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otthilf Fischer & Chor / Der Traum war schön / O Herr welch ein Morgen

당신이찾는것은
이미당신안에있습니다.
당신밖에있는것이아닙니다.
당신은지금당신이원하는모습그대로입니다.

지금그대로당신은경이롭습니다.
당신이원하는모습이되기위해
미래를기다릴필요는없습니다.
당신이찾는것은이미’지금이순간’있습니다.

하느님의나라도’지금이순간’있습니다.
당신의깨달음도바로여기에있습니다.

-틱닛한《포옹》中에서


GotthilfFischer&Chor/DerTraumwarschön/OHerrwelcheinMorgen

박정훈디지털담당부국장

TV조선뉴스쇼’판’방송화면캡처.

"北’고난의행군’때사람잡아먹었다는소문사실이었다"

입력:2014.04.0305:37수정:2014.04.0316:37-여시동
영화같은탈출기’만사일생’출판한외교관탈북자홍순경씨인터뷰

1999년2월부터2000년10월까지1년8개월간태국에서

북한의손아귀에서벗어나기위해사투를벌였던

북한외교관출신홍순경북한민주화위원회(76)위원장이

3일‘만사일생(萬死一生)’이라는책을냈다.

홍씨는이책에서방콕주재북한대사관무역참사로있던자신이

북한국가보위부의모함을받아

북한으로소환되기직전대사관탈출을감행,

여러차례죽을고비와북한송환위기를넘긴끝에

한국으로망명하기까지의기나긴과정을상세히공개했다.

또북한의해외공관과외교관들이본국에상납하기위해

달러ㆍ금괴ㆍ상아ㆍ보석ㆍ술ㆍ무기,심지어바다거북알까지

밀수한이야기를다양하게소개했다.

홍씨는1991~1999년태국대사관에서근무했고

그이전1983~1988년엔파키스탄주재

북한대사관에서근무한베테랑외교관이었다.

“통일이5년안에온다”1조선에서고믿는다”는홍씨는

“내인생의작은이야기들이

통일을염원하고소망하는이들에게북한을알리고

독재체제의본질을깨우칠수있는기회가되길희망한다”고말했다.

고(故)황장엽선생의뒤를이어

북한민주화위원회를책임지고있는홍씨를2일만났다.

―당시탈출과정이소설같았는데한국에망명한직후

자세한이야기가알려지지않았던것같다.


“알다시피한국에들어온2000년은한국정부가

북한을의식해탈북자들의입을막고있던시기였다.

국정원에서말을하지못하게했다.

당시한국정부는중국에떠도는탈북자들을데려가라는

중국정부의제의를거절했다는얘기가있다.

대신북한정부를경제적으로지원하면서거의다무너져가는

북한독재정권을살려놓고있었으니

나같은사람의증언이불편했을것이다.

그래서황장엽선생등많은분들이나보고

책을내라고권했지만당시로서는책을낼수없었던거다.”

―북한에서소환령이떨어져탈출을결심했다고했는데

소환당하면처벌된다는것을어떻게확신했나.


“1999년2월17일이었다.방콕대사관으로전문이왔는데

평양의국가보위부에서보낸것이었다.

‘과학기술참사홍순경과그아들,지문인식기술전문가4명등6명은

재정문건일체를갖고귀국하라’는내용이었다.

그암전(暗電ㆍ암호전문)을보는순간

속으로‘올것이왔다’는생각이들었다.

당시북한당국은비교적선진적인지

문인식기술을외화벌이수단으로사용하기위해

베이징과도쿄,방콕3곳에지사를두고있었다.

쉽게말해지문인식자물쇠를만들어외국에수출하기위한것이었다.

그런데북한엔국가보위부(국정원격)와

사회안전부(경찰)간에항상알력이있는데,

당시보위부원과안전부원들이해외출장을갔다가

금전분배문제로마찰이생겼다.

이때문에보위부가안전부를보복하기로했고

당시안전부가주관하고있던지문인식기술개발을타겟으로삼았다.

안전부방일대표단이지문인식기술을팔아먹으려했다고모함한것이다.

이에따라내가소환암전을받았을무렵에지문인식기술을다루던

베이징지사의지사장과직원들이6개월전모두소환돼처벌된상태였다.

이번에방콕차례라고나는확신했고소환돼북한에들어가면

고문등을당해몇달못살것은뻔한일이었다.”

―소환당일새벽에차를몰고부인ㆍ아들과함께대사관을탈출했다가

10여일만에다시북한에서파견된보위부원들에게체포됐는데.


“기적이일어났다.대사관의일제(日製)미니버스에실려

라오스국경으로끌려가던중이었다.

난당시차에서뛰어내려자살을하려고했지만

나를가운데앉히는바람에그마저도여의치않았다.

난그때진심으로자살을갈망했다.

그런데잘달리던버스가뒤집어진것이다.

아내와함께피투성이가된채병원에실려갔다가

가위로배를찌르는등2번의자살시도를하고나서

태국경찰이와우리는구해주었다.

이후태국정부와북한당국이우리의신병처리를놓고

지루하게힘겨루기를하는바람에난민보호소에

1년8개월이나갇혀있다가한국에들어올수있었다.

북한송환을피하고한국으로오게되는과정에서

추안리크파이태국총리와현지경찰이정말많은도움을주었다.”

―당시한국정부에서탈북자들을홀대하는바람에

한국이아닌제3국행을희망한탈북자들이많았는데.


“나도고민을많이했다.

미국과노르웨이등을고려하다가

황장엽선생이보내준편지한통에마음이움직였다.

태국난민보호소에있을때황선생이

한국대사관을통해편지를보내왔는데

거기에‘우리말에구사일생이라는말이있는데

홍선생의경우는‘만사일생’이라할만하오.

수년전태국에서홍선생과만났던기억을간직하고있소.

하루빨리홍선생이한국으로건너와서나와함께손잡고

통일운동에나설수있기를바라오’라는내용이었다.”

-북한의외교관생활은어땠나.


“외교관은외화벌이가주된책무다.

대사관경비를자체조달해야하는것은물론이고

평양에‘충성자금’도바쳐야한다.

달러밀반출을예로들면거기에도독특한노하우가있다.

먼저엑스레이를통과할수있도록달러를포장을한뒤

다시달력종이와검정색종이,시멘트종이로3번을싼다.

이것에외교문서용도장을찍어외교행랑에넣은뒤

세관에서외교관여권을보여주며통과하는식이다.

북한에서나오는각종대표단들의

물품구매요청에응하는것도대단히어려웠다.

안경사달라,약사달라등등온갖물건을다요구했다.

당시태국대사관의서기관월급이280달러가채안됐다.

대사관직원부인들은백화점쇼핑은엄두도못냈고

싸구려시장만찾아다녔다.

그래도북한에서외교관으로외국에나간다면

모두가부러워한것은말할것도없다.”

―1990년대중후반소위‘고난의행군’시절상황도책에묘사돼있는데.


“책에썼듯이1997년평양에잠깐들어갔다가

사회안전부참모장이지방과통화하는내용을들은적이있다.

‘자살자몇명?사람잡아먹은범죄자몇명?살인자몇명?

아사자몇명?…”그런식의대화였다.

사람을잡아먹는다는소문이사실이라는것을그때서야알았다.”

―5년안에통일될것이라고했는데왜그렇게전망하는가.


”장성택사건의영향도있지만,

기본적으로지금과같은북한체제는오래존속할수가없다.

중국도북한에대한우호적인태도가바뀌고있지않나.

북한경제난도심각하고주민들사이에김정은에대한존경심도없다.

이전에정부가배급을해줬기때문에

주민들이형식적으로라도정부에복종했지만

이제는배급도없어졌고시장이그기능을대체하고있다.

이런상황에서북한독재정권의내부통제가제대로먹히겠는가.

북한은조만간3대세습독재와단절하는

획기적인개혁개방이있지않고는생존할수없다고본다.”

―남북통일로가는길에어떤장애물이있다고보는가.
“체제경쟁에선무기보다정신무장과교육이더중요하다.

북한은3대째대남전략이변하지않고있지만

한국은누가집권하느냐에따라자주바뀐다.

더큰문제는교육계와노동계,법조계등에들어있는

무비판적북한동조세력들이다.

전교조의북한관을교육받은학생들은

몇년지나면다투표권을얻는성인이된다.

요즘이곳에선간첩들이더큰소리치고

일부변호사들이그들의범죄사실을알고도

두둔하는이해하기힘든현상이벌어지고있다.

정치인들도터무니없고무책임한발언을마구한다.

얼굴반듯하고말잘하면다정치인되는가.이해할수없다.

정부도탈북자를데려오는데더주력해

북한주민들의민심을사야한다.

북한정부를지원하는것은북한주민을박해하는행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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