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으로이주해서살아가기위해별려놓은어린애기들소꼽장난같은사업에점점익숙해지면서미국의이웃에있는멕시코쪽을바라보게되었었다.미국에살고있는멕시코인들의소비성향으로미루어보아그곳의시장성이보이는것같았다.그래서1988년어느날멕시코시티를찾아갔다.보따리몇개들고미국으로와서10년만이다.몇일을그곳에머물며시장성을살펴보고무역진흥공사멕시코사무소도찾아가사업정보도입수했었다.사업일을다마치고멕시코보이스카우트연맹을찾아가니총재며국제커미셔너,사무총장등여러사람들이반갑게맞아주며멕시코에서가까운미국에살고있으니멕시코보이스카우트의지도자훈련을도와주면큰힘이되겠단다.언제고불러주면반갑게달려와서돕겠다고화답을하고멕시코연맹에명예임원으로등록을해달래서등록까지하고돌아왔다.
미국으로돌아와서멕시코시장으로진출하기위한구상에들어갔다.그리고다음해5월에멕시코제2의도시인과다라하라시에SeoulPrixInternationalS.A.deC.V(서울프릭스국제무역주식회사)를설립하고정부에등록을마치니우리회사가한국인무역회사로는최초의등롣된회사라며,한국의거대기업현지연락사무소책임자들이찾아와어떻게무역분야등록허가를받았느냐며도움을청하기도하였었다.
회사가정돈이되고임원들이며직원들도열심히일하는모습에마음이놓여서멕시코보이스카우트과다라하라연맹
을방문하고멕시코보이스카우트대학생대원들을지원하기위한서울장학회를설립할뜻을일리며함께마음을합치자고하니몇사람들이참여의사를밝혀1989년가을에정식으로장학회를설립하고첫해의사업으로대학생8명을보이스카우트에서추천받아장학생으로선정하고1990년도에는12명으로장학생늘늘렸었다.
저녁때면늘과다라하라보이스카우트회관에모여서어떤때는새로지도자가되려는사람들에게지도자훈련도실시하였으며,어떤날에는대원들에게진급과정을지도해주기도하였었다.멕시코에서회사만설립해놓고미국으로돌아오려고하였었는데이런저런일에매여서그곳이마치본사처럼되어버렸었다.
어깨넘어로익혔던서반아어도열심히공부해서웬만한의사소통이나회의진행에는불편이없어지니멕시코가좋아지고멕시코사람들의순박한마음씨에정이점점깊어갔었다.
4년여를멕시코에서머물며사업을벌리는동안에아마도스카우팅에보탠시간이더많었지않나생각도된다.
어느땐가는전국문화예술박람회에한국에서개최될제17회세계잼버리를홍보하기위해서부스를마련하고그곳에서몇날을보낸일이며교포들과멕시코인지역사회지도자들을한국식당으로초대를해서잼버리를홍보하던기억도남아있다.그때한국대사님이오셔서이런준비물을어데서마련하였느냐며좋아하셨었는데…..멕시코보이스카우트에서는멕시코유니폼을입어주었으면하고원하였었는데나는한국의유니폼이더몸에맞는다며한국의유니폼을입고활동을하였었다
아마도그때의활동들은내가한국에서다이루지못하고떠난스카우팅의아쉬움이옮겨진것이아니였을까생각해보면서내가보이스카우트의일원이된것이자랑스러웠었다.
1990년도에멕시코유카단반도에있는메리다시에서개최된멕시코보이스카우트전국총회에서는내공식호칭을띠오(tIO/삼촌)라부르기로하고총회전체회의에서그이름을공식으로채택하여참가했던800여명의대의원들이기립하여박수를보내준감동도남아있다.그이후로어느자리에서나내이름대신에띠오로불리던그이름이었었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