로 그런 일들이 벌어지고 있다고 하고 지난번 쌍둥이 여학생 시험지 유출 사건도 있고 보면 있음 직한 이야깁니다. 그러나 친구는 아이들 과외도 시키지 않고 조용히 뒷바라지를 했는데 자녀들도 성실하고 정말 착하게 잘 자라고 의사가 되더군요. 머리는 파마 한번 하지 않고 목덜미에서 감아올려 핀으로 단정하게 꼽고 옷도 무채색 옷을 주로 입어서 꼭 단정한 수녀님 같은 분위깁니다. 항상 겸손하고 조용한 사람이라 우리 친구는 친구들 사이에도 귀감이 됩니다.

 

친구는 딸 내외가 다 의사라 바쁘니까 손자를 맡아서 돌봐줍니다. 작은딸도 방송국 기자라 바쁘니까 손녀도 돌봐주는데 보통 조부모의 돌봄 형태를 넘어서 주 양육자로 전적인 돌봄을 합니다. 손녀의 재롱을 이야기할 때는 얼마나 행복해하는지 모릅니다. 엄마의 영향으로 딸도 아픈 지인들이 소개로 진료를 의뢰하며 최선으로 편리를 봐 주고 도와주려고 애를 씁니다. 이번에 의대 교수가 된 사위도 참 따뜻한 성품으로 환자를 진료하기 때문에 병원에서도 인기가 좋은데 특히 연세 드신 어르신들이 그렇게 좋아한다고 하는군요. 일만 열심히 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 관리도 철저히 하는데 몸살이 올 듯 몸이 찝프등하면 승용차를 두고 자전거를 타고 두 시간 거리를 가는 운동을 해서 몸의 컨디션을 회복한다고 하는군요. 보통은 몸살이 올 듯하면 쉬어야 한다며 이불을 쓰고 눕는데 자전거를 타고 출근을 한다니 대단한 의지입니다.
집안에 창고를 하나 설치할 재료가 필요해서 청계천에서 커다란 물건을 사서 지하철을 타려고 해 보니 다른 승객들에게 폐가 될 것 같더랍니다. 그래서 자전거에 짐을 싣고 청계천에서 일산까지 실어 날랐다고 합니다. 부피가 크거나 길이가 길거나 한 것을 청계천에서 일산까지 자전거로 실어 날라 집안에 창고를 짓더라고 친구가 사위의 행동을 놀라워합니다.
식사비용도 미리 가서 밥값을 선금으로 내놓았습니다. 엄마를 직접 주면 안 받을 것 같으니까 어디서 모임 하는가 물어서 일부러 들려 선결제를 했는데 결제금액이 남아서 우리 친구들이 몇 번 더 가서 먹어도 될 것 같습니다. 인사동에 있는 할리우드 식당은 퓨전음식점으로 고르곤졸라 피자가 특히 맛있는데 친구네가 좋은 일로 한턱내는 것이라 즐겁고 좋은 시간이었습니다. 친구가 자녀를 잘 키운 덕을 우리 친구들이 누렸습니다.
기쁜 일만 있는 것이 아니라 친구 남편이 건강검진 상에 폐암이 발견되었다고 하는 소식도 있었습니다. 이제는 우리가 그럴 나이가 되었나 봅니다. 그 친구는 남편 폐암 소식도 친구들이 놀라지 않게 예쁘게 시작하더군요.
“얘들아 우리 남편이 요즘엔 어딜 가도 손잡고 가려고 한단다.”이러니 우리는 나이 먹어 가면서 부부 사이가 더 애틋해서 그런가 보다 했는데 내용은 폐암이라는 진단이 나오자 남편이 아내에게 여태 못한 것만 생각이 나서 “남은 시간 동안 아내에게 보답 하겠다.”는 다짐을 한다는 겁니다. 친구 남편은 지금까지는 함께 외출을 해도 나란히 가는 법이 없고 바쁜 듯이 늘 앞서갔는데 이제는 손잡고 걷자고 하면서 폐암 소리를 듣던 날부터 아내에게 너무 잘한다고 말하며 웃었습니다. 나이 들어가면서 이런 변화는 그런 충격이 아니면 나타날 수 없는 것 같다고 말했습니다. 워낙 말을 재미있게 하는 친구라 충격적인 일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고 오히려 긍정적인 방향으로 해석하는 놀라운 능력이었습니다.
다음날 아침
“우리 친구 남편이 잘 치유되기를 위해 기도하자.”라는 제안을 한 친구가 카톡에 올렸습니다. 서로 각자의 신에게 기도하겠다는 응답이 꾸준히 올라옵니다. 불교 천주교 기독교 다 자기가 믿는 신은 다르지만 각자의 믿음대로 기도하자고 했습니다. 그걸 본 당사자는 친구들의 따뜻한 글 우정의 말에 눈물이 날 거 같다며 큰 위로와 힘이 된다는 응답을 합니다.
친구들의 따뜻한 우정으로 힘을 얻어 또 한 해를 살아갑니다.

1 Comment

  1. 데레사

    2019-01-21 at 17:22

    이제 내 친구들은 열명 만나면 다섯명 정도는 남편이 없습니다.
    살아있는 그 다섯명 중에서도 제대로 걸어다니며 활동하는 사람은
    또 줄고요.
    나이 먹어가니 주변이 이렇게 변해 가네요.
    폐암, 쉬운병이 아닌데 힘드시겠어요.
    잘 낫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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