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를 사용해주세요. in /webstore/pub/reportblog/htdocs/wp-includes/functions.php on line 3620 넘버 쓰리에서 정상으로 : 미 대학풋볼 쿼터백 이야기 - 이곳에 살기 위하여 Pour vivre ici
넘버 쓰리에서 정상으로 : 미 대학풋볼 쿼터백 이야기

올해 초 미국 대학(NCAA) 미식축구 정상에 오른 오하이오주립대 쿼터백 자리 경쟁은 인생에 있어 기회란 예기치 못하게 찾아오고 운명이란 순식간에 바뀔 수 있다는 사실을 잘 보여준다. 

대학 미식축구는 미국 내에서 프로 경기 못지 않은 인기를 누리고 있다. 프로 미식축구, 프로야구, 프로농구 다음으로 시청률과 관중 동원력이 높은 종목이다. 전통적인 강호들인 오하이오주립대를 비롯, 알라바마대, 노틀담대, 텍사스대, 미시간대, 오클라호마대 등은 미식축구로 얻는 한 해 수입이 6000만~1억달러에 달한다. 이들 대학 팀들 수입을 조사한 포브스 기사. http://www.forbes.com/sites/aliciajessop/2013/08/31/the-economics-of-college-football-a-look-at-the-top-25-teams-revenues-and-expenses/

우승 후보 중 하나로 꼽혔던 오하이오주립대는 시즌 개막을 앞두고 비보를 접했다. 2년 동안 주전 쿼터백으로 활약했던(그 중 한 해는 무패였다) 3학년생 브랙스톤 밀러가 치명적인 어깨 부상을 당해 대열에서 이탈하게 된 것. 밀러는 대학 최고 쿼터백 중 하나였다.

브랙스톤 밀러

브랙스톤 밀러

그러자 후보였던 <넘버 투> 1학년생 J T 바렛이 주전 자리를 넘겨 받았다. 오하이오 팬들은 낙담했지만 불안한 기운도 잠시, 바렛은 기대를 뛰어넘는 활약을 이어가며 팀을 이끌었다. 오하이오는 11승1패라는 전적을 기록한 채 숙적 미시간대와 시즌 마지막 경기를 치렀다. 

그런데 이 경기에서 또다시 비극이 벌어졌다. 경기 도중 바렛이 발목을 부여잡으면서 쓰러진 것. 진단은 발목 골절. 남은 경기를 뛸 수 없다는 판정이 내려졌다. 

바렛이 경기 도중 부상으로 퇴장하는 장면

바렛이 경기 도중 부상으로 퇴장하는 장면

이제 남은 건 <넘버 쓰리>였던 2학년생 카데일 존스. 오하이오 팬들은 다시 한 번 한숨을 쉬었다. ‘이젠 정말 끝이군…후보도 아니라 후보의 후보 쿼터백이라니..’

그도 그럴 것이 존스가 고교 시절 유망주이긴 했지만 대학 와서는 2년 동안 한 경기도 뛰어본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런 선수에게 가장 중요한 포스트시즌을 맡겨야 하는 상황이 되어버린 것이다.

그러나 대학 시절 선발 데뷔 무대를 컨퍼런스 결승으로 치른 존스는 보란듯이 맹활약을 펼치며 위스컨신대를 59대 0으로 대파하는데 일등공신이 됐다. 경기 전 전문가들은 ‘당연히’ 위스컨신대 우위를 점쳤으나 존스는 이런 예상을 통쾌하게 물리쳤다. 존스는 그 경기 MVP였고 오하이오는 최종 플레이오프 4강전에 진출할 수 있었다.

존스는 이어 엄청난 압박감 속에서 전미 챔피언을 가리는 4강과 결승 경기를 모두 승리로 이끌면서 오하이오를 12년만에 챔피언 자리에 복귀시켰다. 4강 중 오하이오는 4번 시드였는데 전력 상 열세라는 전문가 분석이 무색하게 1,2번 시드 팀(알라바마대와 오레건대)을 모두 격파했다.

우승컵을 들어올리는 카데일 존스

우승컵을 들어올리는 카데일 존스

이제 새로운 시즌을 앞두고 오하이오는 행복한 고민에 빠지게 됐다. 이들 3명이 모두 팀에 남아있기 때문이다.

원래 주전이던 밀러도 부상에서 회복, 필드로 돌아왔지만 그는 더 이상 전처럼 당연한 넘버 원이 아니었다. 후보들이 약진하면서 오히려 넘버 쓰리로 취급되기에 이르렀다.

결국 밀러는 고민 끝에 쿼터백에서 와이드리시버로 포지션을 변경하는 모험을 택하기로 했다. 다른 학교로 전학갈까 고민도 했지만 3년을 몸담은 모교에서 마지막 학창 시절을 마치기로 결심한 것이다. 넘버 원이었던 그가 넘버 투와 쓰리에게 밀려 미지의 도전을 시작하게 된 셈이다.

밀러가 다치지 않았으면 바렛이나 존스는 여전히 후보로 벤치에 앉아 지루한 나날을 보냈을지 모른다. 그러나 그들에겐 기회가 찾아왔고 그 기회를 성공으로 승화시켰다. 비결은 단순하다. 그들은 언제든 주전으로 경기에 뛸 준비가 되어 있었던 것이다.

더구나 존스는 그 기회를 잡기까지 2년이 걸렸다. 밀러나 바렛이 잇따라 다치지 않았다면 아마 벤치 생활만 전전하다 대학 시절을 마쳤을 것이다. 그러나 그는 단 한번 찾아온 기회를 멋진 터치 다운으로 마무리했다. 인생은 느리지만 희망은 아직 격렬하다.

폴 엘뤼아르와 김현, U2를 좋아하고 저널리즘에 대해 성찰하는 자세를 유지하려 합니다. 사회학자가 되려다 어쩌다 기자가 됐습니다.

3 Comments

  1. Buckeyes

    2015년 7월 26일 at 11:03 오전

    My favorite Buckeye just got even more favoritier!!!!
    Go Bucks!!

    • Sean Kim

      2015년 7월 27일 at 8:39 오전

      It couldn’t have been more sweeter! Go Bucks!

  2. sukimosu

    2015년 7월 26일 at 2:46 오후

    Dolodale (Cadale Jone 의 NIckname)은 매우 불우한 어린시절을 보냈고, 고등학교 시절 그를 돌봐 준 양어머니 덕택에 새 사람이 되었다고 합니다. 지난 NFL draft 에서 높은 순위로 선발될 가능성이 매우 높았음에도 불구하고 학업을 먼저 마치기 위해 프로진출을 포기했었지요. He is one of my favorite Buckeyes, 6’5” 250 lbs huge frame with laser throwing arm. Go Buck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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