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튼을 닫고

노인정을 다녀오다가 넘어지셔서 골반 골절로 입원하신 할머니가 계신데 준수하게 생긴 할아버지가 할머니를 극진히 간호하셔서 좋아 보였습니다.

할머니는 골절로 인하여 걷지를 못하실 뿐 손은 불편하지 않아서 숟가락 사용이 가능한데도 할아버지가 식사수발을 합니다. 할아버지는 집에 가서 잠만 주무시고 병원으로 출근하여 하루 종일 할머니 옆을 지킵니다. 밥을 떠먹여주다시피하고 식사가 끝나면 침상에서 양치하라고 양치 컵과 양칫물을 뱉을 그릇까지 식탁 위에 가져다 놓습니다. 화장실도 모시고 두 분이 같이 들어가고 수시로 간식을 챙겨 아기에게 먹이듯 골라 먹여 드리곤 합니다.

아기도 아니고 어른이 침상에서 양치를 하는 모습은 좀 아닙니다. 칫솔에 치약을 묻혀서 이를 닦고 우물우물 패~ 한 양칫물을 대야에 받아 화장실에 가서 버리는 일은 인내심이 필요할 듯합니다. 비위가 약한 나는 그런 광경을 보는 것만으로도 속이 불편해집니다. 휠체어를 타고 화장실로 이동할 수 있는 상황이면 양치도 세면장에서 할 수 있을 것 같은데 꼭 침상에서 양치를 합니다. 그뿐 아니라 할아버지는 할머니가 너무 사랑스러운 듯 환자가 6명이나 있는 병실에서 누가 보는 것도 의식하지 않고 얼굴을 쓸어주고 자주 입을 맞추기도 합니다.

요양병원에서 할머니 할아버지가 남들 보란 듯이 뽀뽀를 하는 것은 정말 드물게 보는 풍경입니다. 거의 여자분들이 오래 사시니까 할아버지는 돌아가셨거나 더 편찮으시거나 해서 면회 오는 할아버지도 많지 않은데 노인 두 분이 뽀뽀하는 광경이라니요? 요즘엔 환한 대낮에 중학생 정도의 아이들도 남의 시선 의식하지 않고 길에서 끌어안고 입을 맞추고 하는 일도 예사라 아무도 뭐라 하지 않는 분위긴데 같은 방에 계신 다른 환자분들은 몹시 싫어하셔서 문제가 되었습니다.

할머니는 80세 할아버지는 82세라고 합니다. 할머니는 검은색 머리가 한 올도 없는 백발이고 동글동글한 이미지입니다. 할아버지는 키가 크고 허리도 꼿꼿한 멋쟁이 신사분입니다. 할아버지는 일단 병실에 오면 코트와 양복저고리를 벗어서 창틀에 걸어놓고 간호하는 틈틈이 영문으로 된 서적을 읽습니다. 시력 때문이긴 하겠지만 창문을 등지고 의자에 반듯하게 앉아서 책을 눈높이에 들고 (책으로 얼굴을 가린 모습을 하고) 계십니다. 영문 소설은 아닌 듯하고 전문 서적 같은데 흘끗 보아서 책 내용을 알 수 없었습니다. 가끔은 머그컵 두 개를 들고 정수기에서 더운물을 받아 가는 모습도 보입니다. 병실에서 노년의 두 내외가 커피를 마시는 모습이 예쁘게 그려져서 혼자 흐뭇한 미소가 지어지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어느 날부터 같은 병실 할머니들의 원성이 자자합니다.

그 할머니 맞은편 침상에 계신 할머니는 98세 신데 기력이 쇠할 뿐 눈도 잘 보이시고 귀도 잘 들리시고 인지가 밝습니다. 남에게 싫은 소리도 안 하시고 경우 밝은 어른인데 직원을 조용히 부르더니 “할아버지가 너무 오래 병실에 계시니 누워있기도 앉아 있기도 화장실 가기도 불편하니 면회시간을 정해서 잠깐씩만 있다가 가게 해 달라.”라는 요청을 했습니다. 요양병원도 정해진 면회시간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그렇게 엄격하게 지켜야 할 일이 없습니다. 보호자들이 자주 면회 오기 어려운 형편이고 면회를 안 와서 걱정이지 온다면 어느 시간이든 병실을 다녀가도 제재를 할 이유가 없기 때문입니다. 우리 직원들은 병실을 드나들 때 두 분을 보면 “참 다정한 노부부구나. 저렇게 부부가 애틋한 정을 가지고 늙어 가면 좋겠다.” 이런 정도로만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알고 봤더니 두 분은 노인정에서 만난 친구 사이였습니다. 할머니는 남편이 돌아가셨고 할아버지는 아내가 돌아가셔서 두 분이 싱글인 상태로 만나 좋아하게 된 경우입니다. 할아버지는 할머니 자녀들에게도 거의 용납이 되신 듯 할머니 자녀들이 면회 오면 알아서 자리를 슬쩍 비켜나가고 자녀들은 할머니를 아주 잠깐만 면회하고 갑니다. 할아버지도 할머니도 배우자가 사망한 경우라 자녀들만 협조를 하면 두 분이 함께 사셔도 문제가 없어 보였습니다.

할아버지는 명절인 설날에도 하루 종일 병실을 지키셨습니다. “설날은 집에 계셔야지 왜 여기 와서 하루 종일 있냐?”라고 옆 침대 할머니가 한마디 하셨나 봅니다. 그랬더니 주인공 할머니가 몹시 화를 내셨다고 하는군요. 남에게 불편을 끼쳤다는 생각은 못 하신 겁니다. 한번 원성이 나오자 그 병실 할머니들이 다 불편 감을 호소했습니다, 할아버지 면회를 제한하라는 요구입니다.

그 할아버진들 왜 눈치가 없으시겠어요? 눈총을 받으면서도 병실에 오는 것은 정이 든 할머니가 보고 싶고 노인정보다는 두 분이 만나기 자유롭고 그래서 일 것 같습니다. 좀 곤란한 이야기라 직원들이 나보고 할아버지께 말씀드리라고 하는데 나는 차마 할아버지 면회를 제한하는 말씀을 못 하겠더라고요. 평소에 까칠한 보호자(다시 말해서 진상 보호자) 상대는 내가 나이 먹었다는 이유로 나에게 미루어지는 경우가 많은데 이런 경우는 처음이라 나도 선뜻 나서서 할아버지를 설득할 맘이 나지 않더라고요. 그래서 기획실장님께 미루고 말았습니다.

그래서 말씀은 전했나 본데 할아버지는 꿋꿋하게 병실을 지키셔서 다른 할머니들을 위해 커튼을 치자고 했습니다. 침상을 커튼으로 완전히 둘러치면 아늑한 공간이 생기잖아요. 다른 할머니들의 원성이 시샘만은 아니고 불편한 건 사실이거든요. 커튼을 닫고 두 분이 끌어안든 뽀뽀를 하든 무슨 상관이 있겠어요? 저도 은근 두 분의 사랑을 응원하는 편에 섰습니다. ^^ 그레이 로맨스……. 80세가 넘어서도 그런 열정이 살아있다는 것이 근사해 보여요.

100세 시대에 어울리는 풍경 아니겠어요? ㅎ

2 Comments

  1. 데레사

    2019-02-11 at 09:25

    처음부터 저는 부부가 아닐거라고 생각했어요.
    우리나라 노부부 스타일이 아니어서요.

    여행지에서도 유난히 다정히 구는 커플을 보면 사람들이 불륜이겠지
    하고 수근거리거든요. ㅎㅎ
    바람직한 풍경일수도 있지만 다른 환자들에게는 미운털이었겠어요.

  2. 윤정연

    2019-02-11 at 10:35

    그건 아니네요…두분이 서로 좋아하는것도 정도가 있어야지요.
    할아버지는 배우신 분 같은데 사랑에 눈이멀었을까요?ㅎ
    나도 영감이 아파서 2주일동안 병원에 입원했다가 나왔지만…
    물론 병원과 요양원은 다르다해도 옆의 분들이 불편하시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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