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백산맥”

태백산맥(太白山脈,1994)

01.산맥(대금)
02.떠도는혼
03.어긋난세월(피리,대금)
04.깊은물(대금)
05.돌아눕는산(태평소,피리)
06.슬픈골짜기(타악기)
07.상흔(대북)
08.징조

Credits

기획:김수철
작곡,편곡:김수철

대금:박용호
피리,태평소:김성운
국악타악기,양악타악기:배수연,박영용외
오고북:20인오고북연주단
아프리카타악기:박영용
공,심벌,꽹가리:배수연
바라:김수철
코러스:남성30인합창단
신디사이저:김수철,최태완
녹음:이용준
믹싱:임창덕
사진:구본창
디자인:조앤조

김수철의영화음악은…‘서편제’를거쳐1994년…

‘태백산맥’의…영화음악으로…음악적으로완성된다.

"태백산맥"영화「태백산맥」의…오리지널사운드트랙으로…

김수철작곡의…다른국악곡들보다…

음악적완성도가…매우높은앨범으로…

김수철…본인도아끼는…작품이다.

앨범전체에…실험성이높고…민족의비극에대한묘사를…

장엄하고비장하게…표출하고있다.

대금곡,피리,태평소,오고북,타악기,대북등의…악기를사용하여…

곡마다…곡의변주가…예측을불허하는…소리로작곡되어있다.

이음반에는…태평소와피리가어우러진…메인테마’돌아눕는산’,

대금연주곡으로…영화의첫장면에삽입된…

‘산맥’,오보에연주가…잔잔하게펼쳐지는…

‘떠도는혼’,전통타악기와…

서양의타악기가…조화를이룬…’슬픈골짜기’등

8곡전곡이…수록되어있다.

태백산맥영화음악은…94년제33회대종상음악상과…

제16회청룡상음악상을…수상하기도하였다.

영화[태백산맥]은…영화보다…음악이좋았던걸로기억된다.

후일[넘버3]로…스타덤에오른…

송능한감독이…시나리오를맡은…이영화는…

원작이가지고있는…그어마어마하게장대한…

서사구조에…미리부터…질식한듯하다.

원작소설을읽어본사람도…이야기의줄기를…따라가기힘든판에…

소설을읽지않은사람에겐…2시간이넘는…런닝타임이고역이었을듯…

당연히…영화는기대와는…정반대로처절하게망가졌고…

임권택감독과…정일성촬영감독덕분에…

건진몇몇…인상적인…풍경과장면을…

그나마…위안으로삼아야했다.

(물론…정경순을비롯한…조연배우들의눈부신연기도…

칭찬받아마땅하다.)

우리나라에서…대종상만큼권위없는…상도또있으랴싶지만…

어쨌든…이사운드트랙은…

청룡상과…대종상에서…음악상을수상했던…

그해에나왔던…사운드트랙중…

최고로…인정을받았던…작품이다.

그도그럴밖에없는게…김수철은…

십여년전부터…그가일관되게탐구해온…

한국과…서양의음악의크로스오버를…가장적절하게…살려서표현했다.

남과북이충돌하던…그시기가바로…

서양의것과…우리의것이…충돌하던시기였음은…

주지의사실이고…공교롭게도…김수철의오리지널스코어들은…

그사이의…합의점을놀랍도록…제대로짚어내고있다.

그리고…그가표현해낸스케일은…

태백산맥의…그것과맞먹는…장쾌하고도웅장한…

한편으로는…비극적인기운이…충분히느껴지는것이다.

-HottracksAlbumReview-

태백산맥(太白山脈,1994)

원작:조정래

감독:임권택

각본:송능한

출연:안성기(김범우),김명곤(염상진),김갑수(염상구),오정해(소화),

신현준(정하섭),최동준(심재모),정경순(죽산댁),방은진(외서댁),

이호재(전원장)

음악:김수철

촬영:정일성

정성일(영화평론가,한겨레신문1994.09.16.)

역사앞에…선우리는…아무도면죄부를받지못할것이다.

하물며…조국이둘로나뉘어…두개의역사를…지니고있는우리에게는…

그것을…하나로읽기위하여…해방공간의시간으로이끄는…

조정래씨의…대하소설태백산맥을…

영화로옮겨…그것을…하나로보려는…

임권택감독의…태백산맥은…통일에대한성찰이며근심이다.

영화태백산맥은…소설과는달리…1948년10월20일여순사건으로…

벌교가…보성군군당에접수되었다가…1953년7월27일휴전협정과함께…

산으로…다시쫓겨…올라가는것으로끝난다.

벌교의…낮은우익들의…빨갱이사냥으로비명으로가득차고…

벌교의밤은…좌익들의…반동색출로피로물든다.

증오와…구호와…약탈과…살인이무시무시하리만큼…

일상생활이…되어버렸던시대가…2시간50분내내화면을메운다.

그것은…우리들의부모의…영혼과만나는…

목이메이는…시간이며…피와살이되어버린…

우리근대사의…첫장을여는…순간이기도하다.

그속에서…세명의주인공은…다른입장으로갈등한다.

그리고…이것이바로…원작소설과영화의차이이며…

임권택이…자신의시선으로…역사에개입하는방법이다.

민족주의자김범우(안성기)는…회색빛지식인으로…

자기의…역사가지닌모순을알면서도…

무엇을해야할지…여전히망설인다.

좌익염상진(김명곤)은…신념에따라…산에들어가투쟁하지만…

짧은시간동안…벌교에…인민공화국이들어서면서…

이상과…현실의괴리에…망연자실해진다.

우익염상구(김갑수)는…형에대한미움으로…

그저맹목적으로…빨갱이사냥에나선다.

임권택은…어느편에도기울지않으려고…무진애를쓴다.

그에게는…좌익도…우익도참을수없게만든다.

그래서…그가묻는것은…언제나한가지다.

사람이…사람다운…대접을받지못했던시절을살아야했던…

사람들에대한…제사상앞에서…

살아남은우리에게…그렇게펄럭였던…구호와굳은약속은…

도대체무엇이었냐고…그리고…그자신이개벽이후…꾸준히추구해온…

인본주의의…목소리로낮고침울하지만…단호하게다시묻는다…

왜?서로…용서(!)할수없었냐고…

그러나…그자신도…결코화해할수없음을안다.

김범우가…벌교의근본모순은땅이며…그것이풀리지않는한…

싸움은…계속될것이라고말하는순간…

자막으로숨가쁘게…친일지주들과의싸움에서…

어떻게…해방정부가패배했는지를…빠짐없이기록하고있다.

역사는더럽혀졌고…인본주의자는…고통스러운시간의…영겁회귀를두려워하고있다.

그렇다…이것은끝이아니다.

그저…첫번째…발걸음이옮겨진것뿐이다.

아버지세대로서의…태백산맥에이어…그자식들은하나의역사가될때까지…

그이야기를계속할것이다…그것이예술의역사이며…

또한…역사속의…예술의몫이기때문이다.

조정래와<태백산맥>

최재봉(한겨레문학전문기자)

조정래는…대하장편소설<태백산맥>을…

1983년에집필하기시작하여…1989년에완간하였다.

이작품은…분단극복의의미를…적극화하기위해서…

민족사회의…내재적인모순을…철저하게비판하는…

자세를…견지하고있다.

이소설은…해방직후의이념적혼란기부터…6.25전쟁에이르기까지…

격동의시기를중심으로…한국사회내부에은폐되어있는…

구조적모순을규명하는데에…상당한노력을기울인다.

이데올로기문제에…내재해있는…역사적인모순의극복없이는…

분단극복이…가능하지않다는…사실을명확하게…

제시하고있는…이작품은…

분단극복을위한…문학적성과의…하나로평가되고있다.

조정래대하소설<태백산맥>이…

10권으로…완간된것은…1989년11월이었다.

그로부터…10년의세월이흐르는동안…

이책은…물경500만부가…팔려나갔다.

평론가와작가…출판인들에의해…

해방이후…최고의작품으로꼽혔으며…

대학도서관대출순위1위를…기록했는가하면…

서울대신입생들이뽑은…’가장읽고싶은책’에서도…1위에선정되었다.

10권이라는…방대한규모에도불구하고…

일본어로번역…출간되고있기도하다.

한마디로…<태백산맥>은…최상의문학적평가와…

최고의…상업적성공을…동시에거머쥐었다.

이소설의…어떤점이…그런’신화’를가능하게했을까?

<태백산맥>은…1948년여수,순천반란사건에서부터…

한국전쟁을거쳐…1953년의…휴전까지를다루고있다.

작가의고향인…전남벌교를무대로삼은…

이소설은…농민출신…빨치산들을…

전면에내세워…이들의…문학적복권을꾀한다.

좌익지식인염상진과…농민전사…하대치로대표되는이들은…

작가의…애정어린관심속에…역사의주체로서…

새롭게…자리매김되고있다.

총체성을목표로삼는…대하소설로서…

<태백산맥>이…이들에게만주목하는것은…물론아니다.

염상진의동생인…우익깡패염상구…

사려깊은중도파에서…좌익으로선회하는…김범우와이학송…

부패한우익대표…최익승과최익달…양심적인국군장교심재모…

그리고…무당소화와외서댁…들몰댁같은여성들….

좌에서우까지…권력상층부에서기층민중까지…

지주와자본가에서…지식인과농민까지…다양한신분과…

성향의인물이…나름의몫을…부여받고있다.

그러나…작가의…우선적인관심은어디까지나…

염상진과…하대치같은…빨치산들에게로향해있다.

그런’편애’의근거는…<태백산맥>제4권에붙인…

‘작가의말’의…다음대목에서…확인할수있다.

역사는…’힘있는자들의기록’이어서는아니된다.

우리의분단된삶…통일을찾아가야하는…

우리의…민족적삶에있어서는…더욱이그러하다.

역사의…그런허위가파괴되고…역사가’자각하는민중의소유’가될때…

비로소…우리민족의…’허리잇기’인통일도…이루어지리라믿는다.

그중간과정에…문학이해내야할…몫이있다고확신하며…

나는소설로써…그일을이루어보려고…욕심부리는것이다.

인용문에서도짐작되지만…

작가는<태백산맥>으로써…무엇보다도…역사의재해석을의도하였다.

역사를…힘있는자들이아닌…

자각하는민중의…소유로만들어야한다는것이다.

이말은…그간의…우리역사가…힘있는소수에의해…

왜곡되어왔다는…인식을전제로삼고있다.

역사학쪽의용어로…같은얘기를다시하자면…

친일및…분단고착세력이…통일을지향하는…

민족.민중세력을…억눌러온것이…

해방이후…우리역사였다는것이다.

작가는…해방공간을무대로…

민족분열과…민중의착취를꾀하는…세력에맞서…

‘자각하는민중’의대표자로서…

염상진과하대치같은…빨치산을내세운것이다.

빨치산에대한…이런적극적인해석은…

소설은물론…역사학계에서도…전례를찾기힘든것이었다.

그도그럴것이…해방이후반세기가까이…우리사회를지배해온…

반공이데올로기에따르자면…

빨치산은…북의김일성정권만큼이나…금기의존재였던것이다.

그러나…작가는…이념의금기에굴하지않고…

역사의…사실을발굴하고…진실을드러내고자하였다.

그를위해…수많은자료를섭렵하고…

당사자들을…직접만나…증언을들었다.

작가는1991년에쓴…'<태백산맥>창작보고서’라는글에서…

처음증언을수집하던…무렵의어려움을…사례를곁들여털어놓고있다.

<태백산맥>이…한창쓰여지고있을때…6월항쟁이일어났고…

그여파로…이태의<남부군>을필두로한…

빨치산수기들이…봇물처럼쏟아져나왔지만…

조정래가…소설에서보여준…빨치산의실상과의미는…

당사자들의수기와…진보사학계의연구를…앞서는것이었다.

80년대이후…특히대학생등젊은이들이…<태백산맥>에빠져든것은…

무엇보다도…작가의이런…새로운역사해석을산때문이었다.

흔히80년대…’의식화의주범’으로…

리영희나송건호…백낙청같은이들을드는데…

조정래의<태백산맥>이야말로…

이들의…그어떤책에못지않은…영향력과파괴력을지녔다.

검찰과…몇몇우익단체들이…이소설의이적성을지적하며…

국가보안법…적용압박을계속하고있는데에는…

이런정황이…고려가되었을터였다.

아직도…결판이나지않고있는…법률적협박이있기전부터…

작가는끔찍하고도…집요한전화협박에…시달려오고있었다.

작가역시<태백산맥>이지닌…이런이념적…폭발력을예상했던듯…

가족들에게…만일의경우에대비해…유언까지해두었던것으로전해진다.

그럼에도…잊지말아야할것은…<태백산맥>은이념서적이아니라…

사실주의규율에…충실한소설이라는점이다.

이소설이…역사를새롭게보고자할때에도…

그것은…역사적사실을무시한…자의적해석이아니라…

어디까지나…사실에바탕을둔…문학적형상화로서그러한것이다.

작가는…인물과구성,문체등을통해…’억눌린자들의복권’이라는…

소설적주제를…효과적으로형상화한다.

소설로서<태백산맥>의…성공을가능케한요인이라면…

몇가지가있겠지만…그가운데서도…빼놓을수없는것이…

전라도방언의…적절한사용이다.

그양귀신덜이들이닥침스로…시상판세가워찌돌아가등가?

코가석자나늘어졌든…지주덜이…새기운얻어되살아나고…

순사질해묵은죄지가먼첨알고…뽕빠지게도망질혔든…

눔덜이도로…그자리차고앉고…

그공평허게일잘허든…인민위원회럴공산당…못자리판이라고몰아때레…

사람덜잡아딜이고…자네덜도다아는…이약새날아가는소리로…

일일이되짚을것도없이…지대로잘돼가는밥솥얼…

엎어뿐것이…누구냐그것이여…

보나마나…그양코배기덜아니었드라고?

<태백산맥>의성공은…작가로하여금…

또다른대하소설…<아리랑>과<한강>으로나아가게만들었다.

앞서…언급한창작보고서에따르면…작가는본래…

<태백산맥>에서…해방에서…1980년광주학살까지를다루려했었다.

그러나…해방공간과…전쟁기의얘기가…

예상외로길어지면서…계획을수정해야했다.

<태백산맥>의전사(前史)로서…

일제강점기를…다룬작품으로…<아리랑>을쓰고…

전쟁이후…현대까지를…<한강>이라는…

또다른…대하소설로쓰게된것이다.

작가는…1989년<태백산맥>을완간한다음…

1년여의취재와…자료수집을거쳐…

1990년12월…<아리랑>의집필에들어간다.

그로부터…4년반뒤인1995년여름…

모두12권으로…완간된이소설에서…

작가는…일제강점기민족의…수난과저항을…

장대한스케일로…그리고있다.

<태백산맥>이…벌교를중심으로한…

한정된공간과…5년미만의시간대를…배경으로삼고있다면…

<아리랑>은…1890년대에서…해방까지의반세기남짓한기간에…

전북김제를중심으로…한한반도는물론…

만주와연해주…일본과하와이까지…

대단히…광활한지역을…무대로삼고있다.

당연히…소설의형식과밀도에…변화가있을수밖에없다.

말하자면…<태백산맥>이…집중의원리를택했다면…

<아리랑>을지배한것은…확산의원리였다.

사람에따라서는…<아리랑>의속도감있는…

이야기진행에…더점수를주기도하지만…

문학적으로는…<태백산맥>의밀도와깊이가…

<아리랑>을…앞선다는것이…중론이다.

현재<한겨레>에연재하고있는…<한강>을통해작가는…

1950년대말에서…1990년대초까지의…

30여년을…단행본10권분량에…담는다는계획이다.

원래계획했던…<태백산맥>의뒷부분이…

별도의…대하소설로…독립하는셈인데…

시간및공간적배경의…광활함에서는…<태백산맥>보다는…

<아리랑>에…가까운..작품이될것으로보인다.

<한강>이그려나갈시기는…앞서<아리랑>과<태백산맥>이…

포괄했던일제강점기나…해방및…전쟁기에못지않은…

격동기라할수있다.

4.19와5.16에이은…박정희군사정부의등장…

그가지휘한…수출드라이브에따른…경제발전과…

그그늘에서땀과피를흘린…

노동자들의고초…박정희의뒤를이은…

전두환,노태우군부정권의독재와…

그에맞선…민주화투쟁,광주학살과…6월항쟁과같은…

굵직한사건들이…줄을잇게된다.

이문열의<변경>이…1950년대말에서…

1970년대초까지를…다루기는했지만…

그이후의현대사가…이만한규모의…

대하소설로…형상화되기는…이번이처음이다.

200자원고지로…1만5천장을상회하는…규모의대하소설을…

한두편도아니고…세편씩이나쓴다는것은…가히초인적이라할수있다.

취재를위한…여행과자료…수집을위한독서…그리고도저히생략할수없는…이런저런…대소사에빼앗기는…시간을감안하더라도…

하루평균…200자원고지…10장씩을써야…

4~5년에…한편씩을쓸수있다는…계산이나온다.

그러니…대하소설을쓰는동안…

작가의생활은…거의토굴속의…수도승과도같다.

"먹고쓰고자고…또다시먹고쓰고자고…"하는

지극히단조로운…이기간의생활을두고…

그는스스로…"글감옥에갇혔다"는…표현을쓰고는한다.

<태백산맥>과<아리랑>을읽고…감명받은수백만독자는…

작가의…이런초인적인…노력과헌신에감사해야…마땅하리라.

마지막으로…<태백산맥>의무대인…벌교에대한이야기…

벌교는…전남보성군에속한…일개읍이다.

물론…일찍이일제시대부터…간척지가개발되고…

내륙깊숙이까지들어온…바닷물을이용해…

조운이…발달되었다고는하지만…

실상은…아담한…소읍에지나지않는것이다.

그런데도<태백산맥>이라는…소설을통해이마을은…

일약…굴지의관광지로…발돋움하게되었다.

<태백산맥>을읽은…독자들이책에서맛본감흥을…눈으로확인하고자…

이궁벽진…마을을다투어…찾고있기때문이다.

작가가…어린시절살았던…벌교읍의모습을소설속에…

원형…그대로되살려놓았기때문에…

독자들은…무당소화의집과…김범우의집…

염상구가활약하던철교와…염상진의야산대가…

한동안해방구를이루었던…

율어등…소설무대를…다시만날수있다.

그런데…이런것은어떤가…

전라선열차를타고…벌교역에내리면…

역광장건너편으로…벋어나간길가에는…

‘태백산맥’이라는…이름의…단란주점이있다.

어느해…작가와동행해들어간…그집에서작가왈…

"이런건…작가한테…저작권을지불해야하는거아냐?"

그리곤…다같이헐헐헐…

기억을두레박질하는사람

<태백산맥>의작가조정래

김인정(소설가,전라도닷컴2005년6월)

벌교읍봉림리…야트막한산언덕에…

멀리서도…눈에띄는…집하나가있다.

담장이높고유난히길어…한눈에도행세깨나했던…

양반이…살았을법한집…

소설<태백산맥>에나오는…김범우의집이다.

몇번쯤…무너져내렸는지…높다란담장은…

시멘트로메운…흔적들이…군데군데…

그래도…옛집의…위용은여전하다.

금방이라도…생각많은얼굴의김범우가…

고개를숙이며…담장아래로…걸어올것같다.

‘김범우의집’으로불리는…이집의주인은…

태백산맥의…김범우가아니다.

사십여년전…이사온…임씨네노부부이다.

“그뭐냐…태백산!태백산인가그책을보고는…

대학생들도오고…일본사람도오고…

미국사람도오고…껌은사람빼놓고는다오요…

차말로…아니…여그뭣을보러오까?

암만생각해도…볼것이한나없는디…"

‘한나볼것도없는집’을보기위해서…찾아오는사람들이…

그저…신기할뿐이라는…김이순(81)할머니.

하지만…‘볼것없는’집에…손님이끊이지않는까닭을…

김할머니도…알고는있다.

소설책에…이집에나왔고…그이야기를쫓아서…

사람들이찾아들고있다는것을…

“조정래그양반이지대로썼어라우”

김범우의…집을빠져나와…홍교다리를건넌다.

홍교옆슈퍼앞에…아저씨들이너댓분.

멀리서보니…영낙중년아저씨들인데…가까이서얼굴을보니…

칠순을훌쩍넘긴…노인들이다.

한손에낫을들고…한손에는…자판기에서뽑은종이커피를든…

칠순의…아저씨들이들려주는…

‘벌교의옛기억’들은…대부분여순사건무렵의…이야기들이다.

“14연대반란때는…쩌그소화다리에서…사람께나죽어나갔소.

그다리가난간이없거든…긍께졸졸이세와놓고….

들들들총질을해불믄…다리밑으로…

시체가…흑허니떨어져…아이고차말로.”

열두살무렵의…기억을떠올리면서…

치가떨리는듯…눈을감는…예순다섯의아저씨한분.
“가난한사람들은…해방전이나똑같애…아니더죽겄어…

긍께속으로어째야살꼬…궁리들이많앴겄제…

주민들도14연대를…속으로응원헌사람이많앴어…

지주들보기싫응께…

근디…반란군잡는다고…주민들을더잡았어…

그때나시방이나…시상은똑같애라우…

잘산것들은…요리조리잘살고…없는사람만못산사람만당허제….”

쉰목소리로…‘가난한이들의비극’을이야기하는…

칠순의상고머리아저씨.
“우리형은…괜히지레겁묵고…산으로내빼갖고…

아,경찰들이…형어디다감찼냐고…

울엄니랑…나랑…동생이랑…삼년을쫓아댕김서…뚜들어팼어라우…

아조…떡이되게…사람을패고죽인디못살것습디다…”
아직도…열이받치는듯…얼굴이붉어지는…일흔넷의키작은아저씨.
그렇다면…그런기억들을…소설태백산맥이잘담고있느냐는질문에…

소설을…직접읽었다는…한아저씨가고개를끄덕인다.
“조정래…그양반이지대로썼어라우…

그이야기쓸라고…옛날사람들…다쫓아댕김서만나고그랬어…

그런이야기…무서와서…누가말도못헐때제…”

벌교를넘어전국민의‘기억의재생장치’만들어

벌교에와서…사람들의기억과마주하고나니…

조정래의소설‘태백산맥’은…

이렇게바로…어제처럼생생한…

‘벌교의기억’을…퍼올리는…두레박질이었지싶다.

그래서…더욱놀랍다.

작가조정래가…벌교땅에서산것은…고작두해…

그것도…열두세살의…어린소년시절이었다.

어떻게…소년의눈에…그많은것들이보였던가?

그리하여…마침내…그기억을역사로되살려내고…벌교를넘어…

전국민의…‘기억의재생장치’…‘역사의플레이어’를만들어낸것일까…

“벌교는솔직히…따로취재가필요하지않았어요…

집이며골목들…방죽이며다리…벌교천…다머릿속에있었지…

김범우네…집으로나오는그집에는…나보다한살정도많았나…

내또래가…하나살고있었어…

언젠가…그집에갔는데…

누룽지에…하얀설탕가루를…뿌려서주더라고…

가슴이…쿵내려앉을만큼…충격을받았어…

눌려먹을…밥이어딨으며…설탕이어딨어?그시절에….

근데…그집에서는…대수롭지않게…그간식을집어먹더라고…

그집…간식하나가…어린내가슴에…큰돌처럼내려앉았지…

가난한사람…부자인사람…남을부리는사람…

남의밑에서…죽도록일하는사람…

대체…무엇이사람을…이렇게다르게살게만들까…고민스러웠지…”

조숙했을까…

벌교…북국민학교4학년무렵의두해…

이후로는…광주서중학교를졸업하고…서울보성고등학교를다니다…

동국대에들어갔으니…전라도땅…특히벌교와의인연은…

소년시절의…그두해가…전부인셈이다.

그런데도…작가의머릿속에는….벌교가거울처럼…환하게보였다고했다.

그것도…그기억의파편마다에…뚜렷한음영까지새겨두고있었다.

왜가난한가?왜죽어야하는가?왜배가고프며?왜슬픈가?

“말도마찬가지예요…기억을떠올리면…절로나오는거죠…

취재해서썼다면…그렇게써지질않겠지…

전라도말에…너무고마울때쓰는…

‘아즘차니아즘차니또아즘차니’라는…말이있어요…

울어머니가…아흔두살이신데…

가끔씩띄엄띄엄<태백산맥>을…읽으셨던모양이라…

그러더니…아가…니가어찌그말까지다안다냐와!허시는거에요…

그런말들을…공부해서나오겠습니까?

그냥…내저기억의깊은곳에서…저절로품어져나와요…”

“기억안하려고하는역사취재힘들어”

탁월한…기억력을뒷받침하는…

또다른작업은…다른기억들을…모으는작업이었다.

역사학자보다…더많은자료를구하고…일일이경험자들을찾아다녔다.
“그때가5공정권…전두환정권때인데…빨치산경력이있는분들이…

자신의과거를…쉽게털어놓으려고하겠어요?

기억이안난다…모르것다…잊어버렸다…처음에는말을안해요…

그렇게…기억안하려고하는…역사를취재하는것이참힘들었죠…”
그렇다면…일일이기억을더듬어…사람의이야기로되살리는…

이힘들고…고통스런작업을…시작한계기는무엇이었을까?

“80년5·18때…진압이된…며칠뒤에광주에왔었지요…

거리가…온통…죽은거리같앴어요…

사람들표정이…다똑같아보이더군요…

도청앞Y건물에갔는데…총알이…온벽에박혀있는거에요…

그총알을…삼백오십개까지세다가…포기를해버렸지요…

계단으로는…피가…쫙흘려내려있더라구요…

아니…저끔찍한걸…왜안닦을까했는데…

하이타이로…닦아도…안진다는겁니다.

아…그때깨달았어요….

선죽교의전설은…전설이아니라…실화였다는사실을…

피는…물과다르다는사실을…

내가봤던…여순사건도…이렇게처참하진않았어요…

광주처럼…그렇게잔인하고…참혹하진않았습니다.

이런시대에…작가가뭘할수있을까…

뭘기록해야하는가…살아남은자의비겁함으로…가슴을쓸어내렸어요…

그통렬함이…태백산맥을쓰게했지요…”

그후25년동안…작가조정래는…

<태백산맥>을쓰고…<아리랑>을쓰고…<한강>을썼다.

하루열여섯시간이넘는…고된노동을자처하며…

기억의…복원작업에…매달렸다.

그와중에…국가보안법위반혐의로…고소고발을당했고…

반공단체의…테러협박에시달렸다…

두차례나…유서를써두었을만큼…쉽지않은세월이었다.

<태백산맥>에대한국가보안법무혐의처리11년만에통보받아…

“그사람들한테도…고통스런…기억이있었겠지요.

가족을잃었거나…피해를받았거나…

하지만…한쪽의…역사만을이야기해서는…

우리가겪어온…비극이풀립니까?

언제까지…빨갱이는악마고…

도깨비라고가르치면서…항일운동을왜곡하고…

분단을고착시키는…세력에침묵하고…동조해야합니까?”

기억의정면에서서…어떤식으로든…기억을왜곡시키지않으려고…

버텨온세월동안…작가의머리는…숱이적어지고흰눈이앉았다.

그렇게…세월을견디고야작가는…검찰로부터…

소설태백산맥에대한…국가보안법…무혐의처리를통보받았다.

고소고발…11년만의일이었다.

고발자반공단체들은…검찰의무혐의처리에…곧바로항소를했다.

경기도…분당에있는자택에서작가는…

무혐의통지서와유서등…상처의기억들을챙기고있었다.

벌교에세워질…태백산맥문학관에…자료로두겠다고했다.

지나온…기억들이만만치않았는데…

작가의기억에…어떤일들이또각인될지모르겠다…-옮긴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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