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수~ 태풍 속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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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들과 여행계획을 잡으려면 약속이 쉽지 않습니다.

각자의 개인사를 이리저리 피해서 미루고 미루다 약속 날짜를 잡은 것이 지난 주말이었습니다. 봄에 친구들과 계획을 세울 때 7월 20일은 휴가철과 맞물려 고속도로가 복잡하고 너무 더울 것은 예상했지만 태풍은 정말 의외의 변수였습니다.  토요일 출발을 앞두고 하루 전까지 여행사에 연락을 해 봤는데 태풍이 상륙한다는 여수가 목적지인데, 여행을 취소 없이 진행한다고 합니다.  천재지변으로 인해 여행사가 상품을 취소하지 않는 한, 고객이 취소하게 되면 위약금을 물어야 합니다. 우리가 손해를 보더라도 안전이 우선이니 여행을 취소하는 것이 좋겠다는 친구들의 의견이 카톡으로 올라왔습니다.  사실 위험을 무릅쓰고 여행을 강행할 일은 아니라서 나도 결정을 못 하고 망설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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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친구는 몸살 끝이라며 가족들의 만류가 심했습니다. 물 폭탄이 쏟아진다는데 몸도 좋지 않으면서 태풍 속에 여행을 간다고 하느냐고 식구들이 극구 말려서 결국은 포기했습니다.  한 친구는 오가는 길이 막혀서 길에서 지체하는 시간이 길어지고 고생하면 다음날 근무에 지장이 있을 듯해서 못 가겠다고 했습니다. 애초에 여러 가지 사정으로 포기한 3명 말고, 가기로 한 9명에서 두 명이 더 포기하고 7명이 남았습니다.  나는 요즘 들어 마음에 걸리는 일이 있고 우울해서 기분 전환이 필요했습니다.  태풍을 맞으면 울적한 기분을 훌훌 털어버릴 수 있지 않을까? 내심 일부러라도 태풍을 찾아가 맞고 싶은 기분이었습니다.  일상을 탈출해서 기분을 전환하기엔 여행이 가장 좋잖아요.  가다가 태풍 때문에 여행이 어려우면 여행사에 방이나 하나 잡아 달라고 해서 얘기하고 놀자고 계획하고 7명이 최종 남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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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스를 타고 출발해서 가는데 못 가는 친구들의 안부가 카톡으로 쏟아집니다.  조심해서 다니라고 만약 태풍으로 물 폭탄이 떨어지면 더 가지 말고 돌아오라고…….

순천에 거의 다 갈 즈음 우리 딸도 전화를 했습니다.

“엄마 태풍 괜찮아? 이 서방이 걱정을 많이 해.”

“여기는 태풍이 부는 지도 모르겠어.”

“비 안 와?”

“비 안 와.”

사실 비가 안 온다는 것은 거짓말이었고 그 시간 버스 창문에 조금씩 빗금이 그어지고 있었습니다.  입장을 바꿔서 딸이 태풍 속으로 여행을 간다면 엄마 입장에서 분명 말렸을 겁니다.  정말 철없는 엄마입니다.

 

 

걱정 속에 도착한 순천만 자연 생태공원은 전에 갔을 때 와는 완전 딴 얼굴을 하고 있었습니다.  태풍이 육지에 상륙하지 못하고 소멸되었다고는 하나, 태풍 끝 지락에 남아 있던 바람이 휘몰아치면 우산이 뒤집히기도 하고 후드득 굵은 빗방울이 쏟아지기도 했습니다.  매스컴에서 재난 방송을 하고 있는 중이라 관광객 발길이 끊긴 너른 습지를 태풍과 친구들이 어울려 놀았습니다.  낙엽이 굴러 가는 것만 봐도 웃는다는 여고시절을 함께한 친구들이 우산이 바람에 뒤집히는 것을 보고 즐거워서 웃는 모습은 할머니가 아니라 18세 소녀들이었습니다.  70만 평이 나 되는 순천만 갈대 늪지를 우리가 독차지해서 마음껏 웃으며 즐거워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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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천만 국가 정원도 오롯이 우리 것이 되는 순간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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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과의 부대낌 없이 마음껏 포토존에서 사진을 찍고 태풍에 말끔히 씻긴 자연을 보노라니 찌프등 했던 마음이 정리가 되었습니다.

가족에게 걱정 끼친 것이 좀 미안하지만 태풍 속으로의 여행은 성공이었습니다

 

2 Comments

  1. 데레사

    2019-07-22 at 16:27

    잘 하셨어요.
    국내여행인데 이래저래 취소하면 영 못가게 되거든요.
    비오는날 여행도 나쁘지만은 않지요?

  2. 윤정연

    2019-07-22 at 16:45

    태풍이 생각보다 빨리 지나갔지요? 그래도 티비서볼때 바람도
    엄청불었는데…그랬기에 다른사람들 없이 친구분들과 오롯이 즐겼을 생각하니 잘했겠다는 생각도 드네요 나도 빗방울이 굵을때 우산쓰고 밖으로나가면 우산에 떨어지는 빗소리가 그렇게도 좋았답니다…나이가 들어가니 인제 귀찮아 지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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