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원에 대한 오해 혹은 몰랐던 것들을 바로잡는 여행을 다녀왔습니다.
우리글 모임에는 여행전문가가 있어서 그분의 안내를 받으면 매번 최상의 여행이 됩니다. 제가 최상의 여행이라고 말할 수 있는 이유는 여행을 효율적으로 하면서도 감동과 여운이 길게 남는 그런 여행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나라 곳곳을 다니는 분이라 한의사가 맥을 짚듯이 여행의 포인트를 알고 있어서 그분이 주선한 여행은 항상 진한 감동이 남았습니다.
철원은 산모롱이를 돌고 돌아가야 하는 험한 지형일 것이라는 오해를 했었는데 평야가 넓게 펼쳐진 분지였습니다. 남자분들이 군대 이야기를 할 때 빼놓지 않고 하는 이야기가 북쪽을 향해서는 소변도 안 본다고 할 정도로 돌아보기조차 끔찍한 산골 오지로 인식되었는데 평야가 펼쳐진 것은 정말 의외였습니다. 또 한가지 오해는 연천 포천과 가까운 곳이라 철원도 경기도에 속한 줄 알았는데 강원도에 속해 있었습니다.
백마고지 전투가 치열했다는 것은 학교에서 배우기도 했고 여러 사람의 이야기를 통해 들었던 곳인데 막상 눈앞에 펼쳐진 백마고지는 해발 395m밖에 되지 않는 야트막하고 자그마한 산이었습니다. 그러나 철원평야의 주인을 가리는 중요한 곳이 백마 고지기에 한국전쟁 중 가장 치열한 전투가 벌어졌던 곳입니다. 중공군은 1만 명 이상 국군은 3500명이 넘는 사상자를 내고 세계 전쟁사상 유례가 없을 만큼 처절한 전쟁을 치른 끝에 국군이 백마고지를 점령했는데 백마고지를 빼앗긴 김일성이 몹시 애통하여 며칠씩 식음을 전폐했다는 이야기도 있더군요.
비무장 지대를 보러 철원 평야를 가로 질러가는 길가엔 논에서 먹이를 먹는 재두루미들을 볼 수 있었습니다. 때로는 수십 마리가 논 몇 마지기를 점령하여 한가로이 모이를 먹는 모습도 보이고 두 마리 혹은 네 마리가 단출 하게 다니는 것도 보입니다. 두 마리가 다니는 것은 신혼부부이고 네 마리가 있는 것은 아빠 두루미 엄마 두루미 아기 두루미로 일가족이라는 설명을 문화해설사가 해주었습니다. 두루미는 철저하게 일부일처라고 하는군요. 두루미는 시베리아에서 겨울을 나기 위해 온 철새로 학이라고 부르기도 하는데 새가 울 때 두루 두루 한다고 해서 두루미라고 부른다는군요. 우아하게 비상하는 두루미와 먹이를 먹는 재두루미들을 쉽게 볼 수 있었습니다.
철원 안보여행 필수 코스인 노동당사가 파란 하늘을 배경으로 현실감 없이 남아 있었습니다. 마카오를 대표하는 관광지이자 상징으로 꼽힌다는 성 바울 성당처럼 전쟁의 상흔을 고스란히 안고 골조만 남아 있었습니다. 유난히 파란 하늘을 배경으로 하고 있어서 더 생경스러웠을까요? 반공을 철두철미하게 교육받은 세대라서 노동당사라는 말조차 거리낌이 들었습니다.
요즘 들어서 북한과 화해 무드라 안보나 반공이라는 말의 의미가 많이 완화되고 있는 마당에 철원 여행은 좀 엉뚱한 일 같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북한과 첨예하게 대립을 하던 감정은 세월과 함께 조금씩 헐거워졌고 이 정부 들어서는 북한과 친밀감조차 조성되는 마당입니다. 북한이 전쟁을 위해 파 내려왔다는 땅굴이나 백마고지는 반공을 위한 장소가 아니라 그야말로 관광지이고 역사를 기념하는 장소가 되어가고 있었습니다. 사라지는 기억 속에서 우리가 배울 무언가가 아직 남아있다는 것을 상기시키는 상징적인 장소로요.
백마고지역을 출발하여 제2땅굴, 철원 평화 전망대, 월정리 역, 임꺽정 무대 고석정과, 노동당사 백마고지 위령비 등을 둘러보는 빡빡한 일정이었습니다. 해가 뉘엿한 시간의 철원 들판에 두루미들의 비상하는 모습, 김일성이 기초를 놓고 이승만 대통령이 마무리했다는 승일교 교각 아래에서 바라본 한탄강 등은 오래 마음에 남을 것 같습니다.
전시관에는 북한 주민이 피는 담배, 간식거리 같은 것이 유리장 안에 전시되어 있었는데, 그런 것은 박물관에 5000년 전 동물 화석을 보는 느낌이랑 비슷했습니다. 북한 주민이 쓴 엽서는 읽어보려고 시도했으나 오랜 시간 빛에 바래어 내용은 알 수 없었습니다.
데레사
2019-02-13 at 12:58
승일교는 유래가 다양해요.
이승만 김일성의 합작품이라는 말도 있고
다리공사를 한 공병장교 이름이 박승일이라
승일교로 부른다는 말도 있거든요.
어찌되었던 잘 안가는 철원여행을 하셨네요.
철원쌀이 유명한걸 보면 평야가 있을겁니다.
수유리 살 때는 늘 철원쌀을 먹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