침상에 기대어 앉아

4살 때 동생이 태어나 어머니 품에서 할머니 방으로 밀려났습니다. 엄마는 새로 태어난 아기를 돌봐야 해서 어쩔 수 없이 할머니에게로 갔는데, 할머니를 독차지하고 있던 오빠가 싫어했습니다. 밤마다 할머니를 가운데 두고 오빠랑 투덕거리는데, 할머니 얼굴이 나를 향하게 하면 오빠는 할머니 얼굴을 자기 쪽을 보게 당겨갔고, 오빠 손이 할머니 배를 넘어오면 내가 뿌리쳤습니다.

할머니께서는 “할머니는 오빠 할머니도 되고 수니 할머니도 된다.”라고 우리를 말렸습니다. “할머니는 한 명인데 어떻게 오빠 할머니도 되고 수니 할머니도 되냐”고 심술을 부리고 억울해서 울었는데, 할머니를 사이에 두고 쟁탈전을 벌이는 일이 꽤 오래 지속되었습니다. 오른쪽은 오빠, 왼쪽은 수니 꺼가 된 할머니는 우리가 잠이 들 때까지 옆으로 돌아눕지도 못했습니다. 할머니 이마에서부터 코를 지나 배까지 중간에 금을 그어 놓고는 서로 넘어가지 않아야 했습니다.

 

엄마를 빼앗긴 불만을 해소하기엔 할머니만 한 사람도 없습니다. 잠들 때까지 할머니 얼굴을 더듬어 입술이나 귀를 만지고 손에 느껴지는 할머니를 느끼며 잠이 들었습니다. 할머니는 손자 손녀가 싸우지 않게 하려고 불편해도 반듯하게 누워서 우리가 잠들 때까지 얘기를 해 주었습니다.

그다음 동생이 태어나고 오빠는 할머니 품을 떠나 독립을 했고, 여동생과 할머니 양옆에서 잤는데 동생이랑 경쟁하기는 시들했는지 아니면 철이 나서 그랬는지 동생이 할머니 빈 젖을 빨고 할머니 품에서 잠이 드는 등 온통 차지하는 것에 그다지 심술을 부리지 않았습니다.

( 아주 어릴 때 일이라 내 기억이라기 보다 할머니께서 나중에 들려주신 이야기일 것 같습니다.)

 

우리 한이와 까꿍이는 할머니에 대한 서비스(!)로 가끔 나에게 와서 잤습니다. “할머니 방에서 잘 사람 손들어”하면 서로 자겠다고 침대에 와서 누웠다가도 정작 잠이 쏟아지면 엄마랑 자겠다며 슬며시 일어나 갑니다. 한이와 까꿍이도 어느 정도 잠자리 독립이 가능하기에 아이들만 둘이 따로 자게 하려고 이층 침대까지 사 주었지만, 이층 침대를 미끄럼틀이 달린 놀이터로 활용할 뿐입니다. 아이들이 제법 덩치가 커서 엄마 아빠 사이에서 네 명이 함께 자기는 불편한데 부모들도 굳이 독립시키려고 노력하지는 않고 데리고 잡니다.

8살 된 한이는 초등학교 입학을 앞두고 있는데 요즘엔 거의 할머니 방에 와서 잡니다. 책을 4~5권을 챙겨들고 와서는 그걸 다 읽고 잠이 듭니다. 책 읽는 재미에 빠진 한이가 여러 권의 책을 읽는 동안 나도 내 책을 읽을 수 있어서 서로 좋은 시간이 됩니다.

 

우리 할머니는 잠자리에서 옛날 얘기를 잘 해주셨습니다.  “세상 달강 서울 길로 가다가 밤을 한 되 얻어서…”이런 노래도 부르셨고, 625가 나던 해 겨울 피난길에 고생한 이야기, 병약한 아버지 한 분 기르시면서 별별 일을 다 겪은 얘기, 외아들을 바람 앞에 등불처럼 어렵게 키웠는데 손주들이 생길 때마다 얼마나 기쁜지……. 중얼중얼 하는 할머니 얘기를 듣다가 잠들곤 했습니다. 그러다 잠 속에서 할머니가 하던 이야기를 이어서 꿈을 꾸기도 합니다. 어떤 이야기도 할머니가 하면 동화처럼 재미있었습니다. 오빠와 나는 그것이 꼭 옛날이야기가 아니어도 좋았고 할머니의 목소리를 들으며 잘 수 있다는 것이 정서적으로 좋은 영향을 주었다고 생각합니다.

우리 할머니는 이런 시간에 이야기를 해 주셨는데 나는 내 책 읽느라 한이 혼자 책을 읽게 둡니다. 한글을 깨우쳐서 굳이 읽어 주지 않아도 되니 편리합니다. 한이는 혼자 책을 보다가 재미있으면 “할머니 이것 보세요. 너무 웃겨요.” 이러며 펼쳐진 책장을 보여줍니다. 그러면 같이 보면서 웃기도 합니다.

할머니랑 손자가 침상 머리에 기대앉아 늦은 밤 책을 읽는 요즘,  새로운 느낌의 행복한 시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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