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왜 이렇게 오래…….

 

“내가 왜 이렇게 오래 살아서…….”

라는 말을 어머니께 듣는 것은 수하 된 도리로 몹시 괴롭고 민망한 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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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생 둘이 어머니 앞에 먼저 가서 어머니는 괴로워하셨는데 이제 막내며느리 병환 소식을 들으시고 낙담을 하십니다.

남동생이 사고를 당했을 때는 중환자실에 있는 아들을 지키느라(?) 일주일 내내 식사도 거르고 밤낮을 의자에 앉아 지내시다 면회를 하곤 했는데 그때는 어머니 먼저 돌아가시는 줄 알았습니다. 그러던 어머니께서 동생이 회복하지 못하고 가자 “장례나 잘 치러 주어라.” 우리에게 부탁하시고 집에 돌아와 머리를 감아 빗고 의연하게 견디셨습니다. 어머니께서 괴로워하면 다른 자녀들이 신경 쓸까 봐 애써 감정을 참고 포기하시더군요.

여동생이 백혈병으로 투병을 할 때는 그런 정신력이 쇠퇴하여 인지저하가 오더니 엉뚱한 말씀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연세가 80대 중반이니 치매가 와도 당연한 일이지만 충격에 의한 정신의 방어 기전으로 일어나는 일로 보였습니다. 아픈 딸의 고통을 지켜보기 힘드니까. 본인이 더 아프다고 하면서 같은 말을 한 시간에도 수십 번씩 반복하곤 했습니다.

시간이 많이 지나 충격이 완화되면서 연세에 비해 건강하게 일상을 유지하고 계셨는데 또 커다란 충격에 빠지신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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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는 나쁜 모든 일들이 당신이 오래 살아서 그런다는 죄의식을 가집니다.

어머니 어릴 때 점쟁이가 수명이 짧다고 해서 학교도 못 가게 했는데 내가 왜 이렇게 오래 사는지 모르겠다고 한숨을 쉽니다. 우리 아버지가 일찍 돌아가시면서 “내 수명까지 이어 오래 살면서 자식들 뒷바라지 잘 하다가 오라.”라고 어머니께 유언을 하셨다는데 그래서 오래 사는지 모르겠다는 원망도 하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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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라버니도 70을 바라보는 나이인데 어머니께는 더 없는 효자입니다.

어머니가 괴로워하는 것을 보기가 딱해서 모시고 봄나들이를 나갔답니다. 평소에는 오라버니께서 어머니 사진을 자주 찍어 올려서 그 사진들을 보면서 즐거워했는데 올해의 봄나들이 모자 사진은 마음이 짠합니다. 머리가 허연 아들이 노모를 모시고 나가는 봄나들이가 행복해 보이지는 않는 것은 내 마음 때문이겠지요. 어머니는 꽃 피는 봄날인데 마음이 추워서인지 두꺼운 겨울 코트를 입고 봄꽃 구경을 나가셨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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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럴 때 참으로 민망한 것은 어머니의 괴로움을 덜어드릴 말이 없다는 것입니다.

어른들이 오래 사는 것은 좋은데 이런 무참한 일들을 봐야 한다는 것 때문에 장수가 축복만은 아닌 듯합니다.

 

 

 

 

 

 

 

 

 

 

1 Comment

  1. 데레사

    2019-03-27 at 17:02

    대개 장수하시는 분들이 자식을 앞세우는 일이 많더군요.
    요즘이사 아이들이 적으니까 좀 드물지만 옛날에는 아이들이
    많으니까 더 그런 처참한 일을 겪게 되고, 그렇게 되면
    내가 오래 살아서 그렇다라는 자조에 빠지고 그러지요.
    동네의 연세드신 분들을 만나도 그 이야기를 많이 합니다.

    그래도 어머님 오래 사셔야죠.
    삶이 축복인데, 훌훌 털어버리고 건강만 챙기셨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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