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춘이 지나고 나니 곧 봄이 오려나봅니다.
올해 들어 첫 결혼식에 다녀왔습니다. 식장으로 들어서자 백합화 향기가 진하게 풍겨 나왔습니다. 백합화 향기 속에서 참으로 천생연분이다 싶게 잘 어울리는 한 쌍의 결혼예식이 진행되었습니다. 신부 엄마와 직장동료이기도 하고 이웃에 살고 있기도 하고 이런저런 인연이 깊어 참석한 결혼식입니다. 신부는 웨딩사진작가로 소문난 사람인데 애잔할 정도로 날씬하고 예뻤습니다. 신부에게서 백합화 향기가 풍겨나는 거 같았습니다. 저런 사람이 어떻게 커다란 렌즈가 달린 카메라를 두 대나 어깨에 메고 외국까지 촬영을 다니는지!
나는 남의 결혼식에 가서도 신랑신부가 양가 부모님께 인사드리는 순서에서 늘 가슴이 찡합니다. 신랑이 맨바닥에 넙죽 엎드려 절을 하는 모습이나 신부가 눈물을 참으려고 애쓰는 모습에도 감정이 이입됩니다. 나의 직장동료인 신부 엄마는 식장 입구에서 씩씩하게 하객을 맞았고 방글거리며 촛불을 점화하는 등 딸을 결혼시키는 신부 엄마의 섭섭함은 보이지 않았습니다. 신랑신부가 친정 부모님께 먼저 인사를 드리는데 신부가 아버지 품에 오래 안겨 있었습니다. 평소에 아버지가 딸을 무척 사랑하고 부녀관계가 좋다는 말을 들었기에 아버지가 울지 않는 것이 다행이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신부댁 반대편으로 건너간 신랑 신부가 부모님께 인사를 하고 났는데, 시어머니가 울어서 신랑이 어머니께 다가가 눈물을 닦아 줍니다. 옆에 앉은 직장동료 한 분이 따라서 눈물을 떨굽니다. “친정엄마는 안 우는데 왜 시어머니가 울지?” 이런 말을 하면서요. 같은 테이블에 앉은 여자분들이 시어머니 우는 모습에 다들 눈시울이 뜨거워졌습니다. 요즘엔 누가 친정어머니인지 시어머니인지 구별이 잘 안된다고 우스갯소리처럼 말하기도 했습니다. 요즘은 친정아버지가 운대. 그런데 이 집은 시어머니가 우네, 이런 말도 하고 딸 둘을 이미 오래전에 결혼시킨 것을 아니까 나보고 울었냐고 묻기도 했습니다. 나는 “울기는? 딸 결혼시키니 시원하던데?”라고 말하며 웃었습니다.
결혼식이 끝나고 바로 돌아서서 광화문으로 이동하면 친구 모임에 늦지 않겠다고 생각했는데 오랜만에 만난 지인들과 헤어지기 아쉬워서 식당으로 자리를 옮겨 이야기가 길어졌습니다. 친구들 모임에는 늦겠다고, 나는 밥 먹고 가니까 먼저 식사를 하라고 총무에게 연락을 했습니다.
친구들 모임에 도착해 보니 스페인 식당에서 식사가 거의 끝나가고 있었습니다. 친구들이 조금만 먹어보라고 권하는데 결혼식 피로연에서 이미 먹어서 생각이 없기에 냉수만 청해 먹었습니다.
하몽이 너무 짜다, 원래 스페인 음식이 짜더라, 오징어 먹물 요리가 먹을 만하다, 이건 어떻게 만드냐?……. 이런 이야기를 주고받기도 하고 건강이 좋지 않은 친구가 추위를 피해 태국 치앙마이에서 한 달 살기를 하고 왔는데 따뜻하고 공기가 좋아서 지낼 만하더라고, 다음엔 우리 친구들과 같이 가자고 목소리 톤을 높여 이야기 했습니다.
한 친구가 나에게 누구 결혼식에 다녀왔냐고 물어서 같은 직장 동료분이 사위를 봤다고 했더니 한 친구가 나를 쳐다보며 “우리 아들은 어쩌니? 장가를 보내야 하는데?” 근심스러운 어조로 말합니다. 전에 같으면 그냥 흘러들었을 건데 결혼식을 다녀온 길이라 그런지 갑자기 중매를 부탁받은 숙녀가 생각났습니다. 내 친구 아들이 37살이고 직장도 좋은데 결혼이 늦어진다고 걱정하는 소리를 여러번 하긴 했는데, 친한 친구 사이에 중매를 했다가 잘 살면 좋지만 여러 가지 위험부담도 따르는 일이라 사람을 소개하는 일은 어렵기도 해서 평소엔 신경도 안 썼습니다.
말이 나온 김에 친구를 내 옆자리로 옮겨 오라고 해놓고 신붓감 어머니께 전화를 걸었습니다. 내 친구 아들인데 37살이고 직장은 수원이고 이러이러하다 했더니 그분이 무조건 보겠다고 만나 보기도 전에 고맙다고 감사하다고 여러 번 인사를 했습니다. 신붓감 엄마가 딸의 인연이 나타나기를 애타게 고대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배울 만큼 배우고, 아니 넘치도록 배우고 사회경험도 충분히 쌓다 보니 공부를 많이 한 똑똑한 숙녀들의 결혼이 늦어져서 일어나는 현상입니다.
신붓감 사진을 받아서 친구에게 보내 아들에게 전하라고 하고 나는 친구 아들의 사진을 받아 신붓감 어머니께 카톡으로 보냈습니다. 그리고 신랑 신부 전화번호를 알려주었습니다. 어른 들이 낄 것도 없이 당사자끼리 약속해서 만나라고요. 친구 아들은 다음날이 일요일이니 만나보겠다고 합니다. 직장은 수원이고 집은 상계동이라 주말에만 집에 오는데 마침 시간을 낼 수 있다고 합니다. 평소 결혼에 대해 별 관심 없었던 태도와 달리 친구 아들이 반색을 하는 느낌이 전해졌습니다.
갑자기 나온 이야긴데도 급진전을 보여서 나도 놀랐습니다. 어찌 되었든 좋은 짝으로 맺어졌으면 좋겠습니다.
데레사
2019-02-19 at 08:28
나도 그 둘이 짝이 되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합니다.
잘 살고 못 살고는 살아봐야 아는건데 요즘 아이들은 결혼을
안할려고들 하니 탈이지요.
부디 순이님 중매가 성사되어 중매턱도 잘 얻어드시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