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해도는 워낙 눈이 많은 지역이라 눈을 보러 가겠다고는 했지만 눈길이 무서운 것은 사실이었습니다. 가이드가 아이젠을 가지고 가면 좋겠다는 안내 메시지도 있고 해서 아이젠을 하나 사야겠다고 생각하고는 미루다가 공항에 가서야 생각났습니다. 동생에게 아이젠을 안 가지고 왔다고 했더니“괜찮아 언니 내가 가지고 왔으니까 한쪽에 하나씩 하고 다니지 뭐” 이러는군요. 그러자고 하고 아이젠 없이 갔습니다. 여행 내내 사방에 눈은 지천이었지만 펑펑 쏟아지는 눈은 볼 수 없는 날들이었고 발 밑은 늘 미끄럽고 조심스러웠습니다.
여행 3일째 되는 날 닝구르 테라스라는 곳에 갔습니다. 닝구르는 홋카이도에 살고 있다는 전설 속의 작은 요정이랍니다. 닝구르 테라스는 닝구르 서식지 주변에 조성된 통나무로 지어진 쇼핑센터 중 한 곳입니다. 조붓한 눈길을 다니며 쇼핑을 할 수 있는 곳입니다. 차에서 내리면서 동생이 “언니 아이젠 하자.”라면서 아이젠을 한쪽씩 신자고 하는데 나는 여행을 위해 새로 산 털 부츠였고 동생은 신발 바닥이 낡아 보여 수평이 맞게 두 개를 다 신으라고 했습니다. 동생은 아이젠을 신고 내 팔을 꼭 끼고 다녔지만 우리는 여러 번 미끄러질 뻔했습니다.
가이드는 50대 초반의 여자분으로 여행사 가이드로 오래 근무한 분이고 수시로 자기 성질 못된 것을 자랑하면서 멘트를 하곤 했고 외모도 성깔이 배어 나오는 사람이라 인정이 통하지는 않았습니다. 냉정하고 원칙을 고집하는 것을 말릴 수는 없는 일이고 어쩌면 그러는 것이 옳을 수도 있으니까요. 인정 많은 동생은 어떡하든 다친 사람을 도와주려고 다시 한 번 시도했지만 가이드에 의해 차단되었습니다. 다친 분은 저녁에 병원에 가서 엑스레이를 찍었더니 골절되었다며 깁스를 하고 왔더군요.
저는 스페인 여행을 갔다가 몬세라트 수도원에서 한 눈 팔다가 도로 턱에 걸려서 넘어졌는데 어깨뼈에 금이 가는 사고를 당한 적이 있습니다. 아픈 것은 참을 만 한데 일행에게 몹시 창피했습니다. 특히 귀국하는 날 공항에 사위랑 딸 손자들이 마중을 나왔는데 스카프로 부목을 만들어 팔을 을러메고 오려니 어찌나 민망한지……. 그길로 응급실로 가서 골절 진단을 받았습니다. 다음 날부터 출근을 하는데 또 병원 식구들에게 창피하고 미안하고, 놀러 갔다가 다치는 것은 왠지 부주의한 느낌이 들어 괴롭더군요. 한동안 팔을 잘 사용하지 못해서 고생을 한 적이 있습니다.
사고는 순식간에 일어나지만 수습은 늘 지난한 과정을 거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