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후퇴로부산까지피난온우리들은가족생각할틈도없이피난민구호활동에여념이없는가운데서도
인천의지도자가한분이라도계셨으면좋겠다는마음에조금은주눅이들어있었다.
날마다오전6시에기상을해서동쪽으로는범일동노타리까지,서쪽으로는초량역전까지조기청소를하고
돌아와서는아침식사를하고곳이어서부두로들어오는피난민안내봉사와,시내교통정리반,그리고DDT
소독반으로나뉘어봉사활동을나가서하루종일을보내던어느날월계소년대의정의배대장님께서우리들을
찾아오셨다.우리들은반가움에우리와함께계셔달라고청하였는데혼쾌히승락을하신다.
1951년1월말인지,2월초순인지는모르겠는데몇일있으면구정이다가오는데우리대원들에게만이라도
고기를먹을수는없을까생각하다가몇사람이밤에부산부두에나가서미군들의군용기름드럼통을굴려야적하는
노동일을하기로하고4사람이부두가로나가서보니노무자들이길게줄을서서뽑혀가기를기다리고있었다.
우리들도줄을서서다행히뽑혀서일터로들어가이름을적고일을열심히하였다.
그때하루밤일당이얼마였는지는기억에없으나피난중인우리들에게는소중하고큰돈이었다.
너무도힘이들고피곤하였던지3일째되는밤에는몰래2사람씩쌓아놓은드럼통위에숨어서잠을자기로하였다.
두사람이무사히잠을자고내려와서나와다른대원이올라가서도둑잠을자다가그만감독에게걸렸다.
사무실로끌려와서보니자다가붇잡힌사람이2명이더있었다.
우리는업드려뻣처를하고몽둥이로나부터얻어맞는데2대째를맞을때누군가가"무어야"하면서들어온다.
그사람이총감독이라는데이제는쫏겨났구나마음을먹고총감독이라는분을바라보면서우리들도총감독님도
깜짝놀라면서바라보다가총감독님이우리들을끓어않으셨다.
그분은인천지방양성대부대장이신김상만선생님이셨다.
기름난로로뜨거운사무실로나머지2명도불러들여그간의우리들이야기를들으시고는몇번인가를허~참,
허~참하시면서따뜻한물도손수따라주시면서반겨주셨다.
우리는구정날일나갔던대원들이3명씩대원들을데리고나가서외식을하기로하였다.
외식이라야극장옆골목으로빠저나가서부산진시장길가에서파는요새말하는부대찌게(그때는꿀꿀이죽
이라고하였다)에보리밥을말아주는음식인데,미군부대에서먹다남은음식찌꺼기를다시끌여서파는것이다.
먹다남은고기덩이도듬북들어있어서맛있는명절치레를하였다.
3일밤을찬바람맞으며생전처음으로벌어온돈으로우리모두가굶주렸던배를흡족하게채울수있었기에
모두의마음은훈훈하였다.연이틀동안의외식으로주머니는다시텅비었다.
그때그외식이얼마나맛있었는지……57년이지난지금도그맛을잊지못하고그리는맛이였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