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후 라운딩을 위해 병실에 갔더니 어떤 할머니가 식탁을 펴 놓고 뭔가를 쓰고 계셨습니다. 거의 모든 환자분들이 연세가 높고 건강이 좋지 않아서 펜을 들어 쓰는 모습은 병원에서는 보기 귀한 풍경입니다.칼라 사인펜으로 스프링 노트에 한 글자 한 글자 정성 들여 쓰는 모습이 너무 진지해 옆에 서서 한참을 보고 있었습니다. 청력 저하가 있기도 하지만 옆에 누가 다가가도 잘 모를 정도로 쓰는 일에 마음을 쏟고 계시더군요. 할머니가 심심해하시니 자녀분이 노트와 사인펜을 마련해 주면서 여기다 일기를 쓰세요 그러셨나 봅니다. 날짜와 요일을 쓰시고 오늘은…. 이렇게 시작을 합니다.
6월 18일 화요일
물리치료 받았다. 큰아들 며느리가 왔다 갔다. 오늘 첨 글씨를 써봤다. 매실 따야겠다. 마늘도 캐야겠다. 마늘을 말려야 하겠다.
6월 21일 금요일
오늘 치료받고 왔다 . 옆집이 떡을 줘 먹었다. 오늘도 치료받고 왔다.
6월 22일 토요일
오늘은 치료가 비는 날이다. 손님이 많이 왔다 갔다. 재미있었다.
6월 23일
교회 갔다 왔다. 밖에 갔다 왔다. 나가서 바람 씌고 왔다. 배가 고파 점심 먹었다. 아들 왔다 갔다 커피 사주고 갔다.
6월 24일
치료받고 왔다. 일기 썼다
내가 본 장면은 24일 일기를 쓰고 계시던 때였습니다. 두 줄을 쓰시는데도 몇 십 분이 걸릴 정도로 힘들어하시지만 그 모습이 무척 아름답게 보였습니다. 다 쓰시고는 무척 뿌듯해하셨습니다.
병원 입원 생활이란 잠자고 하루 세끼 식사하고 치료받고 하는 게 전부입니다. 할머니가 치료받고 왔다고 하시는 것은 물리치료를 받으시는 것을 말합니다. 물리치료를 받으러 가는 일이 아주 큰 행차입니다. 허리를 다쳐 혼자서는 침대를 내려오지 못하는 분입니다. 간병인의 도움으로 휠체어에 옮겨 타고 물리치료를 받고 병실로 돌아오는데 한 시간이 넘게 걸립니다.
어느 날은 아들 며느리가 다녀가고 어느 날은 옆에 환자를 방문한 보호자가 떡을 사다가 돌리기도 하고 아들이 밀어주는 휠체어를 타고 바깥바람을 씌고 들어오고 커피를 한잔 마시는 그런 사소한 일이 큰 이슈입니다.
입원해 계시면서도 생각으로 매실을 따고 마늘을 캐고, 캔 마늘을 말리기도 합니다.
데레사
2019-06-26 at 20:37
오래간만입니다.
바쁘셨어요?
생각으로라도 매실따고 마늘캐고 마늘 말리면서 할머니는 행복했을것
같아요. 나이들면 사소한 일에도 서럽지만 또 사소한 일에서도
행복을 느끼니까요.
저 할머니 내내 이 건강이나마 유지되었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