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이며격언은사리에꼭맞아인생에대한교훈이나경계가되는짧은말을의미한다.
‘속담틀린데없다’는말도그래서또하나의격언이다.
그속담에,
‘가난구제는나라도못한다.’는말이있다.
아무리부자나라에도’가난’이함께있는것을보면이격언은예나지금이나진리하고할수있다.
그만큼가난은벗어나기어려운,깊은뿌리를가진’경제적현상’이다.
가난문제는접근하기도어렵지만그해소를위한어떤방도를찾는일은더어렵고,좋은
결과를얻기는더어려운게사실이다.
가난은인류의역사와함께시작된하나의사회적’계층현상’이기도하다.
약500만년전나무에서내려와직립(直立)한’오스트랄로피테쿠스’는뇌용적(腦容積)이
450cc정도의원생인류다.
(현대인인호모사피엔스사피엔스는뇌용적이1400cc다.)
그들은우리가다아는대로채집과수렵으로생활했다.
그런데채집과수렵에서모든오스트랄로피테쿠스는언제나,모두가똑같은물량(物量)을
얻었을까.
그렇지않다는것은상식이다.
기량과능력에서차이가있었을것이고그만큼흭득물에서도차이가나게된다.
그렇게,처음부터우,열은존재한것이고그우,열에서비롯된빈부의차이는인류의
시작부터함께존재해왔다.
인간의우,열은태생적이기때문에어떤의미에서는운명적이라고할수도있다.
짐승의같은배에서나온새끼들도자라면서우,열이갈린다.
한집안의형제자매들도우,열이갈리고같은반의급우는물론,사회공동체의모든사람들도
상대적으로우,열이갈린다.
외모에서더잘생긴사람과못생긴사람이있듯기량과능력에서도뛰어난인간이있는가하면
무능한인간이있다.
경제적인빈부는우선이인간적우,열에서비롯되는결과적현상일뿐처음부터어떤고의에
의한조작은아닌것이다.
빈부문제에접근하는기본자세는그래서언제나이런사실앞에서정직해야한다.
인류최초의전쟁은농경문화가비축한’먹거리-식량의탈취’로시작되었으며
지금까지계속되고있는’관료주의’는농사에필요한’물’을관리하는사악한’손’에서
시작되었다.
무력-칼이힘으로부(富)를차지하기시작한것이중세의봉건제도로정착,귀족의장원과
지주대소작농이라는세습구도로자리잡았다.
힘을가진자는놀고먹고,힘이없는자는뼈빠지게일해도입에풀칠하기가어려운암흑시대는
인위적으로빈부가극대화된시대였다.
이런부당한구도를깬것이’혁명’이다.
혁명이가져온최고의선물은인간의’평등’이었다.
세습이라는기득권을배제한출발은다시빈곤은없을것이라는희망으로가득찼다.
칼하인리히마르크스(KarlHeinrichMarx1818-1883)가’공산당선언’을발표하고
‘자본론’을쓸때의런던은비참한’착취’가현실이었다.
사회주의이데올로기는그토양이특정한시기의특정한상황이었기때문에단명할수밖에
없었지만자본주의의가장어두운면을날카롭게지적한안목은높이사야한다.
오늘날여러형태의사민주의(社民主義)는그바탕에이이데올로기의편린을깔고있다.
‘능력껏일하고필요한만큼가져간다.’는슬로건은그자체가반인간적(反人間的)이었기
때문에사회주의이데올로기는막을내리고말았다.
‘우리것’만있고’내것’이없는,
개인이가지는’사유재산’에대한인센티브없이경제는발전자체가안된다.
공산권의붕괴는그렇게구조적인것이었다.
지금다같이가난해진옛공산권국가들의모습은인간의우,열을인위적으로무시한대가를
혹독하게치르고있는것이다.
쉽게말해그들은’기회의평등’뿐아니라’결과의평등’이가능하다고믿었었고거기에
스스로속은것이다.
기회가평등했으니까결과도평등한세상은없다.
인간은서로다르고우,열이있기때문이다.
얼마전부자들이모여사는지역의한백화점본점에순금으로도금한3300만원짜리욕조가
전시됐다.
사진으로만봐도정말대단한물건이었다.
그게팔릴까.
가진사람들에겐그건별것도아니다.
더비싼것이나와도마음에들면사간다.
그러나없는사람에겐그건정말’사진의떡’이다.
30만원도손에쥐어보기가어렵기때문이다.
빈부(貧富)는가난함과넉넉함이며빈자와부자를함께이르는말이다.
빈곤(貧困)은가난하고모자라는것이다.
따라서’빈곤층’은가난하고모자라게사는사회계층이다.
‘오스트랄로피테쿠스’에서이미시작된빈부의차이는지금도계속되고있으며앞으로도
해소되지않을것이다.
빈곤계층은그어떤처방으로도사라지지않는다는게역사의교훈이기도하다.
우선생각할수있는것이열등한인간쪽이다.
상대적으로무능하고게으르고아는것이부족하니모든경쟁에서탈락한계층이다.
더무서운것은’개천에서용’나기전에는그악순환의고리를끊기가어렵다는점이다.
뉴욬한복판에지금도슬럼가가그대로있다.
전통적인의미에서의빈곤계층이여기에해당된다.
그러나지금우리사회에는또하나의빈곤계층이있는데’신빈곤계층’이그것이다.
IMF사태를겪으면서정리된인력,
여러해째계속되고있는기업들의시설투자감소와공장들의해외이전으로일자리창출이
안돼양산(量産)된젊은백수들,
강성노조의철밥통지키기로밀려난비정규직의증가.
이들은그해법을찾기가더어려운새빈곤계층이다.
빈곤계층에대해정부가할수있는일은과연어떤것일까.
‘가난구제는나라도못한다.’고했는데과연정부가해줄수있는일이있을까.
우리부부는구소련말기,고르바쵸프집권때힘들게소련을여행한일이있다.
그끔찍한낙후와가난은상상을초월하는것이었다.
우리가투숙했던호텔옆의쓰레기장.
거기엔호텔쓰레기에서먹을것을찾는나이어린소년들이있었다.
(6.25전쟁때우리도그랬다.-대표적인것이꿀꿀이죽이’부대찌개’로남은것이다.그건
미군부대에서버린잔반으로찌개를해먹은일에서비롯된이름이다.)
인간이쓰레기를뒤져먹을것을찾는다면그건’동물의수준’이된것이다.
거기에서’인간품위’의문제가제기된다.
아무리가난해도사람으로서마지막체면은지켜야하며정부가할수있는일의한계가
거기에있다.
쓰레기통을뒤지지않아도될만큼의먹거리를제공해야한다.
신빈곤계층에대한대책은경제의활성화뿐이다.
일자리창출이외의다른대안은없다.
경제규모자체를늘려야하는것이다.
이문제의심각성은집권좌파의반기업,반자본주의정서로는이일이가능하지않다는점이다.
지금의상황이라면신빈곤계층의탈출구는보이지않는다.
좌파가내놓은대안은,
쉽게말해가진자의것을합법적으로뺏어없는자에게주겠다는것인데경제용어로그걸
‘제로섬게임’이라고한다.
물주머니의한쪽을누르면물은다른쪽으로가지만물주머니의물의총량은변하지않는다.
그건빈곤의해소가아니라인위적인변형일뿐이다.
문제의근본적인해결은물의양을늘리는것이다.
우리경제가여러해동안성장하지못하고있는것은누구나다아는일이다.
좌파들은정책의빈곤이아니라가진자들이나쁘기때문이라는요사스러운변명을
늘어놓고있다.
아마추어리즘이가져온비극이아닐수없다.
경제마인드가없는데어디에서경제정책이나올수있겠는가.
결국이문제는’양극화현상’이라는구차하고야비한용어를만들어내기에이르렀고,
없는자들에게영합,표를얻으려는정치적술수로발전하고있다.
여기에속으면희망은완전히물건너가고만다.
‘양극화’라는발상과그것을정치에이용하는기술에서좌파는보수에훨씬앞서있다.
그들은국민을기만해서라도재집권하려고할것이다.
문제는그다음이다.
그렇게되면빈곤계층은확대될것이고신빈곤계층은완전히좌절해야한다.
시장경제의자본주의는,
스스로가지고있는부분적인결함에도불구하고아직까지인류가발견한가장효율적인
경제시스템이다.
지금의남과북을비교하는것만으로도설명은충분하다.
가난구제는나라도못한다는사실을현실정치에서분명하게보여준사람이대처전영국수상이다.
그녀는영국병의증세를예리하게파악했고복지예산의대대적인감축과정부기관의과감한
민영화로돌파구를열였던것이다.
그게지도력이다.
빈부는지극히정상적인사회현상이다.
인류의긴역사에서그건언제나현실이었다.
그누구도,어떤권력도그차이를좁힐수는있었어도완전히해소하지는못했다.
가난구제는나라도못하기때문이다.
하한선은언제나마찬가지다.
없는자가없기때문에쓰레기를뒤지게해서는안된다.
그걸막는장치가’사회복지’다.
빈부는결코사회의양극화현상이아니다.
기회에서평등하다면더욱그렇다.
과정과결과는우,열에서판가름난것이지거기에다른이유는절대로없다.
앞서나가있는모든선진국에도가난은그대로남아있다.
국가가할수있는일은’가난’을줄이는것이다.
그러기위해서는경제가발전하는길이외는다른처방이없다.
특히나양극화라는요사스러운용어로국민을부추겨분열시키고대립시켜어부지리를
얻으려는얄팍한술수는마땅히척결돼야한다.
모자라는국가경영능력을그런식으로호도하도록허용해서도안된다.
정권은유한하지만국가는,민족은영원하기때문이다.
바야흐로우리들은우리의민도(民度)를다시시험받는시기에접어들고있다.
한번실수는용서받아도두번실수는용서받을수없다는것을명심해야한다.
우리가다시치러야할혹독한대가를생각하면더욱그렇다.