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Scouting 7.> 제1회 한국잼버리 선발대로 출발

부산판살이와중에서도중앙본부의지도자들은제1회한국잼버리대회를준비하였다.

1952년8월8일-14일까지부산근교일영해변에서역사적인제1회한국잽버리를개최한다는연락을받았다.

그때는민간인들이탈수있는열차나뻐스도없고군용열차와군트럭만이있을때였는데중앙본부의노력으로

전국에서잼버리에참가하는대원들은군용열차에운임을지불하고탈수있도록교섭이되었다.

우리인천지방양성대는보조임원으로참가하기로하고주원기대장님의지도하에꼼꼼하게준비를하였다.

주원기대장님께서는제1회한국잼버리대회에서부야영장의책임을맏으셨다고하였다.

잼버리날자가임박해지면서우리인천지방양성대는선발대를한사람먼저출발시키기로하였는데

내가자원을하였다.어차피군용열차를타고갈여비도없었지만피난길에서돌아온그천리길을다시한번

가보고싶은마음에서였다.군인트럭을얻어타고가다가차를못만나면걸어서가고,해가저물면어느집에나

찾아들어잠자리를청해볼생각이었다.마침우리양성대대위원장이셨던곽상훈(인천갑구국회의원)선생님

께서가는길에어떤일이있을지모르니여행증명을가지고가라시며만들어주셨다.

8월2일아침일찌기주원기대장님댁으로찾아뵙고출발인사를드린다음에약간은무거운군용배낭을짊어지고

인천을떠났다.배낭에는몇일간먹을쌀이며,항고에고추장,김치도챙겼고2인용천막1습과담요도챙겼다.

숭의동에있던한병검문소에서헌병이태워주는트럭으로영등포에내려신길동에검문소가있다고하여물어물어

신길동검문소에찾아가헌병에게부산까지간다고차를태워달라고부탁을하였다.

헌병이태워준차가조치원까지태워다주었다.해가저물무렵인데어느집에찾아가서하루밤재워달라고청하니,

반겨맞아주면서저녁까지대접해주고이부자리도마련해주어서고마운마음으로하루밤을보냈다.

8월3일아침일찍일어나서그집의청소를말끔하게해주고아침을얻어먹은다음에주인내외분께고마운인사를

드리고그집을떠났다.얼마를가다가돌아보니그집아저씨가멀어저가는나를바라보고계셨다.

조치원검문소에서다시군용트럭을얻어타고대구까지달려갔다.도중에김천에서내려서작년귀향길에신세를진

집에찾아가감사를드리고싶었는데점신을사먹고는바로떠났다.점심은국밥을10환주고사먹었는데인천에서

떠날때주원기대장님이20환을주시며가는길에필요한데쓰라고주신돈이었다.

대구에서도트럭이내려준부근의어떤집에찾아가서재워달라고청하여하루밤을자고8월4일아침에길을

떠나려는데그집아주머니가자기들도피난민이라며,개떡을한봉다리싸서주신다.

부산으로가는길목을찾지못해서헤매다가경주로가는길목을찾아검문소에서한병이태워주는트럭을탓는데

그트럭은경주못미처에있는어느군인부대까지가는차였다.인근에민가도없고날은저물어할수없이그부대

보초병에게하루밤재워달라고부탁을하는데마침일등중사한사람이나오니보초병이내이야기를해준다.

그중사는나를천막내무반으로데리고가서자리를하나마련해주어잠을자는데장교와선임하사라는분이들어와

점호를한단다.내게증명서를보자고해서우리위원장님의여행증명을보여주니거기서자고가란다.

8월5일아침에마침그부대에서부산으로가는트럭이있다고나를재워준일등중사가태워줘서부산서면까지

무사히도착할수있었다.어제대구에서얻어온개떡으로늦은점심을먹었는데도아직도떡이남어있었다.

부산진은영극장으로달려가니극장옆공터에대형군용천막을치고소년단은그천막으로옮겨있었다.

천막으로들어서니모두들반겨주는데개성에서피난온대원들이데부분이었다.

다음날우리는일영야영지로가서야영지를배정하는데우리인천지방양성대는본부의일을돕고기능경기대회

의심판도봐야한다며본부천막왼쪽으로활동광장변에배정해주어서선발대의천막을세우고취사장도만들어

본진이오면바로식사를할수있도록준비를해놓았다.

8월7일인천지방양성대대원11명이주원기대장님과김인수선생님의인솔로영지에도착하였다

대한소년단의백낙준회장님도오시고,한국주재미국대사인무쵸대사도오셨다.

이분들이우리영지를방문하셔서우리들을격려하여주시며기념촬영도해주셨다.

우리들은쉴틈없이다음날있을개영식에서기수로9명이나가기로하고기수의의장연습을하였다.

뒷줄중앙의티셔스차림이무쵸대사시고.그오른쪽이백낙준회장님,그오른쪽뒤에주원기대장님이시며

앞줄왼쪽끝에본인이앉아있다.

Leave a Reply

이메일은 공개되지 않습니다. 필수 입력창은 * 로 표시되어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