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중 일어나는 사고

북해도는 워낙 눈이 많은 지역이라 눈을 보러 가겠다고는 했지만 눈길이 무서운 것은 사실이었습니다. 가이드가 아이젠을 가지고 가면 좋겠다는 안내 메시지도 있고 해서 아이젠을 하나 사야겠다고 생각하고는 미루다가 공항에 가서야 생각났습니다. 동생에게 아이젠을 안 가지고 왔다고 했더니“괜찮아 언니 내가 가지고 왔으니까 한쪽에 하나씩 하고 다니지 뭐” 이러는군요. 그러자고 하고 아이젠 없이 갔습니다. 여행 내내 사방에 눈은 지천이었지만 펑펑 쏟아지는 눈은 볼 수 없는 날들이었고 발 밑은 늘 미끄럽고 조심스러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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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3일째 되는 날 닝구르 테라스라는 곳에 갔습니다. 닝구르는 홋카이도에 살고 있다는 전설 속의 작은 요정이랍니다. 닝구르 테라스는 닝구르 서식지 주변에 조성된 통나무로 지어진 쇼핑센터 중 한 곳입니다. 조붓한 눈길을 다니며 쇼핑을 할 수 있는 곳입니다. 차에서 내리면서 동생이 “언니 아이젠 하자.”라면서 아이젠을 한쪽씩 신자고 하는데 나는 여행을 위해 새로 산 털 부츠였고 동생은 신발 바닥이 낡아 보여 수평이 맞게 두 개를 다 신으라고 했습니다. 동생은 아이젠을 신고 내 팔을 꼭 끼고 다녔지만 우리는 여러 번 미끄러질 뻔했습니다.

 닝구르 테라스를 돌아 차에 왔더니 한 분이 중학생 아들에게 의지해서 깨끔 발로 깡충거리며 옵니다. 다친 것이 분명해 보였습니다. 왜 그러신가 물어봤더니 눈길에 미끄러져서 발목을 접질린 것 같다고 했습니다. 금세 발목이 부어오르고 아프다고 했고 다음 여행지에선 버스에서 내리지 못했습니다. 마침 예비로 가지고 간 타이레놀이 있어서 주고, 비닐봉지에 눈이라도 담아서 아이스 백을 해 주었으면 해서 가이드에게 그렇게 하면 어떻겠냐고 했더니 “저녁에 시내로 들어가면 병원에 가서 진료를 받겠다.”라며 다친 분에게 아무 조치를 취하지 못하게 했습니다. “무슨 약인 줄도 모르는데 함부로 먹일 수도 없고 어설픈 응급조치는 사태를 더 악화시킬 수 있다.”라는 단호한 가이드의 태도에 밀려 머쓱해져서 그냥 둘 수밖에 없었습니다. 약 겉면에 타이레놀이라는 영문이 쓰여 있고 아이스 백이 붓기를 덜하게 한다고 애써 설명하면서까지 어떻게 하기는 어려운 분위기였습니다.

가이드는 50대 초반의 여자분으로 여행사 가이드로 오래 근무한 분이고 수시로 자기 성질 못된 것을 자랑하면서 멘트를 하곤 했고 외모도 성깔이 배어 나오는 사람이라 인정이 통하지는 않았습니다. 냉정하고 원칙을 고집하는 것을 말릴 수는 없는 일이고 어쩌면 그러는 것이 옳을 수도 있으니까요. 인정 많은 동생은 어떡하든 다친 사람을 도와주려고 다시 한 번 시도했지만 가이드에 의해 차단되었습니다. 다친 분은 저녁에 병원에 가서 엑스레이를 찍었더니 골절되었다며 깁스를 하고 왔더군요.

 가이드는 오전에 버스에 타자마자 다른 팀의 사고 소식을 전했었습니다.하나투어에서 코스를 달리하는 여러 개 팀이 같은 비행기를 탔었는데 어떤 팀에서 사망사고가 있었다는 겁니다. 부모님 칠순 여행을 모시고 온 어떤 남자분이 호텔 방 목욕탕에서 심장마비로 별세했다고 합니다. 북해도는 날이 일찍 어둡고 일정이 느슨한 여행이라 오후 5시 정도면 호텔로 데라다 주어서 개인별로 도시에 야간투어를 나가기도 하고 맛 집을 찾아가기도 하고 술을 마시러 나가기도 합니다. 돌아가신 분은 칠순 여행을 온 부모님과 다른 가족이 쇼핑을 나가는데 본인은 쉬고 싶다면 호텔에 혼자 남아 있다가 목욕탕에서 앉은 채로 숨져 있는 상태에서 발견되었다고 합니다. 그 이야기를 듣고 돌아가신 분도 안타깝지만 자녀와 효도여행을 갔다가 자식을 잃은 그 부모님 마음이 어땠을까 해서 걱정이 많이 되었습니다.

저는 스페인 여행을 갔다가 몬세라트 수도원에서 한 눈 팔다가 도로 턱에 걸려서 넘어졌는데 어깨뼈에 금이 가는 사고를 당한 적이 있습니다. 아픈 것은 참을 만 한데 일행에게 몹시 창피했습니다. 특히 귀국하는 날 공항에 사위랑 딸 손자들이 마중을 나왔는데 스카프로 부목을 만들어 팔을 을러메고 오려니 어찌나 민망한지……. 그길로 응급실로 가서 골절 진단을 받았습니다. 다음 날부터 출근을 하는데 또 병원 식구들에게 창피하고 미안하고, 놀러 갔다가 다치는 것은 왠지 부주의한 느낌이 들어 괴롭더군요. 한동안 팔을 잘 사용하지 못해서 고생을 한 적이 있습니다.

사고는 순식간에 일어나지만 수습은 늘 지난한 과정을 거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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