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재 소녀 미스터리 다시 보기

‘동부의 스탠포드’ 하버드대와 ‘서부의 하버드’ 스탠포드대 학부 과정을 동시에 다니는 입학 허가를 받았다 해서 <천재 수학소녀>란 극찬을 모았던 재미 유학생 김정윤양 성공담은 결국 허탈한 자작 사기극으로 막을 내렸다.

김양 아버지인 김정욱 넥슨 전무가 12일 기자들에게 물의를 일으켜 죄송하다는 사과 이메일을 통해 허위 사실임을 인정하면서 논란에 종지부를 찍었다. 그는 이 이메일에서 <앞으로 가족 모두 아이를 잘 치료하고 돌보는데 전력하면서 조용히 살아가겠습니다>라고 적었다. 딸이 조작 사실을 털어놓은 모양이다. 

김양이 다니던 토마스제퍼슨고교에서는 엄한 제재와 더불어(퇴학될 것 같다 한다) 허위 이메일에 대해선 수사 의뢰까지 하겠다니 거짓말이 몰고 온 파장이 걷잡을 수 없게 번지고 있다.

아버지가 가족에게 더 이상 고통을 주기 싫어 상세한 사실관계를 밝히지 않은 점은 약간 아쉽다. 심정은 물론 이해하지만 주커버그가 정말 전화를 했는지, 기대했던 하버드와 스탠포드에서 합격통지서가 오질 않자 위조하기로 결심한 건지 등 어디서부터 어디까지가 사실이고 과장이며 허위인지 정리해줬으면 어땠을까 잔인한 호기심이 남는다.

사기극과는 별개로 인터넷을 뒤져보면 김양이 나름 우수한 학생이었다는 흔적이 나온다. 이런저런 수학 관련 대회에서 입상한 기록이 남아 있다. 논문 내용이 표절이란 지적도 있지만 고교생 수준에서 그런 고급 수학 지식을 알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가치가 있지 싶다.

가장 최근인 지난 5월14일자 Society for Science & the Public 홈페이지

https://www.societyforscience.org/content/press-room/intel-isef-2015-special-awards-ceremony

보도자료를 보면 김양은 Intel ISEF 시상에서 수학 부문 장려상(Certificate of Honorable Mention)을 받았다. 다른 4명과 공동수상이었다. 인텔이 이 기관과 함께 9~12학년생들을 대상으로 과학 분야에서 우수한 성과를 보인 학생에게 주는 상이다.

그런데 이 Intel ISEF는 시상 분야가 공학, 천문학, 물리학 등 수십여개에 달하고 그 중에서도 김양은 수학 분야에서 1~3등 다음인 장려상(4등에 해당)을 탔기 때문에 그다지 두드러지지 않는 모양새다. 거길 보면 당시 김양과 함께 상을 받았던 학생들 명단이 나온다.

-Connected Matchings in Graphs with Independence Number 2 (Jung Yoon Kim, 17, Thomas Jefferson High School for Science and Technology, Alexandria, Virginia)

-The Base Dependent Behavior of Kaprekar’s Routine: A Theoretical and Computational Study Revealing New Regularities (Daniel M. Hanover, 18, John L Miller Great Neck North High School, Great Neck, New York)
-A Generalisation of the Determinant to Rectangular Matrices: Implications in Gauge Theory(Abhimanyu Pallavi Sudhir, 15, Dhirubhai Ambani International School, Mumbai, India)
-Categorizing Point Sets with No Empty Pentagons (George Drimba, 17, Stuyvesant High School, New York, New York)
-Preserving Algebraic Structures on Exact Infinity: Categories with the K-theory Functor (Sanath Kumar Devalapurkar, 15, West High School, Torrance, California)

시상식 주관은 미국수학협회(American Mathematical Society)가 했는데 이 내용은 그 협회 홈페이지에도 똑같이 올라있다. 당시 1등에겐 상금 2000달러를 줬는데 Nitya Mani라는 The Harker School(San Jose, California) 재학생(인도계)이 <Characterizing the Constructible N-Division Points of the Rational C-Hypocycloids through Straightedge and Compass Constructions>라는 연구를 통해 받은 것으로 나와 있다. 2등은 2명, 3등은 4명이었으니 김양은 굳이 따지자면 공동 8등을 한 것으로 간주할 수 있다. 애초부터 <수학 천재>라는 칭호는 과장이었던 셈이다.

다음으로 김양 학교가 있는 페어팩스 카운티에서도 과학과 공학 경진대회를 열었는데 여기서도 김양은 입상자로 등장한다. 홈페이지에 있었으니 위조되진 않았을 것이다.

sara

결국 김양이 허언증이 섞인 과대망상증 환자일 순 있겠지만 어쨌든 공부를 상당히 잘했던 학생이란 추측은 근거가 있다.

남는 궁금증은 정말 이 징그러운 음모를 김양 혼자 설계했을까라는 부분이다. 누군가 중간에서 김양에게 그릇된 망상을 심어주고 사기극을 공모하지 않았을까. 하버드나 스탠포드를 가고 싶은데 지금 성적으론 장담할 수 없자 <책임지고 보내줄테니 나만 믿어>라고 꼬드긴 브로커는 없었나. 이런 저런 후속 해명 이메일 소동이나 진본과 흡사한 합격증 등 여러 정황을 보면서 든 느낌이다.

이번 사건 전개 과정에서 아버지가 이 사기극을 끝까지 눈치채지 못했던 점은 안타깝다. 무릇 <기자란 어머니가 ‘얘야, 난 널 정말 사랑한다’고 해도 일단 의심해보는 직업>이라 일단 뭐든 의심부터 해보는 존재인데, 20년 가까이 기자 생활을 한 처지에서 17년 동안 바로 옆에서 보고 겪은 취재원(딸) 성향에 대해 그리 몰랐던가. 가족이라 어쩔 수 없는 부분은 있었겠지만, 아버지가 게이트키퍼 역할을 잘 해줬다면 가족 내 작은 소동으로 끝났을 일인데 걷잡을 수 없이 폭발해버렸다.

이번 사기극은 사실 언론에 대고 나팔만 안 불었어도 교포 사회 작은 해프닝으로 끝났을 수 있었다. 괜히 동네방네 떠들다가 전국민적인 이슈가 되버리면서 나름 공부 잘하는 한 학생 인생이 나락으로 떨어지게 생겼다.

이번 일을 계기로 2007년 스탠포드대 기숙사 빈방을 전전하며 가짜 스탠포드 학생 행세를 했던 한국계 교포 여학생 아지아 김양 사례가 다시 언급되고 있어 이래저래 한국인들 명문대 집착증이 새삼 도마 위에서 오르고 있다.

http://www.paloaltoonline.com/news/2007/05/25/fake-student-spends-eight-months-at-stanford

그동안 유학생이나 한인 교포들이 하버드나 스탠포드 등 미 명문대에 동시 합격했다고 뻐기는 소식이 간간이 언론을 탔는데, 앞으로는 기자들이 이게 사실인지 일일이 해당 학교에 확인해야 하는 피곤한 상황이 되버렸다. 덕분에 그런 기사는 슬슬 줄어들지 않을까 기대한다. 그나마 이번 사건이 남기고 간 씁쓸한 성과로 치부해야 하는지.

폴 엘뤼아르와 김현, U2를 좋아하고 저널리즘에 대해 성찰하는 자세를 유지하려 합니다. 사회학자가 되려다 어쩌다 기자가 됐습니다.

6 Comments

  1. Dimples

    2015년 6월 12일 at 10:05 오전

    상을 수상하는데 쓰여진 논문이 표절이었다고 벌써 증명된거로 아는데요?

    • 이위재

      2015년 6월 12일 at 12:36 오후

      그건 저도 읽었는데요, 과거 유명 교수 논문 내용을 갖다 쓴 건 맞는데 아직 표절이라고 공식 판정내리진 않았습니다. 표절일 수는 있다고 봅니다. 수학 전문가가 아니라 잘은 모르겠지만. 그래도 그 정도 수학 명제에 대해 고교생이 지식을 갖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저는 어느정도 실력을 갖춘 게 아닐까 생각합니다.

  2. 제니

    2015년 6월 15일 at 4:30 오후

    추측보다는 언론이 진실을 밝히는 게 사명이라고 봅니다. 같은 기자 출신이여서 덮여주려는 것같은데 이런 오보 소동이 난데는 같은 기자 출신이라 믿고 그 이야기를 확인하지 않은 잘못때문이지 않나요. 지금도 언론은 여전히 같은 잘못을 저지르고 있다고 봅니다. 그냥 덮기에는 너무나 많은 의문들이 있습니다.

    • 이위재

      2015년 6월 28일 at 9:47 오전

      김양 아버지가 기자 출신이라 기자들이 이 내용을 더 사실로 과신한 점은 사실인 것 같습니다. 설사 부친 직업이 기자가 아니었어도 어느정도 알만한 직장을 다니는 상황(예를 들어 삼성이나 실제 지금 직책인 넥슨 전무라도)이었다면 이 합격 주장을 검증하려는 노력은 하기란 어려웠을 겁니다. 설마 대학 합격 여부를 꾸며낼 것이란 의심을 하긴 쉽지 않거든요. 그렇다고 변명의 여지가 있는 건 아닙니다. 사실 확인을 철저히 하지 않고 기사를 내보낸 부분은 해당 기자들에게 분명한 문책 사안입니다. 그렇다고 이 소녀가 뭔 대단한 음모를 꾸민 것도 아니고 단지 명문대 진학에 대한 압박을 견디지 못하고 병적인 거짓말을 일삼은 것으로 보이는데 그걸 낱낱이 파헤치는 게 어떤 의미가 있는지 잘 모르겠습니다. 단지 브로커 개입 여부나 공모자 존재 등은 글에서 언급했듯 저도 궁금하긴 합니다.

      • 예일

        2015년 9월 13일 at 1:50 오후

        가족이나 친구들에게 한 거짓말이라면 그냥 덮고 넘어가야겠지만 이것은 전국민을 상대로 한 거짓말로 큰 소동을 치른 것입니다. 어떻게 결국 탄로날 거짓말을 떨지도 않고 라디오방송에까지 나와 할 수 있는지…학교들이 보냈다는 공문서도 학생이 다 위조한 것인지…가족들과 본인이야 탄로난 마당에 감추고 싶겠지만 기자들이 진실을 밝혀내야하지 않습니까. 어떤 종류의 사건이든…특히 이런 국민적 관심이 몰린 사안에는…거짓 자랑으로 동네방네 떠들 때는 언제고 이제는 아뭇 소리도 말라는 식은 좀 아닌 거같습니다.

  3. 하버드

    2015년 6월 29일 at 11:32 오전

    20일자로 퇴학처리되었음. 아울러 학교측이 형사고발하였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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