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머니 저는 2400만 원이에요.”
“할머니는 800만 원이네.”
“그럼 내가 이겼네요. 야호!”
“한이가 할머니 3배로 이겼구나. 할머니는 만날 지기만 해서 타워 마블 하기 싫다.”
일부러 삐진 척을 하면 다시 하자고 하고 그래서 다시 판이 벌어지면 할머니가 유리하도록
한이가 슬쩍슬쩍 조언도 합니다.
“할머니 저 땅을 사면 좋아요. 저 땅이 비싸거든요.”
이러며 놀다 보면 시간이 너무 금방 지나서 잠자리에 들 시간입니다.
그만 자자고 하면 한이가
“한 시간이 왜 이렇게 짧아요?” 하면서 아쉬운 눈길로 시계를 쳐다봅니다.
그러고도 다음날 아침이 되면 한이는 눈 뜨자마자 기다란 실을 들고 방문을 열고 들어와 나를 깨웁니다.
“할머니 실뜨기해요.”
한이의 청을 거절하지 못하고 졸린 눈을 비비며 일어나 손자와 침대 위에 마주 앉아 실뜨기를 합니다. 어릴 때 동생들과 해 봤던 일이라 어렵지 않게 할 수는 있는데, 이게 새벽부터 할 일인가? 혼자 웃습니다. 요즘엔 아침저녁으로 실뜨기에 매진합니다. ^^
한이는 어떤 놀이에 하나 꽂히면 그게 익숙할 때까지 할머니를 연습 상대로 삼습니다. 실뜨기는 상대방이 양손에 실을 감고 있으면 손가락을 펼쳐서 X자를 찾아 아래서 위로, 위에서 아래로 찾아서 뜨는 놀이입니다. 하다 보면 숨은 X가 나오기도 하는데 그걸 잘 살리는 것이 관건입니다. 어찌하다 보면 손가락에 걸리는 것이 없이 쭈르륵 실이 풀리기도 하는데 한이는 그게 그렇게 재미있나 봅니다. 가로뜨기에서 새로 뜨기를 시도해 보고 밑에서 위로 올라오거나 방향을 바꿔서 위에서 아래로 내려뜨기도 하는데 비교적 간단한 손놀림이라 8살 아이에겐 그게 무척 재미있나 봅니다. 한이의 실뜨기 탐구가 끝날 때까지 게임 파트너가 되어야 합니다.
실뜨기에 병행해서 요즘 즐겨 하는 게임은 타워 마블입니다.
타워 마블은 블루마블 계열의 게임인데 땅을 사고팔고 건물을 짓고 통행세를 받고 유가 폭락도 경험하고 월급도 받는 등 부동산 개념의 게임입니다. 만 원, 오만 원, 십만 원, 오십만 원, 백만 원을 몇 장씩 기본으로 들고 시작하는데 28만 원짜리 도시를 사고 50만 원을 내면 얼마를 거슬러 받아야 하는지 등을 빨리 계산해야 하기 때문에 큰 숫자를 익히고 더하기 빼기를 하는데 유리합니다. 게임이 끝날 때 보면 나는 몇 백만 원밖에 못 땄는데 한이는 이천만 원을 넘게 땄다고 좋아합니다. 한이 아빠도 퇴근해 집에 오면 한이랑 한게임 놀아줘야 합니다.
그 외에 스머프 게임이 있는데 주사위를 굴려 나온 숫자만큼 말판을 세어 앞으로 나가는 데 어떤 곳에 걸리면 뒤로 미끄러지고 어떤 칸에 가면 7~8개를 건너뛰어 앞으로 나갈 수도 있습니다. 이 게임은 주로 까꿍이와 합니다.
한이가 가장 집중하는 게임은 슈퍼마리오입니다.
게임기로 하는 게임으로 한번 시작하면 한 시간 이상 붙들고 있어서 게임중독이 걱정될 정도입니다. 한이 고모가 조카 생일에 기십만 원을 주고 게임기를 사서 선물로 주었습니다. 선물을 받고 나니 요즘 아이들이 인터넷 게임 때문에 문제가 많은데 게임기까지 사 주면서 게임을 시킬 일인가 해서 걱정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남자아이들이 인터넷 게임의 폐해에서 비켜가지는 못할 듯하고 어차피 할 거면 제대로 하자 싶어서 유튜브에서 앞서 슈퍼마리오 게임을 끝낸 사람들이 올려놓은 마리오 행로를 미리 봐 가면서 게임을 하니까 목적지에 도달하기 쉽기도 하고 게임을 하는 시간이 좀 단축되는 듯도 합니다.
한이랑 무슨 딜을 할 때도 슈퍼마리오 게임은 유용합니다.
“오늘 할 바이올린 숙제를 마치면 슈퍼마리오를 30분 할 수 있게 해 준다.”거나
“독서를 30분 하면 게임도 30분 허락”하거나 하는 한이 엄마의 조건이 걸립니다.
아이를 움직이는 대는 슈퍼마리오만 한 것도 없습니다.
놀이의 중요성을 깨달은 장면은 바로 이겁니다.
우리 병원에 입원해계신 인지저하가 있는 92세 할머니께서 화투를 가지고 혼자서 얼마나 잘 노시는지 모릅니다. 12장의 화투를 4줄로 죽 늘어놓고 한 장씩 뒤집을 때의 표정은 진지하고 엄숙합니다. 화투놀이에 집중하는 모습에서 위엄과 아무도 범접치 못할 품위조차 느껴지는 것은 나만의 느낌일 수는 있습니다. 아무 말씀 없이 두어 시간 화투 패에 집중하시다 피곤하면 주무시고 쓸데없는 말씀을 하지 않으십니다.
이분이 화투를 펼쳐놓고 하는 모습은 젊은 사람이 독서하는 장면보다 의미 있어 보여서 나도 기회가 되면 화투를 배워두어야겠다는 결심까지 했습니다. 내가 어릴 때는 딱히 금한 것 같지는 않은데 집안 분위기상 화투를 하지 못해서 화투 짝 맞추는 것부터 해야 합니다.
만약 내가 오래 살게 되어 인지저하가 오더라도 혼자 즐길 수 있는 놀이가 있으면 좋을 것 같아서입니다.
나같은 맹탕을 만들지 않기 위해서 손자가 놀이나 게임에 맛을 들이는 것에 적극 협조하는 할머니입니다. ^^
데레사
2019-04-15 at 18:05
뭐든 열중할 수 있는 자기놀이가 있으면 좋은겁니다.
화투 오래 만지면 허리 아플텐데 괜찮으신가 봐요.
더 나빠지지 말고 건강하시기를 바래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