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Scouting 2.> 1947년 전국 기능경게대회에서의 우승

8.15해방과더불어거리의개구쟁이로방황하던시절인

1946년늦은봄에인천영화국민학교에서12세이상의학생들중에서지원하는학생들을뫃아

조선소년단을조직하였다.

나도아버지의말씀에따라가입을하였는데,그때인천신흥국민학교에재학중이던남동생은

9살이었는데연령미달이라고가입이허가되지않아서울고불고난리를피운생각이생생하다.

우리들은담임선생님이셨던이상호대장님의지도로소년단의견습과정에서부터열심히배우고

훈련을하며,연합야영에도참가하였고,하이킹도자주나가서자연과친숙해지기도하였다.

1947년가을이었을것이다.서울덕수궁인가경복궁인가기억이가물거리는데

조선소년단전국기능경기대회가열려서우리인천영화소년대가인천의대표로참가하였다.

구급법이며,환자운반법,들것만들기,천막치기,맺음법등여러종류의경기에서

우리인천영화소년대가좋은점수로종합우승을차지하여본부석에놓여있던우승컵을차지하였다.

자랑스러운마음으로인천에내려오자마자학교로가서임광익교장선생님께보고를드리고

운동장위의내리교회로올라가서감사기도를드렸었다.

대원들의성화에우리모두는경동네거리에있는이층의사진관으로가서기념사진을찍었는데

그사진이61년이지난지금까지도내겯에잘있어주어고마운마음으로여기에올린다.

사진뒤에둥근모자를쓰신분이이상호대장님이시고,앞줄에우승컵을든대원이도반장이었던

서홍석대원이며,그왼쪽의이쁘장한소년이지금은꼬부랑할베가되어있는나의모습이다.

그후에이상호선생님께서는목사님이되시어예산의제일감리교회로가셔서주님의종으로

헌신하셨으며우리인천영화소년대대원들은인천지방양성대의전신인인천봉화소년대와

인천YMCA가육성하던인천팔미소년대로나뉘어흐터지게되었었다.

지금은다들어디선가늙어힘들게살아가고있을그때그대원들이보고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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