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만강변 이야기, 9.> 경제 고문

1998년7월25일.미국훈사회투자방문단4명과함께훈춘길에올랐다.중국의심양이나장춘또는북경을거처서

연길로들어가는항로는비행시간보다는공항에서기다리은시간이더길던때였다.

심양에서내리니어떤중국인여인이우리일행을맞아준다.영어도잘하고일본어도할수있다는데일본의어느회사의중국대리인으로근무하고있단다.허룡주임이우리를영접해달라고부탁을해서나왔다고하였다.

연길로들어가는비행기시간까지는많은시간적여유가있다며준비한자동차로우리일행을태우고고궁도구경시켜주고조선족타운이라는서탑도구경시켜주어서서탑교회라는옛날부터내려오는조선족교회도볼수있었다.

연길로향하는국내선항공기에올라연길에도착하니허룡주임이마중하여주어서함께준비된차편으로훈춘으로들어갔다.가는길목마다에서푸르고넉넉한산야들이반겨주는데맑은공기가마음까지도맑게정화시켜주는듯하였다.훈춘에도착한우리일행을김석인시장이맞아주고저녁을대접해주는데다시만난반가움과새로들만나는손길에서술잔이오가는데미국에서찾아간사람들은술을못해서그저녁식사대접이부담스러웠었다.

훈춘에서는미국훈사회라는지원단체가미국땅에만들어저서크게기대를하는빛이였지만아직은앞길을제대로

설정하지도못한시기였기에많은자문과수정이필요한때였었다.7월27일은훈춘경제합작구를방문하고라스베가스에서참가한이석영사장과L.A.의이기동사장이투자의길을모색하며상담하는자리를만들었었는데그자레에서훈춘경재합작구관리위원회가내게경제고문의역활을위촉한다며,추대증서를전해주었다

경제의길을모르는내게는마음의부담도되었지만지난6월중순에관리위원회에서결정된사항이라기에받기는

하면서도무엇을어떻게해야할는지방향감각이잡히지않는순간이였었다.중국어로만들어진증서를받아들면서

그뜻을풀어보려고머리를이리굴리고저리굴려봐도도무지알수없이그저한문몇글자가눈에익을뿐이였다.

몇마디소감을말하라는데그저열심히투자도유치하고훈춘시민들곁에서함께땀흘려보겠다는말밖에는할말이

없는듯싶었다.그때내가끝자락에남긴말"잘사는훈춘을만들려는동포들곁에서고싶다."는말이아지까지도이루지못한가운데기억으로만남아있다.

고걸주임의요청으로기념촬영도하고점심식사도함께나누면서이석영사장이제기한옥수수로자동차연료를

빼내는공장에대해많은의견들을나누었었으며,몇군데그시절에적합한공단지역도돌아봤었다.

이기동사장은일본기업의전자부품공장을방문하고그공장에서생산되는전자제품에관심을보였었다.

몇일동안을훈춘사람들과함께보내는동안에우리는중국인들의상술과우정을바라볼수있었으며,한번친구는

영원한친구라는표현으로서로의정도나누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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