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메로스 / 일리아드 (liad) 3



호메로스:일리아드(liad)★그리스선단을둘러싼싸움


헥토르는최전선부대에게그리스군방어선앞의도랑을건너라고명령했다.
그러나전차끄는말들이도랑앞에서그너비와깊이를가늠해보고는
무서운지힝힝힝울었다.
도랑을넓고깊기도하려니와바닥에는
끝이뾰족하게깎인말뚝이촘촘하게박혀있었다.

결국트로이아전차병들은전차는건너편에다두고
다섯명씩짝을지어지휘자의뒤를따라도랑을뛰어넘었다.
헥토르와파리스,헬레노스와아이네이아스,
그리고사르페돈을앞세운트로이아연합군은밀집대형을이루었다.
그런다음수많은소가죽방패로방벽을만들어세우고
그리스의방어벽으로공격해들어갔다.
그리스전차들이드나드는방어벽의문은열려있었다.
말하자면그문은싸움터에서후퇴한병사들을위한
퇴각로노릇을하고있는셈이었다.
그리스병사들은서로엉킨채문앞에서우왕좌왕하고있었다.

트로이아군에서고집세기로이름난아시오스가
그문을돌파할수있을것으로믿고정면을향해밤색말을몰아갔다.
그러나먼북쪽나라에서온두라피타이창병이문앞에버티고서있었다.
문양쪽의방어벽위에서돌덩이와창을던지는
전우들에가려보이지않았을뿐이었다.
아시오스의공격은두창병의창끝에서좌절됐다.
문앞은여전히퇴각하는병사와도망치는병사들로어지러웠다.

같은방어벽의다른문앞에서는선봉을맡고있던
헥토르의부대가머뭇거리고있었다.
제우스의새인독수리가그들머리위를날다가부대한복판에다
살아있는핏빛뱀한마리를떨어뜨렸기때문이다.
그들은그것을나쁜징조로받아들였다.
공격을다음날로미루자는사람도있었다.그러나헥토르는그들에게말했다.

"가장좋은징조가무엇인지말해주랴?
그것은바로조국을위해싸우는것이다!"

트로이아군의사기는이말한마디로되살아났다.
병사들은함성을지르며헥토르의뒤를따랐다.

거기에서조금떨어진싸움판에서는시르페돈이친구이자전우인
글라코스외함께산사자처럼방어벽으로달려갔다.
트로이아연합군은물밀듯이그뒤를좇았다.
그들은마침내방호벽에구멍을뚫었다.
더구나글라코스가팔에화살을맞는바람에화살촉을뽑을때까지
퇴각해있을수밖에없었다.방어벽의나무에는무수한핏자국이찍혔다.
어느지점이되었든방어벽이있는곳에서는어디나
고함소리와창칼부딪치는소리로귀가멍멍해질지경이었다.

헥토르부대는있는힘을다해나무문짝을부수고방어벽을허물고자했다.
그러나방어벽안에는그리스군이방패로만들어낸또하나의방어벽이있었다.
방어벽위에서는화살과창이어지럽게트로이아군의머리위로쏟아져내렸다.
헥토르는커다란바위(두사람이힘을합해도들수없을정도로
무거운바위였지만제우스신은그바위를양털보다가볍게만들었다)를
번쩍쳐부서지면서목재파편이사방으로흩날렸다.

헥토르는부하들에게따라오라는명령을내리고는자신이먼저뛰어들었다.
트로이아귄의표효는둑터진산골짝의물소리를방불케했다.
그들은문을지나양쪽에서있는방어용말뚝울타리로접근했다.
밀물간은트로이아군의공격에그리스군은
뒤쪽에정박해있던배안으로들어갔다.



트로이아군이그리스전영한복판으로들어갔다는것을확인한제우스신은,
검은겔리온선고물에서벌어지는싸움판에서눈길을거두고다른일을생각했다.

그러나바다의신이자지진의신인푸른머리카락의포세이돈은
그리스군이처한절망적인상황을모른체하지않았다.
그는수레에다바람같이빠른말을매고는
바다밑에있는궁전에서지상으로올라왔다.
돌고래가뱃머리와나란히달리듯바다의괴수들이그와나란히달려나왔다.
마치해변으로밀려드는흰파도처럼포세이돈일행이
물속에서솟은곳은그리스진영의바로옆이었다.

포세이돈은지상으로솟구치자마자말과마차는그자리에두고모습을감추었다.
그는모습을감춘채로트로이아군에밀리고또밀리는그리스군사이로들어가,
그들의사기를북돋우면서한발도물러나지말라고응원했다.
누구의격려를받고있는지모르면서도이로써힘을얻은그리스군은
철벽같은저항을했다.
포세이돈신의힘이그들에게흘러들었으니당연한일이었다.
그들은트로이아군을밖으로밀어내고검은선단을둘러샀다.

밀고밀리는어지러운싸움의와중에서헥토르와아이아스가만났다.
아이아스는배의용골판굄돌구실을하는바위를집어
번쩍쳐들고는헥토르에게던졌다.
바위는방패를들고있는팔위와투구끈바로밑을때렸다.
헥토르는백정의도끼에맞은황소처럼무너져내렸다.
들고있던방패와창이쓰러진그의몸위로떨어졌다.

트로이아군이재빨리그를둘러쌌다.
군사들이좌우양쪽과뒤쪽을방패로가려길을내자몇몇병사들이그를
싸움터밖으로부축해내었다.
용맹스러운장수헥토르가죽은듯이끌려나가는것을본그리스군
(눈에보이지않았을뿐포세이돈신은그때까지도그들속에있었다)은
바다위로휘몰아치는폭풍소리보다더큰함성을지르면서
트로이아군을방어벽너머로,도랑너머로,이윽고평원으로밀어내었다.

제우스신이다시토로이아를내려다본것은바로그때였다.
제우스는평원으로밀리는트로이아군과병사들의부축을받고
크산토스강가에이른헥토르가피를토하고있는걸보게되었다.
그는그것이자기아우포세이돈의소행이라는것을알아차렸다.
그러나포세이돈이라면제우스에게도만만치않은상대였다.
힘으로보아도결코제우스에게뒤지지않는신이었기때문이었다.

제우스는태양의신이자활의신이며인류에게
공포를불어넣은신아폴론을불러내었다.
그리고는지상으로내려가헥토르에게새로운생명과헥토르자신도
일찍이보도듣도못한정도의힘을불어넣어주고오라고말했다.

아폴론은태양의눈으로부터새만큼이나빠른속도로지상으로날아내려갔다.
헥토르는부하들로부터찬물찜질을받고있었다.
아폴론은헥토르에게새로운생명과신성이깃든힘을불어넣어주어다.
그러자헥토르는벌떡일어나서갑옷을찾아입고는다시싸움터로되돌아갔다.



그리스병사들의눈에폭풍우같이밀고들어오는헥토르의모습이보였다.
다죽어가던사람이살아돌아오는것을본그리스병사들은혼비백산했다.
무수한그리스병사들이선단쪽으로후퇴햇지만,
아이아스와최전선의투사들은인간방패를만들고헥토르를대적했다.
그러나헥토르는트로이아전차부대를이끌고천둥치는소리를내면서달려와,
던져진창이가죽방패를뚫듯이갓만들어진방패를돌파했다.
최전선이무너지면서그리스병사들이풍비박산했다.
평원과도랑과방어벽문앞에서는무수한인간이무수한인간을죽이는
끔찍한광경이벌어졌다.
트로이아병사들이시체에서갑옷을벗기려하자헥토르가외쳤다.

"지금은그까짓전쟁쓰레기를챙길때가아니다.선단으로공격해들어가라.
뒤에서얼쩡대는놈이있으면죽여서개들에게던져주리라!"
헥토르는채찍을어깨위로높이쳐들었다가말의엉덩이를내리쳤다.
그뒤를따르는전차들이제우스신의벼락같은소리를내면서지축을흔들었다.
병사들이내던지는창은흡사제우스신이던지는번개같았다.

트로이아군은도랑앞으로전차를몰고갔다.
이번에는말들고도랑바닥에끝이뾰족하게깎인말뚝이촘촘히박혀있었는데도
흠칫거리지않았다.
전차가도랑을뛰어넘는모습은마치가라앉아가는배위를뛰어넘는파도같았다.
전차는바닥에걸리적거리는시체더미는물론이고막사의천장지붕과
울타리까지뛰어넘고는,앞을가로막던그리스군을
빗자루로쓸어버리듯이내몰며나갔다.
창칼과도끼를휘두르면서그들은선단속으로진입했다.
그리스군은겔리온선갑판에비둘기무리처럼오구구모여
해전때나쓰는긴갈고리를들고트로이아군에대항하려고했다.

가장격렬하고중요한전투가계속될동안,신으로부터
신통한힘을나누어받은헥토르는처음부터끝까지그싸움터에있었다.
싸움으로인한광기로그의눈은벌겋게이글거리고있었고
입가에는양털같은게거품이묻어있었다.
그의머리위로는영웅의광휘가횃불처럼번쩍거리고있었다.
그는전차를달리면서도끊임없이고함을질렀는데,
그소리는온싸움터에쩌렁쩌렁울려퍼졌다.

"불을질러라!검은선단에불을질러라!"

병사들은먹을것을조리하던모닥불불씨로횃불을만들어들고는,
말꼬리같은연기가나는불꽃을머리위로흔들면서헥토르의뒤를따랐다.
죽은자들이켜를이루며두껍게쌓여있었다.
산자들은헥토르의지휘아래시체의산을딛고배위로올라가려고했다.
갑판에서는그리스군이필사적으로트로이아군의승산을저지했다

트로이아군이맨앞에있는겔리온선을지나물밀듯이밀려들자
아이아스가부하들에게소리쳤다.

"힘을내라.힘을내헥토르를막아라.
저놈이우리선단사이를누비면서하는짓거리.그것은춤이아니다."

아이아스는이갑판저갑판으로뛰어다니면서키큰사람의
서너길은족히되어보이는갈고리로적군을찍었다.
그모습은흡사네마리의말을몰면서이말잔등에서저말잔등으로
펄쩍펄쩍뛰어다니는기수의모습을떠올리게했다.

연기와불꽃이솟구쳐오르면서소금물에절여져있던
배의널빤지가우지직우지직소리를내며타오르기시작했다.
그와중에서도헥토르의전령은계속해서외쳐대었다.

"불을질러라!검은선단에다불을질러라!"

파트로클로스가싸움터에서가장멀리떨어진,따라서그리스지영중에서도
가장후미진에우뤼폴로스의막사를나온것은바로그때였다.
파트로클로스가보기에선단의반은불길에휩싸인것같았다.
전투는선단을중심으로소용돌이를그리고있는것처럼보였다.


호메로스:일리아드(liad)★아킬레우스의빛나는황금갑옷


쿵쾅거리며무너져내리는듯한가슴을안고
파스로클로스는뮈르미돈족의막사로내달았다.
싸움터와는달리그곳은여전히평온했다.
배위에서는아킬레우스가그를기다리고있었다.
아킬레우스는파트로클로스를맞으면서이렇게말했다.

"우는거요.파트로클로스?나들이하는엄마치맛자락을잡고
자기도데려가달라고우는계집아이처럼우는거요?
장군의아버지가돌아가셨소?아니면내아버지라도돌아가셨소?
아니면어리석은허물의죄값으로죽어가는그리스군이불쌍해서우는거요?"

"그리스군이죽어가는것은저희들이지은허물의죄값때문이아닙니다.
단한사람의어리석음때문에죽어가고있는것이지요.
그러나그한사람.아가멤논은이미사령관께
그허물을바로잡을의향을밝힌바가있습니다.
그런데사령관께서는거절하셨습니다."

이렇게말하는파트로클로스의머리속에문득
노장군네스토르가하던말이떠올랐다.
그는계속해서말을이었다.

"만일에사령관께서우리가모르는이유때문에싸움터로나갈수가없다면
저에게사령관의갑옷과전차와말을빌려주고
뮈르믿돈군의지휘를맡겨주십시오.
트로이아군은사령관께서몸소나온줄로알고기가죽을것입니다.
그려면그동안충분한휴식을취한2천의우리뮈르미돈군이
이싸움의전세를뒤집어놓을것입니다."

아킬레우스는전날헥토르가칼과햇불을들고자신의배있는곳까지
공격해들어오지않는한결코싸움터로나서지않겠다고맹세한것을
떠올리자목이메어왔다.
그러나파트로클로스의말을좇으면맹세를깨뜨리지않고도
결과적으로는싸움터에합류한셈이될것같았다.

"내갑옷을입고내말을몰고가시오.나인것처럼꾸미고
뮈르미돈부대를지휘하시오.우리배를다태우기전에,
우리의귀향길을끊기전에트로이아군을쳐부수도록하시오.
그러나이선단에서적을몰아내거든뒤쫓지말고여기있는내게로돌아오시오."

파토클로스가그러겠다고약속했다.



아킬레우스가병사들을소집할동안파트로클로스는아킬레우스의갑옷을입었다.
아킬레우스와아가멤논이불화를빚기전부터
트로이아군이두렵게여긴것은갑옷이었다.
아킬레우스의전차병아우토메돈은서풍의신의핏줄을타고나
죽음을모르는두마리의말크산토스와발리우스,그리고때가되면
죽을운명을타고태어난말페다소스의목에멍에를채우고는전차앞에메었다.
페다소스는발이빠르고용기가있으며특히옆걸음질에능한말이었다.
싸우고싶어서이리떼처럼눈에불을켜고있던뮈르미돈병사들은,
그동안아킬레우스와아가멤논의불화로싸움터에서줄창
돌림쟁이가되었지만,이제는스스로대열을짓고출전을기다렸다.

이윽고파트로클로스가전차에올랐다.
병사들은방패의숲에싸인채그전차뒤에바싹붙어
트로이아군을향해나아갔다.
뮈르미돈군이트로이아군의옆구리를공격하는순간,
트로이아군은천둥치는소리를내며앞서나오는아킬레우스의갑옷과
말과전차를보고는그만기가꺽이고말았다.

그러나아킬레우스자신은그싸움을보고있지는않았다.
그는막사안에서고풍스런금술잔에핏빛포도주를따르고
그것을문턱앞의마른땅에부으면서제우스신에게기도했다.

"제우스신이시여저사람에게영광을베푸소서.힘을주소서.
저사람이선단을유린하는적을쫓아버리고돌아오게하시되
다친데없이예친구인저에게돌아오게하소서."

제우스는그기도를듣고는절반은들어주고절반은들어주지않았다.

파트로클로스는뮈르마돈병사들에게따라오라고고함을지르면서
선단을포위하고있는트로이아군사들에게달려들어닥치는대로
찌르고베는가하면횃불든적병을덮치기도하였다.

횃불은적병의손안에서일렁거리다주인이목숨을잃는순간
땅바닥에떨어졌다꺼져버리고는했다

순식간에선단주위의적이격퇴되었고불길도잡혔다
트로이아군은다시도량을건너저편으로밀려갔다.
도량은부서진전차로메워져있었다.
전차에서풀려난말들은평원을가로질러도망치고있었다.

그말떼를뒤쫓아아킬레우스의말들이도랑을건넜다
파트로클로스는말떼를모았다말떼가트로이아군과트로이아성중간에
위치하는파트로클로스말떼의퇴로를차단하고병사들이침을삼키며
기다리고있는그리스진영으로몰고갔다.

보병과전차병할것없이수많은병사들이죽음을당했다
트로이아연합군의총사령관인뤼키아왕사르페돈도이전투에서전사했다
사르페돈이쓰러진자리로헥토르가지휘하던트로이아군이몰려들었다

그의시신을확보하기위해서였다.
다시치열한전투가시작되었지만결국
사르페돈의시신을차지한것은그리스군이었다.
그리스군은시신에서번쩍거리는갑옷을벗기고는일제히환호성을올렸다
그러나사르페돈은다름아닌제우스신과
인간세상의어머니사이에서난아들이었다
사르페돈의시신은그리스인들이보는앞에서감쪽같이사라져버렸다
어떻게없어졌는지어디로옮겨갔는지를아는사람은없었다
사람눈에보이지않은쌍동이형제휘프노스와타나토스가
아버지제우스신의명을받고그큰날개를펄럭거리며내려와
사르페돈의시신을뤼키아로데려가버린것이었다
뤼키아인들이저희왕의장례식을예를갖추어치러줄수있게하기위해서였다




파트로클로스는선단주위에서트로이아군을완전히몰아내면
추격하지말고돌아오라던아킬레우스왕자의당부를떠올렸어야했다.
그러나구름을모으는신제우스는아들의죽음에화가난나머지
파트로클로스의머리에광기를불어넣어싸움미치광이가되게함으로써
아킬레우스의당부같은것은완전히잊어버리게했다.
파트로클로스는전차병아우토메돈에게연방고함을질러대면서
트로이아군을추격했다
그는트로이아군을닥치는대로찌르고베느라고뮈르미돈군을
저만치뒤에두고서혼자트로이아성벽밑에이르렀다
싸움미치광이가되어버린그는세차례나그까마득한성벽을기어오르려다가
세번모두성위로부터의공격을이기지못하고물러서야만했다.

전차를탄채정문앞큰길에있던헥토르는전차병에게전차를
똑바로아킬레우스쪽으로(파트로클로스가아킬레우스의갑옷을입고
있었으므로)쪽으로몰라고명했다.
성벽밑에서있던파트로클로스는커다란바윗덩어리를하나들어올려
헥토르를향해던졌다.
바윗덩어리는헥토르를빗나가는전차병에게맞았다.
전차병은그자리에서즉사했다.
파트로클로스는그때부터세번이나트로이아군의철통같은전투대형을공격했다.
한번공격할때마다아홉명의트로이아병사가목숨을잃고는했다.
뒤따라온뮈르미돈군대가그의뒤를받쳤다.
그날의전투가어떻게끝날것인지예견하는사람은아무도없었다.
파트로클레스가네번째로트로이아군을공격하는순간아폴로신이
아무도모르게그뒤로다가와그의어깻죽지를때렸다
파트로크로스의눈앞이캄캄해지면서투구가머리에서벗겨져
전차끄는말발굽아래로떨어졌다.

그제서야그의얼굴이드러났다.
그가아킬레우스가아니라파트로클로스인것이밝혀진셈이었다.
그의창은부러져있었고어깨에메고있던방패도땅에떨어져있었다.
둥그렇게파트로클로스를둘러싸고있던트로이아군중에서
한병사가창으로그이등을찔렀다.
눈앞에서붉은안개가어른거리고있었음에도파트로클로스는
창을잡고병사를찌르려했다.
그러나그순간,헥토르가썩나서면서창으로그의배를찌르고창날로그어버렸다.
파트로클로스는쓰러졌다.
눈앞에보이던붉은안개가검은안개로변하면서그의생명은그를떠나갔다.

파트로클로스는숨이끊어지기직전,자기를내려다보고서있는헥토르에게말했다.

"죽음은그대의곁에도가까이서있다.그대는바로이문앞에서,
이갑옷의임자인아킬레우스장군의손에죽게될것이다."

이말을들은트로이아군사이에침묵이감돌았다.
모두들죽어가는자가멀리본다는것을알고있었기때문이다.

파트로클레스의숨이끊어지자헥토르는그의몸에서
신들이만들어선물로준아킬레우스의갑옷을벗겻다.
전투가잠시소강상태를보이는틈을타서헥토르는,
자기갑옷은벗어성안으로들여보내아테나여신의신전에바치게하고는
아킬레우스의갑옷을입었다.
그리고나서야파트로클레스의시신을두고벌어진또하나의싸움터로뛰어들었다.

정오의불볕태양아래서치열한전투가계속되었다.
트로이아군은시신을빼앗아성안의개들에게던져주고싶어했고,
그리스군은선단으로모셔정중한장례식을치려주고싶어했다.

파트로클로스의전차병으로나섰던아우토메돈은처음에는
그싸움에합류할수없었다.
아킬레우스의전차를끌던말두마리
(옆걸음질에능한페다소스는그때이미죽고없었다)가
고개를푹수그리고선채,그오랜포위공격기간동안에
저희들을아껴주던주인친구의죽음을애도하며울고있었기때문이었다.
두마리의말은그곳에서움직이려고하지않았다.
싸움터에서도망치려고도,싸움에가담하려고도하지않았다.
제우스는슬픔에빠져있는그두마리의말을내려다보고있다가
아버지인서풍의신을생각해서가슴에는불길을
다리와구부러진목에는힘을불어넣어주었다
아우토메돈자신도조금전과는전혀다른전사가되어있는기분이었다
그제서야아우토메돈은싸움터로뛰어들수있었다

그러나해가머리위를지나점차서쪽으로기울수록전황은
조금씩조금씩그리스군에불리해져갔다.

그리스군은조금씩물러섰고트로이아군은조금씩다가섰다
그러나뮈르미돈용사들은낡은외투처럼누더기가된
파트로클로스의시신을포기하지않았다
그들은트로이아군과싸우는한편으로피가엉겨붙고
싸움터의먼지에절여진시신을선단이있는곳으로조금씩조금씩운반해갔다
아이아스와그부하들은방패와투팡으로파트로클로스의시신을운반하는
뮈르미돈병사들을호위했다.
										

호메로스:일리아드(liad)★헥토르에게복수하는아킬레우스


네스토르의아들안틸로코스파트로클로스의죽음을알리러
아킬레우스에게달려가그리스병사들은모두길을비켜주었다
그리스병사들은그소식이어쩌면아킬레우스를다시
싸움터로되돌아오게할수있을지도모른다고생각했다.
이윽고안틸로코스가숨을헐떡거리며아킬레우스의막사에이르렀다
아킬레우스는전투가어떻게진행되는지궁금했던나머지
막사안을서성거리고있었다.
그때안틸로코스를통해그소식을듣게된것이었다.

"파트로클로스장군이전사했습니다
지금밖에서는파트로클로스의알몸쟁탈전이벌어지고있습니다.
장군이알몸인것은헥토르가갑옷을벗겨갔기때문입니다."

아킬레우스는아무말도하지않고화롯가에서고개를숙이고
자기머리카락에다화로에서퍼낸재와검은먼지를끼얹었다
안틸로코스가달려와그의손을붙잡았다
안틸로코스로서는아킬레우스로서는아킬레우스가슬픔을이기지못해
혹시자살이나하려는것은아닐까싶었기때문이었다.

그때깊은바다에서바다의요정인테티스가아들을위로하러올라왔다
하지만아킬레우스는오랜친구를죽인헥토르에게복수하는데
자신의목숨을걸겠다고말했다.

테티스가흰팔로아들을껴안고서말했다.
"갑옷도없이싸움터로나갈수는없는일이다
맨몸으로갔다가는헥토르를만나기도전에트로이아군의창에
몸을상하고말게다그러니오늘밤만넘기도록해라

내가대장장이헤파이스토스신에게올라가갑옷을주문하고내일아침에는
이세상인간은본적도들은적도없는방패와투구그리고
가슴가리개를가져다주마"
테티스는이렇게말하면서사라졌다.
테티스의음성은해변에서한숨을쉬는파도소리와같았다.

한편,파트로클로스의갈갈이찢긴시신을서로차지하려는싸움은
선단의방어벽가까이까지와있었다.



야수의발톱같은슬픔에가슴을쥐어뜯기던아킬레우스는밖으로나갔다.
무장도하지않은채방어벽으로올라간그는
떨어져가는붉은태양을등지고섰다.
그가두른머리띠위로불덩어리가솟아오르는것같았다.
흡사야간공격전에서구조를요청하는봉화같기도했다.
거기그렇게선채로그는목청껏트로이아를저주했다.
그소리는성벽을공격하면서병사들이내지르는함성같았다.

그는세차례고함을질렀는데,트로이아의말들은공포를이기지못하고
힝힝거리면서도랑을건너다말고물러서고는했다.
세차례나트로이아병사들의가슴이공포로오그라들었다.
트로이아병사들은거기까지쫓아온목적도잊었는지뿔뿔이흩어져버렸다.
그순간을틈타뮈르미돈용사들은파트로클로스의몸에묻은먼지를대강털고
선단앞방어벽의문안으로시신을들여갈수있었다.

방어벽의문이잠기면서벽위에파수병이무수히배치되었다.
병사들이파트로클로스의시신을관위에눕히고나자
아킬레우스가그옆으로다가갔다.
그는자기자신이가야했는데도불구하고파트로클로스에게
자기전차와말을주어싸움터로보낸것을후회하고,
살아서되돌아오지못하게된것을슬퍼했다.

병사들은갈갈이찢긴파트로클로스의시신을아킬레우스의막사로옮겼다.
평소에파트로클로스부터따뜻한보살핌을받아온여자노예들은울면서
시신에묻은피와먼지를씻기고는희고부드러운천으로그의몸을감쌌다.
해가지고밤의고요가찾아들었다.

헥토르의참모몇몇은헥토르에게트로이아성으로들어가
안전을꾀하는것이좋지않겠느냐고제안했다.
다음날아침이면아킬레우스가최전선에나설것이고,
그렇게되면트로이아군이위태롭게되지않겠느냐는것이었다.
그러나헥토르는그말을들으려하지않았다.

"성안이피난민들로붐비는것은그대도알지않는가?
아킬레우스,올테면오라지.평원에서아킬레우스를맞이하겠노라."

그래서평원은다시한번,잡목수풀과옛묘지사이에지펴진
트로이아연합군의모닥불로인해마치무수한별이박힌밤하늘모양이되었다.

아킬레우스의막사앞에서여자들은파트로클로스의죽음을슬퍼하면서통곡했다.
뮈르미돈병사들도그의죽음을애도했다.
아킬레우스도옛친구의가슴에얼굴을묻었다.

올림포스산꼭대기의대장간에서대장장이신헤파이스토스는
테티스가보는가운데불을지피고황소스무마리의가죽으로만든
풀무로바람을일으켜불을부쳤다.
그는청동과은,주석과금을녹여번쩍거리는가슴가리개와장딴지가리개,
붉은색깔의장식볏을넣은금투구와방패를만들었다.
특히헤파이스토스는방패에다도시,바다,전투장면,사자사냥,
곡식걷이가끝난평원,포도가오종종하게열린포도덩굴,
피리소리에맞추어춤추는남녀의그림을박아넣었다.

새벽이되자,<은빛발>테티스는헤파이스토스가아들을위해만들어준
갑옷을들고올림포스를내려왔다.
아킬레우스는그빛나는갑옷을입었다.



일찍이경험해보지못한용기와적개심이아킬레우스의가슴속에서솟아올랐다.
그러나개인의명예와관련된문제에민감한오뒤세우스는아킬레우스가
무턱대고뮈르미돈군대를이끌고싸움터로나가는것은옳지못하다고말했다.
오뒤세우스의말에따르면,먼저아가멤논과정식으로화해하고신들에게
제물을바쳐이를알리는예식을거행한후,
일찍이아킬레우스가거절한적이있는아가멤논의선물을받아들인뒤에
출전하는것이좋겠다는것이었다.

아가멤논은사람을보내어선물을전했다.
선물을전해준사람들은아킬레우스에게,아가멤논을대신해서
그동안의허물을인정하고용서를구했다.
아킬레우스는이제금덩어리,노예,값비싼말은물론이고,
심지어는브리세이스조차도귀찮았다.
하지만그는그선물을받아들이기로했다.
그것을받아야만비로소화해의절차를끝내고
싸움터로달려갈수있을터이기때문이었다.
이로써두사람의화해는정식으로이루어졌다.

뮈르미돈족을비롯해서모든그리스병사들이아침을먹었다.
그러나아킬레우스는파트로클로스의복수가끝나기까지
먹는것과마시는것에손을대지않으려했다.

그가전차에올라막앞으로나아가려고할때였다.
헤라여신으로부터딱한차례인간의말을할수있는권능을받은
그의백마크산토스가갈기가땅에닿도록고개를숙이고는말했다.

"아킬레우스장군님.장군님만슬픈것이아니고저희들도슬픕니다.
저희들은아버님제퓌로스(서풍)처럼내닫고싶습니다만,
아무리그렇게달려도장군님을구할수는없습니다.
장군님께서는곧목숨을잃으시게됩니다."

백마크산토스의말에아킬레우스가대답했다.

"나도잘알고있다.그러나헥토르가살아있는한그자리를피하지않겠다.
그러니그동안만이라도힘껏달려다오."

그러자두마리의백마는고개를끄덕거리고는적진을향해내달았다.

아킬레우스는그날하루종일뮈르미돈군대의선두에서트로이아군을무찔렀다.
그는트로이아군을강으로밀어넣었다.
핏빛으로흐르는강은트로이아군을보호하면서
아킬레우스를금방이라도삼킬듯이용틀임쳤다.
숱한병사들이그강물에떠내려갔다.
아킬레우스는트로이아군을추격하여강을건넜고,
건너쪽강변에서도무수히많은트로이아군을죽였다.
얼마나죽였던지땅은진홍빛으로물들고시체를밟은말이
전차의차축과뼈대에무수한핏덩어리를튀겼을정도였다.
그는마지막승리의영광을앞두고트로이아군을압박해갔다.
아킬레우스와뮈르미돈군대는트로이아군을성문앞까지추격했다.
트로이아군은성안사람들의활짝열어놓은성문안으로쫓겨들어갔다.

그러나헥토르만은창을움켜쥔채성의정문앞에버티고서있었다.
성벽위에서아들의모습을지켜보던프리아모스왕은,
신들이준갑옷을입고유성처럼달려오는아킬레우스를보자
아들에게어서성안으로들어오라고소리쳤다.
그러나헥토르는오래전에만나기로약속이라도되어있는것처럼
그자리에꼼짝도하지않고서서아킬레우스를기다렸다.

그가그렇게기다렸던것은자신의최후가멀지않을것이란생각때문이었다.
그리고또다른이유는,전날평원에서야영해야한다고주장해엄청나게많은
부하들을죽게한책임이자기에게있다고생각했기때문이었다.
따라서아킬레우스를죽임으로써부하들의죽음을복수할수있으며,
만약그럴수없다면자기목숨으로그빚을갚겠다고결심했던것이었다.

아킬레우스는전속력으로전차를몰아돌진해왔다.
헥토르의몸에서힘이쭉빠져나갔다.
검은선단이오고나서십여년세월이흐르도록한번도없던일이었다.
헥토르는돌아서서도망쳤다.
그는도망치느라고트로이아성을세바퀴나돌았다.
세차례나거룩한무화과나무를지나고
평화시에는아낙네들의빨래터로쓰이던우물가를지났다.
헥토르는사슴처럼도망쳤고아킬레우스는표범처럼추격했다.
헥토르가용기를되찾은것은세번째로성의정문앞에이르렀을때였다.
그는돌아서서적을맞았다.

아킬레우스의창이그의어깨를스쳐지나갔다.
어찌나가까이스쳤던지바람소리가그의귀에들렸을정도였다.
헥토르역시창을던졌다.
그러나그의창은,도시와전쟁터의풍경과피리소리에맞추어
춤추는남녀가새겨져있는아킬레우스의방패를뚫지못했다.

아킬레우스에게는창이하나더남아있었지만헥토르에게는없었다.
헥토르는칼을뽑아들고외쳤다.



"불명예스럽게죽고싶지는않다!"그리고는아킬레우스에게덤벼들었다.
그러나칼로찌를만한거리까지접근하는순간,
아킬레우스가그의목을겨누고창을던졌다.
그는휘청거리다땅바닥에쓰러졌다.

"개떼와까마귀떼가땅에묻히지못한너의살을찢어먹을것이다."

아킬레우스가먼지투성이가된채로쓰러져있는헥토르를내려다보면서내뱉었다.
헥토르는그에게애원했다.

"아버지가금덩어리로내몸값을치를것이다.
그러니내시체를아버지께내어드려제대로장례를치를수있게해다오."

그러나아킬레우스는자비를베풀기분이아니었다.

"안돼!할수만있다면네살을찢어먹고싶은마음이다.
하지만개떼에게던져주어개들로하여금너의살을놓고다투게해주지.
네아버지가네몸무게와맞먹는금덩어리를가져온다해도소용없다."

헥토르는더이상애원하지않았다.그는마지막숨을몰아쉬며외쳤다.

"내아우파리스가바로이자리에서너를죽일것이다.내말을명심하라."

마지막숨결을토해내고서헥토르는눈을감았다.
그순간그의영혼은저승을향해길을떠났다.

아킬레우스가헥토르의몸에서하루전만해도자신의것이던
갑옷을벗겨내고있을동안그리스진영의최전방에있던
병사들이우루루몰려왔다.
병사들은더이상두려워하지않아도되는헥토르의시체를구경하고는,
다른곳으로옮겨지기전에저마다한차례씩시체에다창질을했다.

아킬레우스는시체에다해괴한짓을했다.
그는헥토르의발목뒤,발뒤꿈치에서장딴지에이르는
힘줄뒤쪽을잘라구멍을내고거기에소가죽끈을꿰어묶고는
그끈의한쪽끝을전차뼈대에다묶었다.
되찾은갑옷을전차에실은그는전차에올라손수고삐를잡고
채찍으로말엉덩이를때렸다.
말은선단방어벽을향하여서풍처럼달려나갔다.

말이달리자헥토르의시체는울퉁불퉁한땅바닥위에서때로는뒤틀리면서
때로는엎어지고쓰러지고하면서끌려갔다.
헥토르의검은머리카락은전쟁터의먼지와온갖쓰레기를
주위가자옥해지도록휘날리게했다.




호메로스:일리아드(liad)★장례경기를벌이다


헥토르의어머니헤쿠바를비롯한트로이아여인들은
트로이아성정문위의망대에서서
외마디비명을지르며헥토르의죽음을통곡하기시작했다.

안드로마케는자기집다락방에서금빛꽃을수놓으면서
헥토르의겉옷을짜고있었고,안방하녀는주인이싸움터에서돌아오면
몸을닦을수있도록물을데우고있었다.
안드로마케의귀에망루에서여자들이통곡하는소리가들렸다.
안드로마케의손에서날실사이로들어가던베틀의북이툭,떨어졌다.
시어머니의통곡소리에외마디비명까지들은안드로마케는
여자들이통곡하는까닭을알아보기위해하녀둘을데리고망루로올라갔다.

안드로마케는망루에이르러서야,
아킬레우스의전차에매달린채선단쪽으로끌려가면서
헥토르의시체가일으키고있는먼지구름을내려다볼수있었다.
통곡하는여자들사이에서안드로마케의몸이화살에맞은새처럼무너져내렸다.

정신을차린안드로마케는울고또울었다.
아버지없는자식으로남게된아들때문에울었고
견줄데없이비참하게죽은헥토르때문에울었다.
한시바삐시신을찾아장례식을치러주지않으면
영혼은하데스의나라인저승에들지못하고,
산자의땅과죽은자의당사이에있는경계를외로이방황하게될터였다.
생각이거기에미치자안드로마케는또다시울음이나왔다.
그러나시체가되어장례식도치러지지못하고
누워있는영웅은헥토르뿐만이아니었다.

사냥감을배불리잡아먹은사자처럼포만감을느끼며잠들어있는
아킬레우스에게파트로클로스의망령이찾아와이렇게말했다.

"왜나를화장해서묻어주지않습니까?
저승의나라망령들은나를저희동아리에끼워주지않습니다.
그래서나혼자하데스의검은문앞을서성거린답니다.
자,내손을한번더잡아주십시오.하데스의문으로들어서면
다시는이렇게와서장군을뵐수없게될테니까말입니다."



아킬레우스는오랜전우의손을잡아보려고했다.
그러나그는아무것도느낄수가없었다.망령은연기처럼사라져버렸다.
그순간잠을깬아킬레우스는부하들에게화장할장작을마련하라고명령했다.

아킬레우스의부하들은멀리떨어진내륙의이다산에서
나무를베고장작을만들었다.
그리고는노새무리에등짐을지워해변으로실어내었다.
아킬레우스의명에따라그들은장소를정하고
장작을쌓아거대한화장단을세웠다.
파트로클로스의시신이화장단으로올려지자전우들은저마다
파트로클로스의죽음을애도하느라고머리카락을자라시신위에뿌렸다.

아킬레우스도머리카락한타래를싹둑잘라파트로클로스의손에다쥐어주었다.
전우의명예에어울리게가축도여러마리잡았다.
아킬레우스는파트로클로스의전차를끌던말네마리,
파트로클로스가매우좋아하던사냥개두마리도죽여서
화장단위에다올리게했다.
슬픔과분노로제정신이아니었던아킬레우스는
트로이아군의포로열두명도울대를끓어올리게했다.
부하들은여러항아리의기름과꿀을화장단가에다부었다.
해질녘이되자아킬레우스가횃불로화장단에다불을붙였다.
나무의잔가지와기름과꿀에불이붙었다.
북풍과서풍의신이와서불길을불어주었다.
화장단은밤새타다가해가희붐해질녘에야사그러졌다.

부하들은장군이생전에아킬레우스와술을마시곤하던,
양쪽에손잡이가달린황금술잔에재가되어버린파트로클로스를담았다.
술잔을땅바닥에놓고주위에다돌을쌓아조그만방을만든다음
그위를흙으로덮으니곧무덤이되었다.

아킬레우스는흙을덮긴하되돌로쌓은방은밀봉하지못하게했다.
그리고는부하들에게자기가죽거든화장해서그재를파트로클로스의재가든
술잔에넣어잘섞은후에야돌로쌓은무덤을밀봉하라고명령했다.

이윽고장례경기가열렸다.
죽은사람의명예에어울리게장례경기를열어주는것이당시의관례였다.

아킬레우스의보물창고에서나온상품들이진열되었다.
경기는하루종일계속되었다.
첫경기는전차경주였다.
그리스연합군에서가장빼어난전차와말,
그리고다섯명의전차몰이가출전했다.선수들은평원을질풍처럼내달았다.
그들뒤로먼지구름이일었다.
아득한옛날그평원에세워졌던이정표가반환점이었다.
전차는반환점을돌아선단방어벽앞의관중들앞으로오게되어있었다.

디오메데스가앞섰다.
고함을지르고노래를부르면서그는말의엉덩이에다연방채찍질을해댔다.
그의전차바퀴는땅에닿지않는것같았는데도뒤로는먼지가피어올랐다.
1등상은그에게돌아갔다.
음악과살림살이에재주가있는여자노예하나,
발이세개달린황금솥하나가상품이었다.

그다음으로들어온사람은네스토르의아들안틸로코스였다.
안틸로코스는말의속도덕분이었다기보다는말모는기술로
메넬라오스를간발의차로따돌리고들어왔다.
안틸로코스에이어메넬라오스의말발굽네개가천둥소리를내면서결승점을지났다.
안틸로코스와메넬라오스에게각각2등상과3등상이돌아갔다.
상품은혈통이좋은암말한필과1등상보다는조금작은황금솥이었는데
두사람이상의해서서로좋은것을갖도록했다.
이어서메니오네스가들어왔고한참있다가에우멜로스가들어왔다.
마차가부서지는바람에손수말을몰면서전차를끌고왔기때문에늦었다는것이다.
아킬레우스는그들에게도상을내렸다.

이어서권투경기가베풀어졌다.
거인이자권투잘하기로유명한에페이오스와
아르고스군의대장에우뤼알로스가맞붙었다.
두사람은아랫도리를벗고넓적한가죽허리띠를매었다.
두사람은땀을뻘뻘흘리면서서로치고빠지고했다.
격렬한싸움인데도꽤오래계속되었다.
결국에페이오스가에우뤼알로스의턱에일격을명중시키고는
노새한마리를상으로받았다.
에우뤼알로스는선채로땅바닥에다피를토했다.

다음에는씨름경기가열렸다.
아이아스와다친상처가이제갓나은오뒤세우스가짝짓기계절을맞은
두마리의뿔사슴처럼맞붙었다.그러나실력이엇비슷해서결판이나지않았다.
아킬레우스는두사람의경기를중단시키고상을반씩나누어주었다.

그러나이어서벌어진달리기경주에서는오뒤세우스를당할상대가없었다.
그는이경기에서포도주를섞는은사발을따냈다.
마지막으로아킬레우스는전사한사르페돈의갑옷을가져오게한뒤,
구경꾼사이에다창을하나꽂아그위에걸고는창시합할사람은나오라고했다.
갑옷은먼저상대에게피를흘리게하는사람이차지하게된다고했다.
디오메데스와아이아스가갑옷을입고구경꾼한가운데만들어진공터로나섰다.

두사람은세차례나맞붙었다.
피가서서히달아오르자아이아스가창으로디오메데스를찔렀다.
창끝은디오메데스의방패를뚫고가슴가리개에꽂혔다.
이번엔디오메데스가아이아스의목을겨누고방패로숨기고있던창을내질렀다.
구경꾼들은둘중하나가다치는것을염려해경기를중단해줄것을요청했다.
그래서경기는중단되었다.두장군은사르페돈의갑옷을나누어가졌다.
해가질즈음경기에참가했던선수들은마무리잔치를벌이기위해
아킬레우스의막사로몰려갔다.

마무리잔치가끝나고장수들은잠자리로돌아갔지만
아킬레우스는잠을이룰수없었다.
어둠속에서그는파트로클로스의죽음과,다시는누릴수없는
함께사귀고나누었던세월을슬퍼하면서혼자울었다.
그러다자리를박차고해변으로달려간아킬레우스는,
날이희붐해질때까지해변모래톱을미친듯이걸었다.

하지만새아침이밝아와도아킬레우스의마음은가라앉지않았다.
그는슬픔때문에맑은정신을잃어버린사람처럼마굿간으로달려갔다.
그리고는말을끌어내멍에를채워전차에맨뒤,헥토르의시체가있는곳으로갔다.
헥토르의시체는여전히땅바닥위에엎어져있었다.
아킬레우스는다시헥토르의시체를전차에다비끄러매고방어벽을나가,
파트로클로스의뼈무덤을세바퀴나돌았다.
그동안헥토르의시체는물론흙먼지위를계속해서끌려다녔다.

그는열이틀동안이나밤으로낮으로똑같은짓을했다.
그러나그동안아폴론신이헥토르의시체를가호하고있었기때문에
그렇게거칠게다루어졌음에도불구하고시체는더이상상하지않았다.
신들은결국아킬레우스가광기때문에스스로제명예와친구의명예와
땅의명예를더럽히고있다는쪽으로뜻을모았다.
신들은어떻게든아킬레우스를저지해야한다고생각했다.



호메로스:일리아드(liad)★헥토르의시신을되찾아오다


신들은테티스를올림포스산꼭대기로불러올렸다.
그리고는테티스에게일렀다.
"가서아들에게이르세요.제우스신을비롯한올림포스의신들은
아킬레우스가헥토르의시체를다루는것에화가났다고요.
헥토르의시체를그아버지프리아모스왕에게돌려주라고하세요.
프리아모스왕이몸값을알맞게치를테니까요."

아킬레우스는어머니로부터그말을들었다.
슬픔에젖어어떤사람의말에도귀를기울이지않던아킬레우스도
어머니의말만은다소곳이들었다.

거의같은시각에신들은,종종신들의심부름꾼노릇을하는
무지개여신이리스를프리아모스왕에게보냈다.
프리아모스왕은왕궁에서머리에다먼지와재를뿌린채로슬픔에잠겨있었다.
이리스여신은프리아모스왕에게말했다.

"아킬레우스에게가서몸값을낼테니아들의시신을돌려달라고하세요.
그러면아킬레우스도마다하지않을거예요."

늙은프리아모스왕은보물창고로가서향내나는나무로만들어진
상자를열고는열두벌의비싼예복,열두벌의겉옷과수놓인웃옷을꺼냈다.
열개의금덩어리,번쩍거리는황금솥,
그리고트리키아백성들로부터선물로받은무척이나아끼고
자랑스러워하던금술잔을꺼내그옷더미위에놓았다.

프리아모스왕은남아있는두아들파리스와데이포보스를불렀다.
슬픔을가누지못하고잇던왕은맏아들헥토르가죽었는데도
뻔뻔하게살아남아있는두아들을꾸짖고는,
수레를한대준비해몸값으로치를물건을거기에다실으라고명했다.

두아들은수레위에다몸값을싣고나귀를비끄러맸다.
그러자프리아모스왕을신들에게기도를하고포도주를제물로올린다음,
미리준비되어있던전차에올랐다.
왕은수레몰이와전령하나만을데리고정문을빠져나가
어둠에잠긴평원으로들어서서선단족으로말을몰았다.

프리아모스왕은알지못했지만나그네의수호신인
헤르메스가그의옆에붙어있었다.
헤르메스신은그리스군을만날때마다날개달린지팡이로
툭툭건드려그들을잠재웠다.
그래서그리스진영에서노왕의전차와몸값실은수레를본병사는하나도없었다.
프리아모스왕일행은아무제지도받지않고방어벽을지나
이윽고갈대이엉으로덮인아킬레우스의막사에이르렀다.
프리아모스왕은전차에서내려안으로들어갔다.
아킬레우스의부하들이수레에서몸값을내리고있을동안헤르메스신은
가만히올림포스로돌아갔다.

아킬레우스는막사안에서부하들과함께저녁을먹고있었다.
프리아모스왕은아킬레우스왕자에게다가가발밑에무릎을꿇고는
관습에따라그의손에입을맞추었다.
헥토르뿐만아니라자신의아들을여럿죽인그손이
프리아모스왕에게는진흥빛으로보였다.

왕은애원했다.
"늙은나를불쌍하게여기시고신들의뜻을좇으시어내아들을돌려주기바라오.
장군의아버님을생각해보시오.늙으신아버님도아들을멀리떠나보내고
나처럼슬퍼하실게아니오?하지만
그분에게는아들이돌아올것이라는희망이라도있지않소.
나를불쌍하게여겨주오.
내아들을위해나는오늘도저히할수있을것같지않던일을했소.
내아들들을무수히죽인장군의손에입을맞춘일이그것이오.?

아킬레우스는멀리있는늙디늙은아버지를생각했다.
그의아버지도프리아모스왕처럼머지않아슬픈소식을듣게될터였다.
아킬레우스는프리아모스왕을일으켜세우고다정하게말했다.
두사람은서로를부여안고울었다.
프리아모스왕은아들을생각하면서울었고아킬레우스는
자기아버지와파트로클로스를생각하면서울었다.

아킬레우스는여종들에게명하여헥토르의시체를화장할수있도록깨끗이씻고,
프리아모스왕이가져온겉옷중에서도가장좋은옷으로잘싸도록했다.
헥토르의시체가깨끗한겉옷에싸여빈수레에실리자
그는음식과술을내어오게했다.
두사람은함께먹고마셨다.
프리아모스왕은그런다음에야몸값을치르고,
되찾을아들의시신과어두운평원을가로질러트로이아성으로돌어갔다.

온트로이아백성들이성문으로나와헥토르의죽음을애도했다.
헥토르의시신은생전에살던집으로옮겨졌다.
여자들이시신의주위로모여들어자신들의머리카락을쥐어뜯으면서
곡을하고만가를불렀다.


GavinHamilton,PriamPleadingwithAchillesfortheBodyofHector
안드로마케는침대앞에앉아두손으로얼굴을가리고울부짖었다.
"아직이렇게젊으신데어째서아내는집지키는과부로,
아들은아비없는자식으로남겨놓고떠나십니까?
떠나시려면집에서떠나셔야지요.
저에게손을내미시든지그게안되면유언이라도몇마디하고가셔야지요.
어차피울면서보내야할긴세월,
그래야밤낮으로떠올리기라도하지않겠습니까?"

그다음으로어머니헤쿠바가통곡하면서말했다.

"헥토르,그많은아들중에서도내가가장사랑하던아들아.살아있을때
그토록신들의사랑을받더니,그원수의전차에매달려그렇게끌려다녔는데도
터진데멍든데하나없는것을보니아직도신들의사랑을받는모양이구나.
아,네목숨을앗아간붉은꽃한송이같은상처자국이하나있을뿐,
너는잠을자고있는것같구나."

세번째로검은상복차림의헬레나가그흰팔을흔들면서통곡했다.

"헥토르여,트로이아왕가의왕자들중내마음에가장가깝던분이시여,
파리스가나를이곳에데려온이후로,진작에죽었어야했던나에게
거친말한마디퉁명스러운말한마디안하시던분이시여,
모두가나의소행을질타할때도따뜻한가슴과부드러운말씨로
원망을자제하던분이시여.아,나에게화있으라.나에게화있으라.
이제이트로이아에는나를벗으로여기는사람이없어지고말았구나.……."

프리아모스왕은부하들에게황소를수레에다매고
화장단쌓을장작을실어오게했다.
그리고는아킬레우스가헥토르의장례식을위해열하루동안의휴전을약속한만큼
그리스군의공격은두려워할필요가없다고말했다.
트로이아군사는황소수레를끌고산으로올라가아흐레동안이나
장작을베어내려성벽밖에다거대한화장단을쌓았다.
그리고는열흘째되는날헥토르의시신을화장단에올리고불을붙였다.

불길이가라앉자트로이아왕족들은울면서
헥토르의재와뼈조각을주워모아보랏빛천에다쌌다.
그런다음이것을금상자에넣어미리파둔구덩이에묻고그위를돌로쌓았다.
왕족들은장례절차를따르면서사방을살피며몹시조급하게굴었다.
아킬레우스가약속한열하루가거위끝나가고있었기때문이었다.

장례를마치고성안으로들어간그들은관습에따라큰잔치를열었다.

<말을길들이는자>로도불리던헥토르의장례식은이렇게끝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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