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하물의 변명

매스컴에 의하면 고령 운전자의 사고가 많다고 하는군요.

나이가 들면 아무래도 상황 판단이 늦고 감각이 둔화되기 때문에 일어나는 일이라 고령자들은 자진해서 면허를 반납하기도 하고 아내나 자녀 등 주변 사람들에 의해 자동차 운전을 차단당하는 경우도 있다고 합니다. 어떤 할아버지는 도로에서 깜빡 졸다가 큰 사고를 낼 뻔한 후로는 아내분이 자동차 키를 빼앗고 운전을 금하는 바람에 택시에 골프 장비를 싣고 골프를 하러 다닌다고 불평을 한다고 하더군요. 그렇지만 본인을 위해서나 타인을 위해 좋은 선택이라는 생각입니다. 택시비가 아무리 많이 나간들 사람의 생명을 지키는 일이 중요하잖아요. 우리 병원엔 연세가 높은 야간 당직 의사가 있었는데 지하주차장이 비좁고 열악한 관계로 주차 중에 여러 번 사고를 내시더니 주차 문제 때문에 그만 두시더군요.

나는 방향도 잘 모르고 순발력이 현저히 떨어지는 사람인데 만약 운전면허를 운 좋게(!) 땄다고 하더라도 운전은 못했을 것 같습니다. 운전이 무섭다고 하면서도 다들 운전면허를 따서 신분증 대용으로 쓰기도 하고 장롱면허로 썩힌다는 분도 많은데 은근 부럽습니다.

나도 운전면허시험에 두 번이나 만점을 맞은 경험이 있습니다. 실전에 전혀 관계가 없는 필기시험에요. ^^그렇지만 필기시험으로 운전을 할 수는 없으니까 실기 시험을 봐야 하는데 나는 그게 그렇게 어렵더라고요.

30대 초반에 운전면허를 따려고 처음 시도했을 때는 코스 연습 중에 같은 시간대에 운전연습을 하던 어떤 여자분이 사고를 내는 것을 목격했습니다. 코스 연습장 가장자리에 운전 교관들이 잠시 쉬기도 하는 거푸집을 들이 받았던 것입니다. 다행히 그 속에 사람이 없어서 거푸집만 망가졌지만 충격은 내가 받았습니다. 사고 광경을 목격한 후로 무서운 생각이 들어 운전 연습을 포기했습니다.

몇 년 후에 마음을 굳게 먹고 다시 시도했지만 결과는 역시 꽝입니다.

몇 십 년 전에 운전면허를 따려고 시도했을 때는 오토가 아니라 스틱으로 운전연습을 하고 시험을 치렀습니다. 이번엔 운전면허를 꼭 따리라 마음먹고 다섯 번이나 응시하여 실기시험을 봤는데 다 불합격되었습니다. 물론 주행까지도 못 가봤고 시험장 안에서만 그렇습니다.

처음엔 돌발일 때 비상등을 켜고 브레이크를 밟아야 했는데 그걸 놓쳤고 두 번째는 언덕에서 뒤로 밀렸고, 세 번째는 언덕은 어떻게 넘어갔는데 S자 코스에서 금을 밟았고 네 번째는 철길에서 일단 멈춤을 하다가 시동이 꺼졌고 마지막에는 코스를 다 돌아서 시험에 합격했나 생각했는데 운행시간을 초과했다는군요.

그래서 나의 운전면허 도전은 여기서 끝이 났습니다. 나는 운전을 하면 안 되겠구나. 노력해도 안 되는 것이 있구나! 여기가 나의 한계구나 이런 깨달음만…….

운전면허가 없다 보니 버스나 지하철을 주로 타지만 지인들의 차를 얻어 타는 경우도 종종 생깁니다.

얼마 전에도 어떤 분의 차를 탔는데 아마 유턴이 어려운 장소에서 유턴을 하다가 위험한 순간이 있었나 봅니다. 나는 별명이 수하물일 정도로 운전에 관해서는 무감각한 사람이라 그것도 모르고 아무 생각 없이 앉아 있었는데 운전하던 분이 이러더군요.

“조수석에 앉은 사람은 우측에 위험이 없는지를 살펴야 한다.”고요.

운전하는 사람이 우측 백미러로 보기는 하지만 백미러에 안 잡히는 사각지대는 조수석에 앉은 사람이 위험을 감지하고 운전자에게 알리는 것이 조수석에 앉은 사람의 의무라는군요. 그때 몹시 미안하더군요.

그리고 장거리 여행 중에 운전하는 분은 몇 시간씩 운전을 하느라고 고된 노동하는데 아무 할 일 없이 창밖이나 멍하니 보고 있거나 꾸벅거리고 졸다가 깨면 몹시 민망합니다.

나의 소비성향 중에 택시비를 가장 안 아끼고 쓰는데 그건 필요에 의해서이기도 하지만 운전면허를 못 딴 사람의 콤플렉스 일 겁니다. 일산에서 서울을 갈 때도 급하면 택시를 탑니다. 물론 지하철이나 버스를 애용하지만 택시를 못 탈 이유는 없는 것 같습니다. 내가 운전면허가 있어서 차를 소유하고 있다면 자동차 감가상각에 보험료에 유지비에 많은 비용이 소모되지만 대중교통으로 출퇴근하고 서울을 가끔 가도 한 달에 교통비 카드 결제가 5만 원 정도면 됩니다.

운전을 못 배운 나는 천연기념물 같은 존재가 되긴 했지만 어떤 면에선 운전을 못하는 것이 다행이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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