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머니 한 분이 새벽에 깨어 화장을 합니다.
매일 오전 7시에 무지개 홀에 모여서 아침체조를 하는데 그 시간에 예쁘게 하고 할아버지를 만나고 싶어서입니다. 뇌졸중 후유증인 편마비로 왼쪽 몸을 못 쓰고 비대한 몸을 오른팔 오른 다리에만 의지해서 생활 하느라 뭘 하려면 남들 보다 서너 배 시간을 들여야 합니다. 힘없이 늘어져 있는 왼쪽 팔을 오른팔로 들어서 배 위에 가지런히 놓아야 하고 왼쪽 발을 오른손으로 들어서 침대 아래로 내려놓아야 움직임이 가능하기 때문에 침대에서 내려오는 일도 힘겹습니다. 왼쪽 팔과 다리를 오른손으로 단속을 해가면 움직이려니 시간이 많이 걸려서 오전 3시나 4시쯤 잠이 깨는 즉시 씻고 화장을 하려고 하는데 같은 방식구들은 너무 일찍 일어나 부스럭대는 할머니 때문에 아침잠을 설치게 됩니다.
낮에는 간병인이 도와주지만 새벽부터 움직이면 간병인도 쉬어야 해서 도와줄 수가 없습니다. 달게 자는 간병인이나 방 식구들에게 폐를 끼치지 않으려고 노력은 하지만 신체 움직임이 부자유해서 어쩔 수 없습니다. 새벽에 세수를 하려고 침대에서 내려오기 위해 부스럭 거렸더니 간병인이 잠에서 깨어 “제발 좀 더 누워계시라고” 짜증을 냅니다. 평소에는 착한 간병인이지만 잠자는 시간이 방해받으니 짜증을 냅니다. 이른 시간이라 도와 달라고 하지 못하고 힘들게 혼자 하는데 그런다고 할머니는 할머니대로 화를 냅니다.
할머니는 한 번 잠에서 깬 이상 잠이 더 오지 않습니다. 한참을 버둥거리며 힘들게 침상에서 내려와 곁에 두었던 휠체어를 타고 화장실로 갑니다. 한 손으로 세수를 하자니 다른 할머니가 깨어 소리를 지릅니다. 그 소리에 다른 환자들도 다 깨어나 한바탕 소란이 일어납니다. 간병인이 휠체어를 화장실에서 꺼내 할머니를 침대로 옮겨드리면서 사정을 합니다.
“할머니 지금 새벽 세십니다. 새벽마다 깨어 이러시면 다른 분들이 잠을 못 주무시는데 아침까지 누워계세요. 저도 자야 낮에 일을 하지요. 아침 체조 갈 시간은 아직 멀었어요.“ “그래서 내가 물도 살살 틀고 조용히 다니는데 ……” “어머니는 살살한다고 하지만 화장실 문 여닫는 소리, 휠체어 부딪치는 소리 수돗물 트는 소리에 다른 분들이 다 깨었잖아요. 하루 이틀도 아니고 매일 정말 힘들어요.“ “조용히 다닐게 걱정하지 말고 더 자요.” “어머니 그러다 낙상이라도 하면 다 내 책임입니다. 저도 못하겠어요. 잠도 못 자고 너무 힘들어서 중국으로 가야겠어요. “ “…….”
할머니는 아랑곳하지 않고 희미한 취침 등 아래서 더듬다시피 하여 얼굴에 로션을 바르고 크림을 바릅니다. 거울을 볼 수 없어서 화장을 못하겠기에 자리에 누웠지만 잠이 안 옵니다. 빨리 아침체조시간이 되어 할아버지 옆에 가서 함께 하고 싶은 생각밖에 없습니다. 밤은 왜 그렇게 길고, 밤에 꼭 자야 하는 것도 원망스럽습니다.
잠이 오지않는 긴 밤을 보내고 아침밥을 먹은 후 앞 침대의 할머니에게 눈총을 받아 가며 화장을 합니다. 화장이라야 파운데이션을 얼굴에 바르고 입술을 빨갛게 바르는 정도인데 앞에 할머니는 무슨 술집 여자를 보듯 눈살을 찌푸리며 입을 삐죽거리기도 하고 노골적으로 눈을 흘깁니다. 심지어 들릴 듯 말 듯 욕도 합니다.
“늙어서 미쳤지, 나이 들어 곱게 살아야지 무슨 꼴이야. ㅉㅉㅉ”
앞 침상의 할머니는 종일 식탁에 성경 책을 펴 놓고 고상한 모습을 보이지만 성경 책을 읽는 것 같지는 않습니다. 어느 땐 휠체어를 타고 방을 나가는 할머니 등에 대고 “미친 할망구”라고 욕을 합니다. 그렇다고 할머니의 행차를 막을 수는 없습니다.
할머니가 좋아하는 할아버지는 노환으로 몸이 아프긴 하지만 워커를 잡고 움직일 수 있고 인지 기능이 비교적 좋은 분입니다. 90세가 넘었지만 워낙 골격이 크고 훤칠한 모습이라 어디서도 눈에 띕니다. 할머니도 살아 계시고 자녀들도 다 효자들이라 주말마다 가족들이 면회를 빠짐없이 오는 유복한 할아버지입니다. 젊어서도 인기가 많은 삶을 살아오셔서 그런지 요양병원 할머니들에게 인기 있는 것을 별로 대수롭지 않게 여깁니다. 아니 귀찮아합니다. 할머니들이 경쟁적으로 간식을 가지고 병실에 찾아오는 것이 달갑지 않고 시큰둥해 보입니다.
새벽부터 욕을 먹어가며 꽃단장하는 할머니는 할아버지를 짝사랑하는 중입니다. 특별히 할 일이 없는 요양병원에서 하루 종일 할아버지 주변에서 맴도는 것으로 소일합니다. 할아버지가 휴게실에 계시면 한쪽 손과 발로 휠체어 바퀴를 움직여 다가갑니다. 강당에 모여 하는 프로그램에 참여할 때면 할아버지 옆자리를 차지하려고 불편한 몸으로 휠체어로 기어이 비집고 들어갑니다. 다른 할머니들의 미움을 받는 것을 모르는 것은 아니지만 할아버지 옆에 다른 할머니가 있는 것을 두고 볼 수는 없습니다.
그러던 할머니는 요즘 병이 났습니다. 오래 할아버지 곁을 맴돌았지만 할아버지가 아는 척을 하지 않고 다른 할머니와 얘기 나누는 모습이 자주 목격되어 속이 상했습니다. 할아버지가 혼자 있을 때 할머니가 다가가 다짜고짜로 “내가 싫으냐?”라고 물었더니 할아버지가 “언제 내가 당신을 좋아했느냐?”라고 쌀쌀맞게 말하면서 귀찮게 하지 말라고 하더랍니다. 할아버지 주위를 맴돌던 할머니가 무참해졌습니다. 할아버지를 짝사랑한 것이 3개월도 더 되었는데 끝내 알아주지 않고 내치니까 할머니는 배도 아프고 소화도 안 되고 머리가 아프다며 끙끙 앓습니다. 할머니는 병동 프로그램에 참석하는 것도 휴게실에 놀러 가는 것도 새벽 화장하는 것도 다 접었습니다. 할머니는 주위 사람에게 “내가 아프다고 할아버지에게 전해 달라”라고 해 보지만 주변에 미움만 잔뜩 샀던 터라 아무도 사랑의 메신저로 나서질 않습니다.
할아버지가 퇴원하자 할머니의 짝사랑은 주책없다고 욕만 먹다가 끝이 났습니다. 새벽부터 일어나 화장을 하고 설렘으로 아침을 기다리던 그 활력이 사라진 할머니가 가엾어 보입니다.
데레사
2019-05-14 at 18:43
그런 일도 있군요.
하기사 나이들었다고 감정이 없을수는 없지만 안타깝기도 하고
어처구니 없기도 해요.
더 늙어서 어떤모습의 나로 변할지 걱정스럽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